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있는 달리기

덴버에서

by 래미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 위를 달려보신 적 있으신가요? 한국에선 밤새 눈이 내린 날이면 숫눈을 밟기 위해 치동천에 서둘러 나가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숫눈을 밟아본 건 몇 번 되지 않아요. 새벽 다섯 시에 나간 저보다 먼저 치동천을 걸어간 누군가 있었기 때문이죠. ‘누굴까. 어디를 그렇게 일찍 나섰던 걸까.’ 어둠이 빽빽하게 내려앉은 치동천을 달리며 혼자 떠올린 말은 ‘출근’이었습니다.


선물 님은 여전히 출퇴근 생활을 하고 계시지요. 저도 출퇴근 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정이 넘어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당연하게도 가뿐한 아침이란 없었어요. 출근 버스를 놓치지 않으면 다행이었죠. 믹스커피 두 봉을 털어 넣은 머그잔에 가쁜 숨을 내쉬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연구개발 부서에서 일을 했어요. 프린터에 탑재되는 신규 펌웨어(Firmware)를 개발하는 곳이었죠. 그런데 몇 년간 한 모듈만 개발하다 보니 프린터 부품이 된 것 같았어요. 저는 직무 전환 신청을 했고, 다행히 제 요구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때부터 상품 기획과 제품 마케팅 업무를 하게 되었어요. 이제 해외 출장도 자주 다닐 거라며 얼마나 신나 했던지요. 그야말로 신세계가 시작된 거 같았거든요.


그곳은 정말이지, 신세계였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의미로요. 그곳은 쓰는 용어부터 생각의 방향과 범위, 사람들의 기본 성향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개발 부서에서는 설계 및 기획이 필요하거나 현장 문제가 있을 때만 회의했어요.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개발을 하는 데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회의, 회의! 회의의 연속이었어요. 의사 결정을 할 때도 필요성과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돈이 되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요. 회식은 왜 이렇게 잦은 지.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고 그러니 상사가 원하는 만큼 술을 마시는 것도 능력이라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난관이었지만 그중 가장 큰 난관은, 제 직급과 능력치의 간극이었어요. 직급은 대리인데, 마케팅 실무 능력은 신입사원 이하였달까요. 일단 숫자(가격, 매출, 이익 등)로만 소통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도대체 돈을 벌 수 있는 기획이 뭔지, 제한된 하드웨어와 비용으로 차별화된 포인트는 어떻게 기획하는지, 한국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북미, 구주 판매를 촉진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발굴하는지. 대리라는 직급을 반환하고 싶었습니다. 팬트리나 사무실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 보면 속이 울렁거렸어요. 제 흉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럴 때면 화장실로 숨곤 했습니다. 아무도 대놓고 뭐라 하지 않았지만 저는 알았거든요. 제가 대리에 걸맞은 능력이 없는, 구멍투성이라는 사실을요.


결국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엔 다양한 원인이 작용했지만, 제가 구멍인 걸 들킬까 봐 불안했던 마음이 큰 몫을 차지했어요. 퇴사만 하면 불안에서 해방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정문을 나서던 순간, 생각지도 못한 후회가 밀려왔어요. 사원증에 적힌 직무와 직급. 그걸 반납하고 나니 저를 증명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제가 누군지, 누구였는지, 누구일 수 있는지, 무엇도 말할 수 없는 상태.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겪어내는 과정을 나만 견뎌내지 못했다는 패배감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 인간이 되었다는 무력감에 휘청이면서 저는 ‘출근’이란 말과 멀어졌어요.


며칠 전 새벽, 이곳 콜로라도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우박이 서서히 변하더니 눈이 되더라고요. 내린 눈이 유난히 고슬고슬해 보였어요. 결정이 단단하게 뭉쳐있는 게 아니라 느슨하게 엮여 있달까요. 힘을 주어 잡으면 부서지기보다 바스스 흩어질 거 같았어요. 그 눈을 보며 제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맞습니다. 숫눈을 밟으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500킬로미터 이상을 달린 구멍 난 아식스 러닝화를 꺼내 신고, 영하 12도의 눈과 바람을 막아 줄 마스크와 진자주 비니도 썼습니다. 그리고 체리 크릭 공원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바깥은 온통 숫눈이었어요. 새벽마다 개 산책을 시키는 분들이 많은데, 추운 날씨에 눈까지 내리니 아무도 안 나오신 듯했어요. 내딛는 발마다 숫눈 천지였습니다. 살짝 벅차오르더라고요. 이게 콜로라도지! 맘에도 없던 예찬까지 나오고요. 그런데 그 기분도 잠시였어요. 길이 보이질 않았거든요. 두텁게 쌓인 숫눈이 길의 경계까지 지워버린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경계와 이정표를 가려버리는 게, 또 숫눈이었어요.


체리 크릭 공원에 들어서자,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체리 크릭 공원은 넓은 평원이거든요. 눈에 띄는 굴곡도 없고, 오르막 내리막도 거의 없는. 그 위로 두텁게 쌓인 눈과 앙상한 겨울나무, 그리고 회색빛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나무를 기준으로 방향만 어림잡아 달렸어요. 눈 아래 숨겨진 돌이나 키 작은 나무, 경사진 잔디의 경계를 밟고 비틀거리기를 여러 번. 그러다 한 지점에 발을 디뎠는데, 왼쪽 발이 빠지면서 발목을 살짝 접질렸습니다. 쌓인 눈 아래 구멍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발목이 꽤 시큰거렸어요. 눈앞에 펼쳐진 온통 하얀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래 숨겨진 구멍이 얼마나 많을까. 위험하다…….


작은 발자국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프레리도그나 야생 토끼, 혹은 이름 모를 작은 동물의 발자국이었겠죠. 그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아래는 울퉁불퉁했고, 그때마다 비틀거렸지만, 작은 발자국을 따라가는 순간엔 조금 안심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공원을 반쯤 돌았을 때, 드디어 사람 발자국을 발견했어요. 그 옆으로, 지그재그로 따라간 작은 발자국도 있었는데, 반려견의 것인 듯했지요. 그 발자국이 숫눈보다 반갑더라고요. 저긴 길이다, 확신했습니다. 발자국을 따라 마음 놓고 달리다 보니 호수가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눈 오는 날 꽁꽁 언 호수 위를 달려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이었어요. 시간이 정지된 흑백 사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건 오직 내리는 눈과 나뿐인 기분, 상상할 수 있으시겠어요? 속눈썹 위로 쌓이는 눈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묘한 기분에 얕은 흥분이 올라왔어요. 호수 위 쌓인 눈에 발을 쾅하고 굴렸지요. 눈 속으로 발이 쑥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구멍 난 아식스 운동화는 무리였던 걸까요. 신발 안으로 차가운 눈이 들어와 녹기 시작했습니다. 얼른 발을 들어 올렸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아세요? 구멍, 구멍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든 발자국은 눈 위로 드러난 구멍이더라고요.


눈 아래 숨겨진 구멍과 눈 위로 드러난 구멍. 같은 구멍이라도 위치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로 숨겨진 구멍엔 발을 다쳤지만, 위로 드러난 구멍은 길잡이가 되어주었잖아요. 출퇴근하던 시절 구멍투성이던 제가 소환되었어요. 그때 만약 제가 부족한 능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면 어땠을까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말이지요. 어쩌면 새벽 달리기 대신 숫눈을 밟으며 가슴 벅찬 출근을 하고 있었을지도요. 음, 아니에요. 저는 그러지 않았을 거 같아요. 더 일찍 일어나 숨이 차게 달리고, 출근도 했을 거예요. 어차피 가정이라 확인할 길은 없지만요.


공원을 빠져나와 도롯가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해가 떴고, 그 사이 제설 작업을 시작하고 있더라고요. 공원으로 달려올 때 밟았던 숫눈은 모두 제설차에 밀려 납작해져 있었습니다. “와, 편하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어요. 눈에 발이 푹푹 빠지며 달리다가 평평해진 길을 달리면 얼마나 편한지 아시죠? 42킬로미터는 더 달릴 수 있는 것처럼 가볍게 느껴지잖아요. 근데 가만 보니, 제설차가 밀고 간 자국도 구멍이더라고요. 폭이 넓고 기다란 구멍. 넓은 구멍에 빠지면 그토록 편안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구멍을 없앨 수 없다면 차라리 큰 구멍이 되는 건 어떨까, 싶었어요. 혹시 아나요. 누군가 제 구멍에 와서 “와, 편하다” 하며 잠시 쉬어갈지도요.


선물 님은 스스로 구멍이라 생각하신 적 있으세요? 저는 요즘에도 하루에 몇 번씩 제 구멍을 발견한답니다.


한국 핸드폰 요금 안 낮췄어? 아, 맞다!

국민연금 잘 나가고 있지? 그, 그럴걸?

엄마 왜 내 필드 트립(소풍) 동의서에 서명 안 했어? 미안, 지금 할게.


제게 남은 구멍은 몇 개쯤일까요? 앞으로 얼마나 더 생길까요? 그 구멍들을 한데 모아 넓은 구멍 하나로 빚어내는 걸 상상해 봅니다. 분화구쯤 되려나요. 누군가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품 넓은 구멍을 가지게 된다면, 누구보다 저에게 너그러워질 것 같아요. 저의 숭숭한 구멍을 좋아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콜로라도엔 아직 한참 더 눈이 내릴 거라고 해요. 이제는 숫눈을 탐내기보다 발자국을 따라 달릴 시간이 더 기다려지네요. 다음 구멍들은 저를 어디로 데려다줄까요? 선물님의 구멍도 들려주세요. 혹시 아나요? 우리 모두의 구멍이 합쳐지면 세상의 커다란 안식처가 될지.

이전 08화허수의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