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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옥빛 미르(4)

 마을로 내려 온 남 포수는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읍내로 나갔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20리 길을 걸어 괴산 읍내에 있는 약재상 점포로 향했다. 용두리 마을 주민들은 밭농사가 주업이었지만 농한기 때에는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거나 산에서 약초를 캐어 괴산읍에서 열리는 읍내 장에 내다 팔아 생계에 보탰다. 읍내에는 상인들로 구성된 상계가 있을 정도로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장이 서는 날과 평일 사이에는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수 차이가 많이 났다. 계절에 따라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 판매가 이루어졌는데, 봄철에는 달래, 고사리, 두릅 등의 산나물과 여름에는 옥수수, 가을에는 송이버섯, 더덕, 도라지 등이 거래되었다. 이 지역은 특히 산이 깊어서 농산물 뿐 아니라 사냥한 산짐승의 거래도 이루어졌다. 남 포수는 오래전부터 거래해 오던 김 씨네 약재상을 찾았다. 김 씨는 대를 이어 약재상을 운영해 오고 있었고 그의 점포는 괴산 일대에서 가장 컸다. 취급하는 물건도 다양했고 도시의 도매상과도 연줄이 닿아 있어 희귀한 것을 처분하기에는 가장 적당한 곳이었다. 남 포수의 아버지 대부터 약초와 산에서 포획한 짐승들을 이곳과 거래하고 있어 남 포수는 김 씨 아재를 잘 알고 있었다. 김 씨는 남 포수의 아저씨뻘 되는 나이로 남 포수가 겪은 어린 시절의 비극을 알고 있었으며 그를 가깝게 대해주고 잘 챙겨주었다. 김 씨의 약재 점포는 읍내 사거리에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중심지에 있었고 점포와 멀지 않은 곳에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와 김 씨의 집이 있었다. 괴산 일대에서 가장 큰 약재상답게 그의 집은 너른 마당을 가지고 있었고 마당 한 구석에는 우물도 있었다. 

 남 포수는 서둘러 읍내 사거리 점포로 김 씨를 찾아갔다. 초로에 접어 든 마른 체형의 남자가 양쪽으로 자란 숱 없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부채질을 하고 앉아 있었다. 

“아재여, 보여줄 게 있어 왔어유” 

남 포수는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 한 손으로 등 뒤의 지게를 가리키며 김 씨에게 말했다.

“아 조카 왔는가. 오랜만이네. 아직 이주는 안했는가?”

남 포수의 근황을 물으며 김 씨의 시선이 지게 쪽을 향했고 지게 옆으로 삐져나온 동물의 꼬리 빛깔을 본 그의 눈이 빛났다. 남 포수는 주위를 둘러보며 쉽사리 지게에 얹혀 있는 물건을 내려놓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김 씨는 이런 남 포수를 보고 말했다.

“자자... 예서 이러지 말고 집으로 가세...집에 가서 얘기하세”

두 사람은 점포에서 가까운 김 씨네 집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고 김 씨는 지게를 지고 뒤 따라 오는 남 포수를 가끔씩 뒤돌아보며 지게에 얹혀 있는 물건에 관심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오래지 않아 김 씨네 창고에 도착했다. 창고 앞에는 나무 말뚝에 매어 놓은 사납고 검은 세퍼트 한 마리가 있었다. 아마도 창고를 지키기 위해 기르고 있는 것일 텐데 덩치가 엄청 크고 입가의 거품사이로 드러나는 송곳니가 무시무시했다. 창고마당을 들어서는 일행을 보자마자 맹렬하게 짖어대며 묶인 줄을 끊어버릴 듯이 날뛰었다. 김 씨는 꾸짖는 목소리로 익숙하게 세퍼트를 달랬지만 그 맹수 같은 개는 남 포수의 지게를 쳐다보며 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김 씨네 창고 안은 다양한 약초들이 정리된 채로 나무상자에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그 나무 상자들은 차곡차곡 쌓여져 창고를 채우고 있었다. 창고 벽면에는 짐승들의 털가죽이나 박제품들이 걸려 있었다. 남 포수는 창고 안을 둘러보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멈춰 섰다. 김 씨도 몹시 궁금한 눈빛으로 남 포수의 말을 기다렸다.      

“아재여...내가 오늘 산속 동굴 속에서 이런 놈을 잡았어요”

남 포수는 지게를 내려놓고 둘둘 싸인 헝겊을 벗겨 옥빛 동물을 보여주며 말했다. 동물은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그렇듯 머리와 꼬리를 위로 쳐들며 몇 번 펄떡였지만 이내 눈을 감고 조용해졌다. 숨이 차보이진 않았다. 김 씨는 먼저 그 동물의 빛나는 옥빛 비늘 색깔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윽고 윗저고리에서 돋보기안경을 꺼내 끼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악어 대가리 같이 생긴 머리부위에서부터 몸통의 빽빽한 비늘과 갈기, 조그만 다리, 꼬리 등을 유심히 살피고 나서,

“이 동물은...내가 평생 못 보던 동물일세...이 세상 동물이 아닌 거 같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동굴에 나타났을까” 

김 씨는 동물에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감탄하며 말했다. 

“아마도 어제 지진 때문에 땅위로 나온 것이 아닐까요?”

남 포수는 20년 전 아버지가 추측했던 바를 자신의 의견인 양 김 씨에게 말했다. 김 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한참을 살피다가 김 씨가 입을 열었다. 

“자 이렇게 하세...일단 이 녀석은 우리 마당 앞 우물에 넣어두세...내가 이 동물을 살 작자를 찾아 볼 터이니 그 때까지 우물에 넣어두기로 하고...음...운이 좋으면 값을 꽤 쳐줄 사람을 찾을 수도 있겠네 그려”
 남 포수는 김 씨의 말에 눈을 빛내며 다음 할 말을 기다렸다. 

“적당한 작자를 만나 값을 치르면 자네가 7할, 내가 3할을 갖는 거로 하세. 어떤가?” 

김 씨와의 거래는 별 어려움 없이 끝났고 미지의 동물은 김 씨네 우물 속으로 옮겨졌다. 우물 안에서 가끔씩 동판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고 그 때마다 김 씨네 사나운 개가 같이 짖어댔다.       

 며칠 후 김 씨네 점포로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김 씨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한 박사님 오랜만이네요.” 

김 씨가 인사를 건넨 한 박사라는 사람은 중년의 나이로 보였는데 벗겨진 이마가 실제 보다 더 나이 들어보이게 하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김 씨는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는 듯 했다. 한 박사는 어딘가 고집스럽게 보였고 피부는 까무잡잡했다. 박사라는 호칭과 어울리지 않게 작업복 차림으로 방문한 그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고 전국의 산과 들을 헤매며 발로 뛰어 다니는 박물학자처럼 보였다. 등에는 무엇인가가 잔뜩 들어있는 등산용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는 국립생물다양성 협회라고 하는 국가 연구기관의 연구원이었다. 그 기관은 한반도의 자생생물과 새로이 연구 발굴된 생물종을 검토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매년 국가생물종 목록을 발간하고 새로이 발굴되는 자생생물 및 분류학적 위치가 변경되는 분류군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는 일을 해오고 있었다. 

 김 씨는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동물이나 연구가치가 있는 생물이 입수되면 가끔 그에게 연락하여 구매의사를 타진하거나 연구용 동물들을 공급하기도 해왔던 것이다. 

“김 선생님...말씀하신 그 동물을 빨리 보고 싶군요...선생님과 통화한 대로라면 그 동물은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종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한 박사는 자리에 좀 앉으라는 김 씨의 호의를 못 들은 척 몹시 서두르는 눈치로 김 씨를 재촉했다. 

“허허 한 박사님 성질 급한 건 여전하시군요...예서 잠시 숨 좀 돌리시며 차 한 잔하시고...물건은 여기에 없습니다.”
 김 씨는 효과적인 흥정을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차를 한 잔 내오고 뜸을 들이며 한 박사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한 박사는 가져온 차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에 앉지도 않았으며 점포 안을 서성거리며 김 씨를 재촉했다. 

 잠시 후 김 씨가 앞장서서 출발하고 두 사람은 김 씨네 마당 앞 우물에 도착했다. 우물은 둥글게 나무 합판으로 만들어진 덮개로 덮여있었다. 김 씨가 덮개를 열자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창고입구에 묶여 있던 세퍼트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한 박사는 매우 긴장하며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김 씨네 우물 벽은 높지 않았고 수심도 깊지 않아 우물 가운데에 똬리를 틀듯이 잠겨있는 옥빛 동물이 선명하게 보였다. 한 박사는 숨이 멎을 듯 놀라며 오! 하는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곧 배낭에서 돋보기를 꺼내들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인기척을 느낀 동물이 똬리를 풀고 우물 안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우물 직경이 작아 동물의 몸은 자연스레 우물의 테두리를 따라 둥글게 말렸다. 한참을 감탄하며 관찰하기를 마친 한 박사가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파충류의 일종으로 보이긴 하는데...어류와 파충류의 중간 변종으로 보이기도 하고 물과 육지에서 서식할 수 있는 양서류의 특징도 갖고 있군요...이 동물은 새로운 종의 출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김 씨는 한 박사의 중얼거리는 말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대꾸 없이 듣기만 하고 있었다. 

“음...동물이 내는 소리는 목 부위의 딱딱한 비늘의 마찰로 인한 소리같네요. 비늘이 금속처럼 딱딱해서 구리판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거 같아요.”

“파충류에 가까운 종으로 암수가 존재할 수 있고 생식하여 알을 낳아 번식할 것으로 생각되는 군요...아! 정말 놀라운 생물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생물의 특징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다니요”

한 박사는 쉴 새 없이 흥분하여 중얼거렸다. 김 씨도 한 박사의 높은 관심이 흥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연결되어 기분이 좋아 한마디 덧붙였다.

“이 동물을 포획한 사람이 전한 말인데...20년 전에도 이 동물을 목격했었다는군요...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크기가 변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놀랍군요...성장속도가 그렇게 느리다는 것은 이 동물의 수명이 매우 길다는 것이겠죠...인간의 수명을 훨씬 넘어서겠어요...음...혹시 먹이로 무엇을 주고 있나요?”

“그것도 전해들은 얘기인데...참새나 꿩 같은 조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음...육식을 하는군요...아무튼 이 생물은 매우 놀랍군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이 틀림없고 학술적으로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동물입니다.”

 드디어 김 씨가 관심 있어 하는 내용을 한 박사가 꺼냈다. ‘학술적으로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동물은 그 만큼 값이 많이 나가는 동물이라는 말이었다. 김 씨는 놓치지 않고 말을 받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박사님, 연구를 위해 이 동물을 사시겠다면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 박사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무엇인가 고민하는듯하다가 말했다.

“보통 이런 경우에...” 한 박사는 이 대목에서 뜸을 들였다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희귀한 동물이 발견되면 국가에 기증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국가에서는 소정의 대가를 지불해야겠지만요”

 김 씨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이 무슨 도둑놈 같은 심보인가? 국가라고 이 귀한 동물을 헐값에 강탈해 갈 수 있단 말인가?’ 실망감으로 맥이 탁 풀렸지만 김 씨는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박사님, 제가 이 동물을 잡아 온 사람과 상의 좀 해봐야겠군요...”

김 씨는 서둘러 우물을 덮었다. 한 박사는 좀 더 봐야겠다고 김 씨를 말렸지만 그의 행동은 단호했다. 한 박사는 아쉬워하며 서울에 가서 보상금에 대해 상사와 의논하여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씨는 장사꾼의 촉으로 그 보상금이라고 하는 것의 최대치가 그를 만족할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거래는 재미없는 것이 될 것이었다. 한 박사는 절대 다른 구매자를 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다시 내려오겠다고 약속하고 서울로 올라갔지만 김 씨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마음은 다른 구매자를 헤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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