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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옥빛 미르(2)

 집을 나온 지 닷새째가 되었다. 부자는 아버지 예상대로 지진으로 길을 잃어 혼란스러워하는 산짐승들을 제법 잡았고 약초도 바구니가 가득 차도록 두둑이 채취했다. 또한 집에서 가져온 식량도 거의 떨어지게 되었다. 부자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포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에서 20리쯤 떨어진 산중턱까지 왔을 때 아버지는 길을 멈추었다. 깊은 산속 중턱에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은 주변에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입구가 가려져 있어 거리가 조금만 떨어진 곳에서도 거기에 동굴이 있음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이 동굴에 자주 들르는지 어렵지 않게 동굴 입구를 찾아내고 포획물들을 입구에 내려놓았다. 

“예서 잠깐 시원하게 목 좀 축이고 가자꾸나” 뒤따라오던 아들도 약초망태기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따랐다. 아버지는 동굴입구로 들어갔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20m쯤 들어가자 웅덩이가 나왔다. 늦여름의 바깥 날씨는 뜨거웠지만 웅덩이속의 물은 차갑고 시원했다. 웅덩이는 제법 넓고 깊었지만 물은 고여 있지 않고 순환하고 있었다. 아래쪽으로 깊이 파져 있어 수심이 깊었는데 그 바닥 쪽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아래쪽으로부터 끊임없이 물이 솟아나왔다. 물 표면까지 물이 솟구쳐 작은 봉우리처럼 봉긋봉긋 솟는 부분이 두어군데 보였고 한쪽으로는 넘치는 물이 작은 도랑을 통해 흐르며 동굴 입구까지 흘러 나갔다. 웅덩이 안쪽으로도 동굴은 연장되어 있는 듯 보였으나 햇빛이 거기까지 미치지 않아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입구에서 가까운 쪽 웅덩이는 햇빛이 반사되어 물속뿐만 아니라 웅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벽면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큰 웅덩이 옆엔 작은 웅덩이가 있었는데 큰 웅덩이와 달리 바위가 패여 만들어진 웅덩이로 수심도 얕았고 크기도 작았다. 마치 커다란 함지 모양으로 파여 있어서 큰 웅덩이에서 넘친 물이 흘러 들어와 고여 있었다. 큰 웅덩이의 물은 맑고 투명했지만 표면으로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연두 빛에서 푸른빛으로 점차 진해져서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물통 가득 물을 담아 목을 축이고 아들에게도 건넸다.  

“이 웅덩이가 우리 마을 저수지와 땅속으로 연결되어 있단다. 이 웅덩이 바닥에 나 있는 구멍을 타고 계속 들어가면 우리 마을 앞마당에서 보이는 큰 저수지로 나올 수 있단다.” 

아버지는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고 손으로 입을 훔치는 아들을 빙그레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였다.

“아버지 저기!!! 뭔가 움직였어요”

어린 남 포수는 놀란 눈을 치켜뜨고 손가락으로 자신이 본 것을 가리켰다. 밝은 옥빛으로 빛나는 물고기가 표면 가까이 떠올랐다가 물속 깊숙이 가라앉아 사라졌다. 산속 동굴 웅덩이에서 서식한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컸다. 언뜻 보았지만 길이 2m는 넘게 보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구부리고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물 표면이 움직이며 뱀장어처럼 움직이는 물고기가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가 돌아섰다. 

“한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로구나!!”

 아버지가 외쳤다. 처음 다가온 것보다 크기가 약간 작은 물고기가 뒤따라오다 앞에 물고기를 따라잡아 두 마리가 엉키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며 물속에서 유영했다. 물은 맑고 투명하여 두 물고기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였다. 때때로 햇빛이 반사되어 물속까지 비치는 곳으로 와서 헤엄칠 때는 비늘의 세세한 곳까지 드러날 정도로 뚜렷하고 선명했다. 두 물고기의 크기는 2m를 조금 넘었고 헤엄치는 모습은 뱀장어와 닮았지만 뱀장어와 달리 잉어처럼 빽빽한 비늘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랍고 신비로운 것은 밝게 빛나는 몸통 색깔이었다. 형광 빛처럼 밝게 빛나는 이들의 비늘은 옥빛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밝은 옥빛의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고 우아하고 부드럽게 몸통을 휘어가며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음...지진으로 인해 땅속길이 열려 이런 동물이 예까지 왔나 보구나”

아버지는 넋을 잃고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동굴입구로 가서 참새 몇 마리만 가져 오거라” 어린 남 포수는 부리나케 뛰어가서 동굴입구에 내려놓은 포획물 중 줄줄이 엮인 참새 몇 마리 중 두어 마리를 가져왔다. 아버지는 참새를 던질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가 두 물고기가 가까이 다가올 즈음에 수면위로 참새 두 마리를 동시에 던졌다. 순간 두 마리의 물고기는 수면위로 고개를 들어 한입에 참새를 삼키고 물속으로 잠시 가라앉았다가 물 밖으로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남 포수 부자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 밖으로 드러난 그들의 대가리는 물고기의 것이 아니었다. 잉어처럼 수염이 달려 있었지만 그 길이는 훨씬 길었고 머리 위 양쪽으로는 귀처럼 생긴 돌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전체적으로 물고기 보다는 악어의 대가리와 더 닮아 있었다. 참새를 꿀꺽 삼키고는 물뱀이 물 밖으로 고개를 들고 헤엄을 치듯 머리를 빳빳이 들고 이리저리 부드럽고 우아하게 헤엄쳤다. 그 모습을 보니 이 동물은 물 밖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고기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물 밖으로 몸통을 드러냈을 때 보니 이들의 등에는 등지느러미 같은 갈기가 있었고 앞쪽과 뒤쪽에는 아주 짧은 다리가 도룡뇽의 다리처럼 돋아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이가 너무 짧아 제 기능을 발휘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도롱뇽이나 악어로 보기엔 몸길이가 너무 길고 다리는 너무 짧았다. 또한 뱀장어 보단 몸통 지름이 훨씬 두꺼웠고 물고기의 몸통처럼 납작하지 않고 원형이었다. 그 모습이 구렁이처럼 보였지만 몸통은 훨씬 굵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비늘 탓으로 몸 전체가 옥빛을 띠어 더없이 신비로웠는데, 등 쪽의 갈기에만 검은 색이 살짝 비치었다. 

“아버지 도대체 이게 무슨 동물이죠?”

“....글쎄다. 나도 난생 처음 보는 동물이다. 아마도 지진 때문에 땅속어딘가에서 나타났나 싶다.”

아버지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두 마리가 크기도 좀 다르지만...비늘이 좀 달라요. 큰 놈의 비늘이 더 빽빽하고 등 쪽의 갈기도 더 뾰족해요”

“그렇구나...아마도 큰 놈이 수컷이고 작은 놈이 암컷인가 보다”

미지의 동물들은 귀도 밝은 듯 했다. 남 포수 부자가 대화할 때마다 머리 상단의 귀같이 생긴 돌기를 곧추 세우고 가까이 다가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듯 멈추었다가 동판 두드리는 금속성 소리를 내며 돌아가곤 했다. 그 동물들은 남 포수 부자를 경계하지 않는 듯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남 포수의 아버지는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뜰채를 구해서 다시 동굴로 올라갔다. 그는 신기한 이 동물들이 사라지기 전에 사로잡아 작은 웅덩이로 옮겨 놓을 생각이었다. 경계심이 없는 이 동물들을 참새먹이로 유인하여 사로잡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남 포수의 아버지는 진귀한 이 동물들이 언젠가 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매일같이 동굴에 올라가 참새나 꿩 같은 먹이를 주며 이 신기한 동물들을 사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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