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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인간 X(6)

세월이 흘렀다. 프리티비의 생명체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만들었고 생태계가 복잡해질수록 시스템은 안정되었다. X와 함께 프리티비에 등장한 대부분의 마누쉬들은 세월이 지나 죽었고 다른 생명체들도 여러 세대가 교체되었다. X는 그들의 후손이 프리티비에서 성장하고 번성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이 왕국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건을 같이 했다. 이제 자신의 미션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X는 챠크리티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었다.     

[DR. S의 부름으로 미션 종료]     

DR. S가 나를 부른다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프리티비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일까?

 자신이 DR. S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이제 알 수 있었다. DR. S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이 종료된다는 것이 홀가분했다.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체험해봤기에 죽음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은 자연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체에게 부여한 규칙일 뿐이며 자신의 바디는 프리티비의 자원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재료가 되거나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X는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부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풀리지 않고 자라난 의문이 하나 있었다. 처음에는 희미했으나 부름이 다가올수록 선명해졌다.

‘왜 DR. S는 프리티비를 만든 것일까?’    




 송 박사는 GARDEN의 중앙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4개의 버튼 중 활성화되어 있는 “PRITHIVI” 버튼을 클릭하여 활성을 종료시켰다. 그와 동시에 우웅~ 하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중앙 모니터 오른쪽에 위치한 프리티비 돔 구조물의 동력이 꺼졌다. 그는 프리티비 구조물로 다가가 구조물에 별도로 부착된 컴퓨터를 부팅하고 작은 화면이 켜지길 기다렸다.      

 그가 프리티비로 구현한 공간과 시간의 상사는 적절했다. 프리티비 돔 구조물의 크기는 실제 지름 3m 높이 1.5m의 반구형 돔이었지만 그 속에서 생활하는 마이크로 로봇들은 그보다 만 배 길고 높은 공간으로 지각했을 것이다. 즉, 그들에게는 지름 30km, 높이 15km의 왕국이었다. 또한 시간의 흐름도 실제와는 달랐다. 실제 세상에서의 한 달이 프리티비 세상에서는 천 년에 해당한다. 실험 기간 3개월은 프리티비 시간으로 3천 년을 의미했다.

 송 박사는 공간과 시간의 상사 기술을 통해 3천 년 동안의 지구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단 3m 공간 내에 재현했고 정교한 마이크로 생명체들을 거주시켜 이들의 삶이 자연에 적응되도록 조정했다. 특히 마이크로 휴머노이드 “인간 X”는 3천 년의 세월을 살아가며 자연법칙을 체험하고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의 생명체의 삶을 관리했다.

자연의 진화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만한 사건은 송 박사가 직접 개입하여 조정하고 시간을 단축했지만 그러한 개입이 임의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고 그가 특이점이라 부른 적절한 시점을 찾아내어 전제적인 상사 법칙이 깨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윽고 구조물에 별도로 부착된 작은 모니터 화면이 켜졌다. 화면에는 많은 폴더가 줄을 맞춰 띄워져 있었다. ‘챠크리티’, ‘바나스파티’, ‘차르타’ 등 여러 개의 폴더들이 있었고 그중 ‘X의 메모리’라는 폴더를 열었다. 폴더 안에는 X가 3천 년 동안 프리티비를 유지하며 경험한 피조물의 탄생, 존재 이유, 죽음 등에 대한 그의 통찰과 기억들이 요약되어 담겨있었다. 송 박사는 그의 요약본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다.


 며칠 후 .

 송 박사는 자신의 서재 책상에 앉아 “실험 중”이라고 씌어 있는 박스에서 질문지 하나를 꺼냈다. 이제 막 실험을 끝낸, 2023년 타임캡슐에서 꺼낸 질문지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과 질문이 적혀 있었다.      


장의사 직업을 가진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일상은 늘 죽은 사람과 함께였습니다. 사체를 염하면서 인간의 죽은 모습을 항상 관찰해 온 그는 죽음 이후의 인간 존재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란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고깃덩어리로 전락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허무감은 그의 생활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직업은 매일매일 산모의 출산을 돕는 조산사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동강도로부터 오는 피로와 힘겨움에 지칠 만도 하건만 태어나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생명의 운행자, 절대자에 대한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녀는 아기를 갖기 원했지만 허무감에 빠져 있는 남편은 아기를 갖는 것에 반대합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추신: 인간은 도대체 왜 태어나고 또 왜 죽는 것인가요? 삶이란 무엇입니까?

마지막 질문: 이 세상은 왜 만들었을까요?

후손들이여~ 답을 찾아주시오.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마치 답이 쉬운 질문인 양 씌어 있었다. 송 박사는 질문지를 처음 접했던 3개월 전보다 더 신중하고 진지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프리티비 세상을 만들었고 그 세상에서 X는 3천 년을 살았다. 잠시 명상하듯 숨을 고르고...그는 전적으로 X의 통찰에 근거하여 답을 적기 시작했다.     


- 인간을 포함해 무릇 생명이라는 것들의 존재에는 어떤 목적이나 이유가 없다. 자연은 자연을 유지하기 위해 탄생과 죽음을 생명체에게 부여했고 생명은 그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체의 포화를 막기 위해 생명체는 죽어야 했고 그 죽음을 보충하기 위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자연스레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이 생명체에게 주어졌다.


- 생명체가 죽어야만 세상이 유지되기에 죽음이 생겨났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죽음 이후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의 의미는 다른 생명의 밑거름이 되는 것으로 족하다.     


송 박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적어 내려갔다. 마치 X의 음성이 귀에 들리는 듯 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에 연연하여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기뻐할 필요가 없다.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고 거기에 따르며 자신에게 주어진 한 생을 살아 나가라. 남성과 여성이 만나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니 후손에게 묻는 선조여~

  부디 아이를 낳고 그대들에게 주어진 한 생을 살아가시오

    

여기까지 대답을 작성한 송 박사에게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이 세상은 왜 만들었을까요?’

현재의 실험 결과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미션이 종료할 때까지 X도 알지 못했고 또 알고 싶어 했던 의문점이기 때문이다.

‘왜 DR. S는 프리티비를 만든 것일까?’

X도 마지막에 같은 의문을 품고 미션을 종료했다. 이 질문만은 다시 타임캡슐에 넣어 더 미래의 후손들에게 답을 구하라고 권고하려다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선조들이 던진 마지막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자신이 X와 다를 것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쓸쓸하고 무력한 미소가 얼굴에 피었다. 그는 미션이 종료된 X를 생각하며 마음을 바꾸고 마지막 질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신이... 자신들의 존재 의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한 실험무대로서 이 세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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