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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인간 X(4)


 2050년 세상은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인공물과 자연물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져 그 구분이 매우 어려워졌다. 특히 로봇 기술의 발달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과학계에서는 로봇공학이 이미 학문적으로 완성되었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었고 AI 및 트랜스 휴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은 더욱 정교하고 자연스러워져 놀라울 정도로 인간과 유사했다. 여기에 더해 나노테크놀로지의 발달이 로봇공학과 시너지를 이루면서 마이크로 로봇이 완전히 상용화되었고 그들은 치료, 검사, 의료용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송 박사는 발달한 로봇공학의 도움으로 다양한 생명체를 모사한 로봇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 이 로봇들을 이용했다.

그 로봇들은 모사한 생명체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고 프로그래밍이 가능했으며 실제 모델의 바디를 구성하는 재료와 유사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로봇은 마이크로 휴머노이드였다. 그 로봇을 완성했을 당시, 어느 유명 과학 잡지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30여 년 전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사업가의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을 설계한 이유가 궁금할 거다. 인간 사회는 두 개의 팔과 열 개의 손가락을 갖고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의 상호작용에 기반을 두고 있다. 로봇이 그런 환경에 적응하고 인간이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인간과 모양, 기능을 포함해서 생각까지 거의 같아야 한다. 지금 만들어진 이 로봇은 인간처럼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인간이 품고 있는 존재에 대한 고민, 형이상학적인 사고까지 가능하다. 나는 실험장을 만들어 이 작은 휴머노이드가 인간이 오랫동안 겪어 온 생존의 역사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통찰한 것들을 통해 배울 것이다. 나는 이 로봇에게 ‘인간 X’라 는 이름을 주었다.”     

 그의 전공 연구 분야는 가상의 세상을 시뮬레이션하여 실제의 세상을 예측, 추정하는 것인데 그 추정해낸 실상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 상사(相似,Similarity) 법칙을 이용했다. 그는 일찍이 이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며 대학원생 시절부터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획기적인 논문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그가 추정해낸 결과치는 실제 세상과 매우 작은 오차범위 안에서 근사하다는 것이 수 차례 증명되었다.

 상사 법칙은 쉽게 말해 닮은 꼴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구조물이나 설비를 제작하기 전, 주변 환경이나 내부의 역학적 상태를 추정하기 위해서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하는데 상사 법칙은 기하학적으로 닮은 두 물체가 역학적으로도 닮은꼴이 되기 위한 조건을 나타내는 법칙으로 차원해석에 기초하고 있다. 기하학적으로 닮은 두 물체에 관여하는 모든 물리량의 비율이 동일하면, 두 물체에 일어나는 현상 역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 분야에서 송 박사의 탁월하고 독창적인 점은 상사의 원리를 기하학적 상사, 역학적 상사, 운동학적 상사뿐만 아니라 시간적 상사로 확장시켜 오랜 세월에 거쳐 진행되어야 할 실험을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수행하면서 실제값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 성과는 학계와 산업계에 두루 활용되었는데 특히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사례 한가지는, 시간 상사를 이용하여 수만 년에 걸쳐 진화하는 생명체의 모습을 짧은 시간 내에 오차 없이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러한 연구 결과는 세계적으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고 그는 ‘Similarity(상사) and Simulation(모의실험)’ 분야에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으로부터 쏟아지는 칭송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시간 상사 법칙에 대한 이론을 세계 최초로 발표했을 때,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세계를 지배했던 기업, Google은 그에게 파격적인 연봉과 연구 지원을 약속하며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는 지독하리만치 자신의 관심 분야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그 분야는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 년 전 그는 세계의 관심과 이목을 뒤로하고 갑자기 과학 기술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 외곽 도시에 소리소문없이 자리 잡았고 자기만의 연구소를 세웠다.      

<여러가지 형이상학 문제 연구소>

허름한 그의 연구소 대문에 비스듬하게 걸려있는 나무 간판이다. 

그는 현재의 눈부신 첨단과학 기술을 누구보다 활발히 활용하고 있었지만 생활 방식은 과거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했다. 그의 숭고한 연구 미션은 인간의 존재 이유와 생명체의 죽음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그 답을 찾는 것이었다.      

 20세기 이래 세상은 타임캡슐을 묻는 것이 유행했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추억이 될 만한 물건을 캡슐 같은 용기나 보관함에 넣어 땅속에 묻어 보존했다가 특정 시기에 열어 확인한다. 때때로 타임캡슐 내에는 그 시대의 물건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의문들도 적어서 보관했는데 당시의 지식으로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에 대해 후세의 향상된 과학기술을 통해 해답을 찾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있었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시간이 도래한 타임캡슐을 꺼내어 그 속에 보관된 선조의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고 때때로 이런 미션은 돈 많은 개인 호사가들에 의해서도 시도되었다. 특히 증명하기 어려운 철학적 질문들에 답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개인 호사가들에 의해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그런 호사가들이 송 박사의 주요 고객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고 은밀하게 이루어졌으며 송 박사는 그 은밀한 고객들에게 신뢰받는 해결사였다. 그는 이 일이 맘에 들었다. 첨단 과학기술을 연마한 연구자 중에서도 선봉에 서있는 그였지만 그의 관심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는 고객이 의뢰한 타임캡슐을 열어 질문을 살피고, 해답을 찾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여 답을 내놓았다. 그가 해결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캡슐을 돌려주고 다시 땅에 묻어 미래의 후손이 해결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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