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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을 벌써 넣었다고요?

넣기 전에 한번만 봐바요.

by 청유 Mar 14. 2025

겨울이 끝나가요.


(저는 수족냉증이 있어서 겨울 아직 안끝났어요.)


현관 옷걸이며 식탁 의자며 패딩들로 난리바가지였는데, 이제 드디어 치울 수가 있네요. 패딩 드라이값이 어마무시했어요. 그래도 셀프세탁은 못하겠더라고요. 고수들이 하라는 대로 해도 이상하게 하자를 남겨요. 빨리 말린다고 말려도 냄새가 나고, 아무리 두들겨 패도 솜이 죽어요.(너무 죽도록 팼나..)

 

깨끗해져 돌아온 패딩들은 비닐이 입혀진 그대로 옷장에 넣었어요. 대식구라 옷도 많아 힘을 잔뜩 주며 밀고 끼우고 해야 해요. 패딩을 거는 것뿐인데 진이 다 빠지네요. 그래도 가지런히 압축되어 세로정렬된 패딩들을 보니 뿌듯했습니다.ㅎ 다음 겨울에 보자- 하며 옷장문에 손을 얹는데 괜히 아쉬운 마음도 생겼어요. 


너의 계절을 다음에 다시 만날 때 반가웠으면 좋겠어. 추운 겨울 어떻게 또 보내지, 하는 걱정보다, 네가 있어 참 좋아, 하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저는 패딩 안에 쪽지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겨울이 한바퀴 휘 돌아 다시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 계절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일들을 지나왔을까요? 지금부터 다음까지의 구간을 재는 듯이, 저는 이 시간의 흔적을 남기기로 합니다. 가족들의 패딩 주머니 안에요. 



겨우 정리해 둔 패딩을 다시 더듬어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지만.

남편 옷에 들어갈 쪽지예요.

보일러라는 별명을 가진 남편의 아웃도어 패딩은 전쟁터에 입고 가도 살아남을 것 같은 포스를 지녔어요.


용돈을 동봉합니다.


네 명의 아이 중 둘째딸만 당첨됐네요. 

첫째는 패딩을 안입거든요. (그러게 따뜻하게 다니랬지)

셋째는 엄마 쪽지를 내팽개치는 걸 여러번 목도했어요. (이럴수가..)

넷째는 한글을 몰라요. 

그러니 차별 아니죠?


아무쪼록

이 쪽지를 발견하게 될 그 시간, 잠시라도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앉아서 저의 겨울로 보낼 편지를 쓰려해요.

유행이 지나 더이상 찾지 않는 아이들의 (것이었던) 패딩에도, 올해만 입고 버리자는 다짐을 돌아서게 만드는 해진 수면바지에도,

나의 옷에도

주머니는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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