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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옥빛 미르(3)

 한편, 괴산군에 들어와 있던 인민군은 국군의 반격에 밀려 북으로 후퇴한다는 소문이 마을에 들려오고 있었다. 

 어느 날 남 포수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다시 동굴로 올랐다. 이번에는 두 마리중 하나를 포획할 계획이었다. 괴산 읍내에 주둔하고 있다는 인민군이 북으로 후퇴하고 나면 포획한 한 마리를 처분하여 돈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이 동물이 무엇이건 간에 동물을 살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재수가 좋으면 큰돈이 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포획한 동물을 담을 커다란 소쿠리와 지게, 동물을 감쌀 헝겊 등을 준비하여 동굴로 들어섰다. 그날따라 동굴 내에는 이상한 냉기가 흘렀다. 평상시에도 동굴 안은 서늘했지만 오늘은 더 심했다. 잔뜩 찌푸린 날씨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발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은 동판 두드리는 금속성의 소리에 흠칫 놀랐다. 그 소리는 동물들이 가끔 내는 소리였지만 지금 들리는 소리는 굉장히 날카롭고 컸으며 좀 체로 멈추지 않았다. 작은 웅덩이에 도착한 그들은 웅덩이 속을 들여다보고 숨이 멎을 듯 놀랐다. 두 마리 중 암컷이라 생각되었던 작은 동물이 축 늘어진 채 배를 보이고 누워 있었다. 죽어 있었던 것이다. 동판 두드리는 소리는 남은 한 마리가 내는 소리였다. 울음소리였다. 죽어 있는 암컷의 비늘은 옥빛에서 먹빛으로 변해 있었다. 수심이 깊은 큰 웅덩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동물을 작고 얕은 웅덩이에 가두어 놓은 탓일까? 매일 던져준 먹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동물이 인간의 손을 탄 까닭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두려움과 실망감으로 맥이 풀린 남 포수 부자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동굴 안은 남아 있는 한 마리 옥빛 동물의 금속성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그 소리는 동굴 안에서 큰 울림으로 번져나갔다. 

 잠시 후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수습했다. 가져온 헝겊에 둘둘 말고 소쿠리에 담고 지게에 얹었다. 비록 죽긴 했지만 그래도 값이 나갈 것임에 틀림없었다. 남아 있는 한 마리가 작은 웅덩이에서 요동치며 더욱 날카로운 소리로 울어댔다. 어린 남 포수는 덜컥 겁이 나 아버지의 팔을 끌며 동굴 입구 쪽으로 재촉했다. 동굴 입구를 나서기가 무섭게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 양동이로 퍼붓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주변의 비탈에서 흐르는 물과 합류해서 금세 물길을 만들고 급류가 되어 세차게 아래쪽으로    흘렀다. 하늘은 완전 먹빛으로 변해 세상을 삼킬 듯 빗줄기를 뿌려댔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던 부자가 산을 반쯤 내려왔을 때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한두 발이 아니었다. 연거푸 총소리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발걸음을 멈추었고 귀 기울여 총 소리에 집중했다. 빗소리에 섞여 분명하진 않았지만 그 소리는 마을 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였다. 남 포수의 아버지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괴산 읍내의 인민군이 국군에 쫓겨 후퇴한다는 소문이 생각났다. 그는 더 이상 마을로 내려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을에는 아내가 남아 있었다. 그는 갑작스레 밀려오는 공포로 이가 부딪힐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잠시 후 퍼뜩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마을의 동정을 더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을 찾아 산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갔다. 가파른 산길 옆으로 나무가 우거지 곳을 헤집고 나가니 앞이 탁 트이고 마을을 한 눈에 내려 볼 수 있는 낭떠러지의 바위 봉우리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급하게 그리로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지만 마을은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을 한가운데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공터가 보였고 인민군으로 보이는 총을 멘 사람들이 부지런히 무엇인가 실어 나르고 있었고 공터에는 주민들이 쓰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후퇴하는 인민군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식량을 약탈하고 저항하는 주민들을 학살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바위 봉우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어린 남 포수도 이 비극적인 상황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아버지에게 달려와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내려가던 길을 되짚어 다시 산을 올랐다. 그는 동굴로 돌아왔다. 여전히 동굴 속은 금속성 울음소리가 메아리 치고 있었고 작은 웅덩이 속에 남겨진 옥빛 동물은 죽은 듯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지게에 올려있던 사체를 내려 헝겊을 벗기고 큰 웅덩이에 흘리듯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작은 웅덩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수컷도 번쩍 안아 큰 웅덩이로 던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옥빛 수컷은 몸통을 두어 번 뒤틀다가 부르르 떨더니 힘차게 죽은 동물 쪽으로 헤엄쳐 왔다. 이윽고 자신의 몸을 죽은 동물에 감더니 함께 물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욕심을 부려 영물을 죽인 게야...그 벌로 마을사람이 죽고 네 어미가 죽었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속죄하며 흐느꼈다. 이윽고 동물이 사려져간 쪽으로 무릎을 꿇었고 엎드려 사죄하듯 큰 절을 하고 한참을 일어서지 않았다. 

 동굴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거짓말처럼 비는 멎었고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남 포수 부자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며 마을로 내려왔다. 인민군은 마을에서 식량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약탈하고 떠난 상태였다. 마을은 황량했다. 남 포수 부자처럼 마을을 떠나 있어 어제의 비극을 피하고 오늘 돌아 온 몇몇 주민들이 죽은 가족을 확인하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남 포수의 아버지도 제일 먼저 아내를 찾았다. 느티나무 옆에 아내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내 옆에는 쌀을 담아 두었던 작은 항아리가 깨어져 뒹굴고 있었고 쌀 알갱이 몇 톨이 비에 젖어 진창이 된 땅위에 뿌려져 있었다. 아마 아내는 쌀을 뺏어가려는 인민군에게 저항을 하려다 변을 당한 것 같았다. 그 날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남 포수의 아버지는 그 날 이후 실성한 사람처럼 변했고 집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로부터 5년 후에 죽었다. 남포수가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이것이 남 포수가 기억하는 지진에 관한 첫 번째 기억이었다.        

 흔들리던 호롱불이 꺼져 가려다 다시 살아났다. 첫 번째 지진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 마을의 비극에 대한 과거를 회상하던 남 포수는 이불장에 기댄 등을 펴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마누라 옆에 아무렇게나 누웠다. 쥐 오줌으로 얼룩진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사냥 일정을 앞당기자. 당장 내일 아침 집을 나서 산속 동굴을 찾아보자.’ 두 번째 지진이 바로 어제! 자신의 마을에서 발생했다는 라디오 속보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20년 전에 목격한 그 옥빛 생물을 또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이튿날, 남 포수는 아침 일찍 사냥채비를 마쳤다. 코를 흘리는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배웅을 하려고 마당에 서 있는 마누라가 의아한 눈으로 남 포수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사냥채비와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나 사용하던 뜰채와 소쿠리, 커다란 담요를 지게에 실었다. 지게는 나무를 하러 갈 때나 지고 가는 것인데 오늘은 나무를 하러가는 것이 아니고 사냥을 나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더더욱 이상한 건 며칠 전 잡아놓은 꿩 한 마리와 참새 몇 마리를 지게에 얹혀 놓고 있는 것이다.  

“사냥을 가는 거에유, 나무를 하러 가는 거에유?” 

“......” 남 포수는 말이 없었다. 

“언제 돌아와유?”

“오래 걸리지 않을 겨. 지진이 또 일어날 지도 모르니 영식이 단속 잘 허구 있어” 

 남 포수는 손등으로 코를 쓰윽 훔치고 바지에 쓱쓱 닦고 있는 아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여 말했다.

“엄니 말 잘 듣고 있어라이”

“야. 아부지”

남 포수는 손을 흔드는 모자를 뒤로 하고 산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죽은 이후로 동굴엔 가보지 않았다. 그러나 동굴이 어디에 있는 지는 잊지 않고 있었다. 

 나뭇잎이 우거진 동굴입구까지 쉬지 않고 오른 남 포수는 숨이 찼다. 동굴 입구 주변에는 전보다 나무가 더 우거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동굴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조차 그 입구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입구에서 숨을 고른 남 포수는 잠깐 두려움이 스쳐갔다. 20년 전 발생했던 마을의 비극이 이 동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죽은 아버지는 믿고 있었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남 포수가 하려고 하는 일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그럴 리가 없다고 머리를 저었다. 아니 이주해서 살아가야 할 막막한 현실이 그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몰고 갔고 그 절박함이 아버지의 두려운 믿음을 무시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과 상관없이 남 포수를 맥 빠지게 만드는 생각은 20년 전에 발견됐던 그 동물이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서 우연히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남 포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큰 웅덩이와 작은 웅덩이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다만 이전 보다 웅덩이의 수심이 더 깊어 보였다. 아마도 댐 건설로 계곡에 물이 차올라 그 물과 연결되어 있는 이 동굴 속 웅덩이의 수심도 높아진 것이리라. 남 포수는 가져온 손전등으로 큰 웅덩이를 이리저리 비추며 살폈다. 동굴 안쪽 깊숙한 곳으로도 불빛을  비쳐 보았다. 갑작스런 빛에 놀란 박쥐들이 푸드덕 거리며 동굴내부를 이리저리 날라 다녔다. 어릴 적엔 손전등이 없어 동굴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는데 지금 보니 그 깊이가 퍽 깊었다. 손전등의 빛이 다하는 곳까지 동굴은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 미지의 동물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그를 맥 빠지게 했던 생각이 현실적으론 옳은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지진이 일어났다고 그 동물이 다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한참을 기다리며 물속을 관찰했지만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혀를 차며 남 포수는 낙담했다.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일어서며 마지막으로 가져온 참새 몇 마리를 물속으로 던졌다. 그러나 물속은 여전히 조용했다.

 지게를 메고 돌아서서 발을 막 떼려는 그때였다. 예의 그 동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 포수는 흠칫 놀라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동굴 깊숙한 저쪽으로부터 남 포수가 참새를 던진 쪽으로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타났다!! 옥빛 동물이 물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아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남 포수는 숨이 멎을 듯 긴장했다. 참새를 한 잎에 삼킨 동물은 고개를 쳐들어 물 밖으로 내밀고 물뱀처럼 우아하게 헤엄쳐 왔다.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지진이 어제 새벽 20년 만에 다시 일어나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이곳에 오긴 했지만 남 포수는 이 신비한 동물이 또 나타나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동물은 다시 나타났다. 죽은 아버지가 말한 대로 정말 지진이 땅속 길을 열어 이곳으로 다시 온 것일까? 20년 전 죽은 암컷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디에서 살다가 지금 다시 나타난 걸까? 남 포수에게는 많은 의문점이 떠올랐지만 모두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그 동물은 변한 것이 별로 없었다. 몸에 달린 광채가 나는 옥빛 비늘도 그대로였고 크기도 별로 커지지 않았다. 남 포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20년의 세월은 보통의 동물이면 수명을 다할 수도 있는 시간인데 이 동물은 죽기는커녕 전혀 자라지도 않은 것이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몸통 앞뒤로 짧게 돋아있던 발이 조금 더 길어져 보인다는 것과 두 마리가 함께 다니던 것이 이제 수컷 한 마리만 남았다는 점이었다. 이 동물은 여전히 남 포수를 경계하지 않는 듯 보였다. 동판 두드리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도 하면서 이리저리로 자유롭게 헤엄치며 놀았다. 

 남 포수는 가져온 꿩 미끼를 물에 튕기며 동물을 유혹했고 한 손에는 커다란 뜰채를 허리 뒤로 숨긴 채 잡고 있었다. 별로 경계심을 갖지 않고 움직이던 동물이 꿩을 낚아채려 다가왔고 남 포수는 꿩을 잡은 한손을 놓고 두 손으로 뜰채를 부여잡고 동물의 꼬리 쪽으로부터 몸통 쪽으로 움직여 동물을 뜰채 안으로 넣는 데 성공했고 동시에 끙 하고 힘을 주어 들어올렸다. 동판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해지며 저항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남 포수는 물 축인 담요로 동물을 둘둘 감싸 습기를 유지해 주고 지게에 얹었다. 크기가 2m가 넘는 동물은 지게를 가로지르고도 머리와 꼬리 부분이 지게 밖으로 삐져나왔다. 간혹 움직임이 있었지만 물 밖이라고 숨을 헐떡이거나 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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