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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옥빛 미르(1)

 남 포수는 어두운 호롱불 아래서 자신의 엽총을 닦고 있었다. 아버지가 쇠약해 질 무렵 그는 왕성한 청년이 되었고 아버지는 자신이 아끼던 총을 물려주며 그에게 처음으로 사냥 일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포수가 된 이후로 아버지가 물려준 공기총을 버리고 자신의 엽총을 소지한 지 20년이 되어간다. 그에게 이 엽총은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 소중한 수단이자 유일한 자산이다. 아버지가 준 총은 주로 날아가는 새를 잡는 산탄 엽총이었다. 그 총은 큰 짐승을 잡기엔 부족했고 50m 이상의 장거리에는 사거리가 미치지 않았다. 남 포수는 덩치가 커지면서 아버지가 물려준 산탄총을 버리고 선조총이라 불리는 라이플을 사용하였다. 이 총은 멧돼지 같은 큰 짐승도 포획할 수 있었다. 남 포수는 매일같이 총열과 약실을 소지하며 총에 정성을 들이고 아꼈다. 

 남 포수가 사는 마을은 정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라 호롱불이나 촛불을 상시 구비해 놓고 있어야 했다. 어두운 불빛에 의지해야 했지만 총 손질은 늘 하는 일이라 손놀림이 빨랐다. 가끔씩 흔들리는 호롱불 불빛에 방벽에 커다랗게 드리워진 남 포수의 등 그림자도 같이 흔들렸다. 아버지 대부터 살아온 오두막 밖으로부터 산 짐승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부엌이 딸린 한 칸짜리 방에는 낮 동안의 밭일에 지친 마누라가 코를 골며 곯아 떨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아들 녀석이 배를 드러낸 채로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다. 남 포수는 조만간 사냥을 떠날 작정이었다.  

 남 포수가 살고 있는 마을은 괴산군 칠성면의 용두리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었다. 계곡의 양 옆으로 높은 산이 솟아 있고 산을 따라 이어진 계곡은 구불구불 길게 이어져 마치 용의 몸통을 연상케 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왔던 사람들이 머물러 살게 되면서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했다. 속리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이 마을 앞 저지대 계곡에 큰 저수지를 형성하고 있었고 계곡이 깊어 저수지의 수심은 매우 깊었다. 

 70년대 대한민국은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전력난이 심각했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 수력발전소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 곳 용두리 마을도 계곡이 깊고 마침 큰 저수지가 이미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있어 발전소용 댐을 건설하기에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계곡 하류에 물을 막아 댐을 짓고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구불구불한 용의 몸통을 닮은 계곡에는 물이 채워지기 시작했고 계곡에 자리 잡고 있던 용두리 마을은 수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계곡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으나 비교적 지대가 높은 용두리 마을은 아직 잠기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도 곧 물에 잠길 처지였다. 이주를 해야 하는 주민이 30여 가구 정도 남아 있었다. 괴산 군청 공무원들이 수시로 마을을 방문해 이주를 독려하고 있었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쥐꼬리 같은 이주보상비를 들고 오랫동안 생의 터전인 마을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남 포수도 곧 마을을 떠나야 했는데 도시 지역으로 나가 생계를 이어갈 길이 막막했다. 그는 마을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냥을 나가 돈을 좀 마련할 심사였다. 운이 좋아 큰 짐승이라도 몇 마리 잡으면 이주해 자리 잡기까지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이 마을이 있는 계곡 저지대에서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산 중턱쯤에 계곡을 따라 4Km의 오솔길이 이어진다. 이 오솔길은 마을에서 읍내로 나가는 유일한 도로였고 댐이 완공되어 계곡물이 만수위로 차도 오솔길 높이까지는 이르지 못할 것이었다. 마을로부터 이 길까지 오르는 길은 멀지 않아 마을에서 산 쪽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이 길을 만날 수 있는데 댐 건설이 있기 전까지는 육로였으나 댐이 건설되면서 물이 차 들어와 그 육로의 일부가 잠기게 되었다. 평소에는 수심이 얕아 무릎을 걷으면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비가 오거나 하면 수심이 깊어져 용두리 마을은 마치 섬처럼 고립되었다. 마을 어귀에 작은 배가 묶여져 있어 이 배를 이용할 수 있지만 배가 작아 한 번에 두서너 명만 탈 수 있었다. 결국 마을 주민들은 댐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모두 이주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총 손질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남 포수는 이불장 위에 올려 져 있던 조그만 라디오를 내려 전원을 켰다. 라디오는 원래는 깨끗한 미색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빛이 바래 거의 누런 빛깔이 되어 있었다. 낡아 빠진 라디오는 전원을 켜자 치지직 거리는 잡음을 먼저 토해냈고 간간이 사람 목소리를 섞어 내보냈다. 남 포수는 라디오의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고 간혹 방바닥에 두들기기도 하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람 목소리에 집중했다. 사냥을 나가기 전 항상 날씨 정보를 체크하는 것은 남 포수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치지직 거리던 라디오가 순간 잡음을 떨구어 내고 깨끗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속보입니다.!! 28일 오전 6시 30분께 충북 괴산군 북동쪽 11km 칠성면 용두리 지역에서 규모 4.1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이라고? 그럼 어제 느꼈던 그 진동이 지진이었던가?’ 남 포수는 깜짝 놀라서 라디오를 들어 귀 쪽으로 가까이 대며 계속해서 집중했다. 칠성면 용두리는 바로 남 포수가 사는 마을이었다. 

“이번 지진은 올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강한 지진이자 역대 38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입니다. 진원의 깊이는 12km로 추정됩니다. 치지직...계기 진도 4.1은 실내에 있는 많은 사람이 느끼고 일부가 잠에서 깨며 그릇과 창문 등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추후 여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인근 주민들은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치지직” 

 라디오는 더 이상 사람의 목소리를 섞지 않고 치지직 거리는 잡음만을 토해냈다. 남 포수는 정작 들으려던 날씨 정보는 듣지 못하고 자신의 마을에 어제 새벽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만을 접하게 되었다. 가재도구라고 해야 밥그릇 몇 개와 부뚜막에 걸린 솥단지가 전부였던지라 강도 4.1의 지진이 얼마나 자신의 살림살이에 위력을 줄 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이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지진이 초라한 살림살이와 가족의 신변에 줄 위력과는 상관없이 “지진”이라는 단어가 남 포수에게 불러일으킨 것은 고통스런 기억과 뜻밖의 기회가 찾아올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남 포수는 라디오가 올려 있던 이불장에 등을 기대고 흔들리는 호롱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호롱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남 포수가 지진에 대해 들었던 건 그의 전 생애를 걸쳐 오늘의 라디오 속보가 두 번째였다. 그가 첫 번째로 지진에 대해 접한 건 그의 아버지로부터였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헐레벌떡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지진이 났다고 흥분해서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 어머니와 그는 잘 감지하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전쟁이 진행 중이던 때라 이 산골에도 심심찮게 포탄이 떨어져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들리곤 했었다. 지진의 진동을 포탄의 울림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분명한 지진이었다고 외치며 지금보다 더 형편없었던 살림살이를 단속하느라 분주했었다. 살림살이 단속은 금세 끝나 버리고 아버지는 다시 사냥 떠날 채비를 하셨다. 전쟁 중이라 하지만 아직까지 그 전쟁의 여파는 산속 깊이 자리 잡은 이 마을까지는 미치지 않았고 마을 주민 대부분은 평상시처럼 생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간혹 괴산 읍내에 공산군이 들어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긴 했지만 이 마을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아버지가 서둘러 다시 사냥을 떠나려했던 이유는 지진 발생으로 놀란 산짐승들을 포획하기에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제 막 목소리가 굵어지고 솜털이 나기 시작한 아들을 이번 사냥에 동행시키자고 마음먹었다. 한번 사냥을 나가면 며칠씩 산에서 노숙하며 지내고 돌아오는 일이 보통이라 어머니의 걱정이 대단했지만 끝까지 말릴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남 포수가 첫 번째 지진을 기억하는 이유도 그 지진을 계기로 그가 처음으로 아버지와 동행해 사냥을 떠났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며칠간의 식량과 산에서 노숙할 침낭을 챙긴 부자는 산속으로 떠났다. 

남 포수의 아버지는 사냥을 전업으로 하는 포수는 아니었다. 마을 인근의 조그만 밭뙈기에서 농번기 때는 아내와 옥수수며 콩을 심어 수확도 하구 좀 한가해 지면 엽총을 들고 꿩이나 토끼 등을 사냥하거나 약초를 캐다가 팔기도 하였다. 그가 사냥하는 동물도 멧돼지나 곰 같이 큰 짐승이 아니고 주로 꿩이나 토끼 등을 사냥했다. 때때로 참새같이 작은 조류도 포획했다. 그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여러 가지 약초와 버섯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총 다루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밤이 되면 하늘의 별자리를 보며 방향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어린 남 포수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신나는 일이기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지만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던 어린 남 포수는 방학 때가 되면 어머니 일손을 돕거나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조르곤 했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을 혼내며 공부해서 대처로 나가라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이제는 아들이 그런 길에는 싹수가 없음을 깨닫고 자신과 동행하기를 허락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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