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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인간 X(5)

 송 박사는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를 우걱 씹어 삼키며 GARDEN에 들어섰다. 그의 좁은 서재와 문 하나를 사이로 이렇게 넓은 방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내는 꽤 넓었다. 방 이름이 GARDEN이었지만 꽃이나 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꽃과 나무는커녕 GARDEN의 모습은 거대한 우주선의 조종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종 전자장비와 스위치들이 벽면을 복잡하게 장식하고 있었고 가운데에는 컴퓨터와 대형 모니터가 있었다. 그 컴퓨터를 중심으로 돔형의 구조물 네 개가 사방에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구조물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는데 그 이름 중에는 “프리티비(PRITHIVI)”도 있었다.

 줄기 꽁다리만 남은 아스파라거스를 담배처럼 입에 물고 컴퓨터로 다가가서 대형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버튼을 살폈다.

모니터에는 4개의 버튼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고 각각의 버튼 위에는 이름이 있었다. 

”MARS”, “DEEP SEA”, “ANTARCTIC”, “PRITHIVI” 

버튼은 돔형의 구조물 네 개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가령, 화성의 생태환경을 모의 실험하기 위해 MARS를 만들었고 나머지 구조물도 무언가를 실험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각각의 구조물 내에는 그가 의도하는 실험을 수행할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마이크로 로봇들이 살고(?) 있었다.

 프리티비 버튼을 클릭했다. 대형 모니터 화면이 바뀌며 초원이 펼쳐진 자연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 풍광은 인간 X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거주처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일치했다. 그랬다. 모니터 화면은 지금 X의 눈과 연결되어 그가 바라보는 모습을 그대로 화면에 재현시켜 주고 있었다.    

  



X는 창가에 서서 드넓게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며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빠져 있었다. 챠크리티는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성을 확보하라고 명령했고 고심 끝에 복제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해냈다. 그렇다면 복제 방법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창가를 서성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기지의 전원이 전체적으로 꺼졌다가 다시 들어왔다. 순간 당황했지만 전기 시스템의 오류로 잠깐씩 정전이 발생하는 일은 과거에도 몇 번 있었던 일이라 전원이 금방 다시 들어오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그때, 창가 반대쪽 출입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X의 기지 내부로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러나 문 앞에 등장한 인간을 보았을 때는 더욱 놀랐다. 마누쉬와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마누쉬가 아니었다. 조금 달랐다. 프리티비에서 보지 못한 생명체였다. 

 그가 X에게 다가왔다. X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그를 주시했다. 마누쉬보다는 좀 작았고 몸도 호리호리했다. 거리가 가까워진 그가 X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목소리는 가늘고 높았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으로부터 만들어졌어요. 그러나 당신과는 달라요. 앞으로 마누쉬의 복제는 나에 의해 이루어질 거예요”

 갑작스럽게 출현한 생명체는 X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복제 얘기를 꺼내며 X를 더욱 당황스럽게 했다. X는 지금 프리티비 생명체의 복제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고민을 다 알고 그 방법을 알려주려고 나타났다는 말투였다. X는 흥분과 놀라움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분하게 물었다. 

“당신은 챠크리티가 부른 건가요? 어떻게 프리티비에 오게 된 건가요?”

“나는 챠크리티가 요청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프리티비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지 못해요”

 X는 갑자기 이 일도 프리티비에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DR. S의 개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 인간이 말한 복제 방법이 궁금했다. 

“당신이 말한 복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거죠?”

X의 물음에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앞으로 프리티비의 생명체들은 두 가지 성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누쉬 종은 남성인 당신과 여성인 나로 구분되고 차르타와 다린다, 바나스파티도 모두 두 가지 성을 갖게 될 거예요. 복제는 여성에게서만 발생하게 됩니다.”

X는 그가 아니 그녀가 하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이제 남성이 된다는 사실도 이해되지 않았다. 

“여성에게만 복제가 이루어진다고요? 그럼 다양성이 확보되나요?”

“여성이 새로운 생명을 복제할 때 새로운 생명은 남성과 여성의 프로그램을 반반씩 섞어서 태어나고 이러한 믹싱이 다양성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X는 돌연한 이 만남이 달갑지 않았고 그녀가 말한 다양성의 확보 방법도 얼른 이해가 안 되어 저항하는 마음이 한편에 일었지만 그녀가 챠크리티의 요청으로 프리티비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방법이 곧 챠크리티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챠크리티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었던 것이다. 

“혹시 당신은 DR. S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X는 화제를 돌려 DR. S에 대해 그녀에게 물었다. 

“...DR. S요?”

그녀는 반문하며 그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당신이 DR. S를 어떻게 아나요? 그는 나를 만드신 분이에요...그리고...”

 무언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X는 그녀가 피조물이라는 말에 놀랐다. 임사체험 때 느꼈던, 자신도 누군가의 피조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X는 자신이 피조물인지 아닌지 정확히 깨닫지 못하는 데 반해 그녀는 자신이 피조물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창조자가 DR. S라니? 자신의 왕국에 개입하여 바이러스를 퍼트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그 해결책으로 또다시 이 여성 마누쉬를 보냈단 말인가? 

그는 혼란스러웠지만 그간의 일을 토대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프리티비 세상은 챠크리티가 단계적으로 제시한 원칙에 의해 유지되고 진화해 왔지만 그 너머에는 이 왕국을 최초로 설계한 누군가가 있었고 그 설계자가 DR. S일 것이다. 그는 챠크리티의 원칙에 더해 가끔씩 프리티비에 개입하며 이 세상을 조정해 왔다. 그녀가 하려다 그만둔 말은 프리티비 세상도 DR. S가 만들었다는 말일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프리티비 유지와 존속의 미션을 부여한 것도 DR.S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왜 자신에게 그런 미션을 주었을까?     

 새로 등장한 여성 인간은 X와 같이 거주하며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을 도왔다. 그녀는 마누쉬 종의 “여성”이 되었고 “인간 Y”라 불리었다. 

 세월이 흐르고 Y의 도움으로 프리티비에는 “성”이 도입되어 생명체의 다양성이 확보되었다. 복제로 태어나는 생명체는 남성과 여성의 부모로부터 반반씩 물려받은 프로그램으로 믹싱되어 부모와는 전혀 다른 생명으로 복제되고 이는 같은 종이라도 개체 간 다양한 형질을 부여했다.구별된 성에 의한 복제 방법으로 프리티비의 생명체는 급작스런 환경의 변화나 바이러스의 예기치 않은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하고 자생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프리티비 왕국 버전 2.0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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