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분명히 웃긴 웃었어요.
해가 길어진 요즘엔 막내아이의 성화에 초저녁까지도 귀가를 못해요.
옛날엔 어린아이 혼자서도 놀이터를 다녔는데, 지금은 붙어서 지켜봐야 하는 세상이니까요. 덕분에 운동도 되고 아주 좋네요. 조금 피곤은 하지만요, 잠깐씩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기니 그건 또 좋아요.
미끄럼틀이 지겨워진 아이를 따라 풀을 뜯어서 식탁을 차려요. 가끔 손님역할을 해줄 개미도 주워와야 해요. 제가 어릴 땐 공벌레를 주웠는데, 요샌 잘 없어서 개미가 대역을 뛰죠. 그땐 놀이기구가 많지 않아서 오히려 할 게 더 많았어요. 딱히 놀거리를 발견 못했을 땐 냅다 뛰어다니면 그게 노는 거였죠. 누가 보든지 말든지 제가 재밌으면 되는 시간이었어요. 구름에 적당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무언가를 잘하지 않아도 모든 시간에 가치가 있었어요.
여섯살 막내아이도 그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좋아서 웃고 신나서 달리는 그런 시간. 찾아야만 찾아지는 행복이 아닌, 손바닥만 펼쳐도 나타나는 행복. 그렇게 환하던 어린 나는 건너뛰기를 한 듯 지금에 와있어요. 언제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게 말예요.
시간을 쪼개 쓰고 꿈을 계산하고, 기쁨보다 효율이 먼저가 된 나를 보아요. 마음보다 일정이, 희망보다 목적이 중요해진 내가 보여요.
옛시절의 나로 되돌아갈 순 없지만, 그래도 마음껏 웃어볼 수 있진 않을까 하고 문득 생각해 봤어요.
그냥 살아갈 뿐인데도 반짝거렸던 순간들이 추억으로 묻혀 있어요. 이유가 없어도 웃을 수 있고 계획이 없어도 놀 수 있었던 기억들이에요. 그 기억에서, 무언가를 잘하지 않아도 웃어볼 수 있는 용기를 길어왔어요.
우리 안에는 여전히 해맑은 우리가 살아있어요. 순수한 시절에 저장되었던 자신만의 세계가, 아직도 가만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가끔은 그 아이를 데리고 나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유 없어도 웃어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