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서모임이 끝나자마자 이 감동이 사라지는 것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글을 시작한다.
생각이라는 단어로 시작된 대화는 의식, 인지, 지성을 거쳐 지혜와 통찰로 발전했다.
나는 생각, 지식을 무엇이라고 판단해 왔던가.
나는 지혜를 무엇이라고 이해해 왔던가.
대화의 진행을 경청하면서, 나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람, 지식을 가진 사람, 지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 온 과거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살아내기 위해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는 의료인으로서 더 최신의 근거에 기반한 간호를 각 대상자에게 맞춤화하여 제공하고자 다짐한 시기가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생각하고, 지식과 지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살아내기 위해 살아오면 빠르게 배우는 능력이 생긴다. 이 능력 덕분에 생각하고, 지식과 지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시간들은 투입한 만큼 나에게 그대로 나타났다. 주변으로부터 점차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평가를 듣게 되었고, 근래에는 '체계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 과정과 결과로 나타난 내 모습에 꽤 만족했던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모습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노력했으며,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교육의 현장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지혜와 통찰이라는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서서히 깨어났다. 나는 곧 내가 가진 지식만으로는 학생들을 제대로 대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이들은 지식만으로는 성장하지 않는다.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성장을 돕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가 부족한 나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어려웠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성과 인격을 성장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이러한 부족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갈망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던 것 같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앞에서만이라도 '어른'이 되자."
"내가 적어도 이 아이보다는 '어른'으로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제 선명해진다.
내가 살아내기 위해 살아왔던 사람에서 지식과 지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자 했던 여정.
그 과정에서 변화된 나의 모습들.
교사로서 느꼈던 부족함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이 모든 내면과 외면의 역동을 통해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새벽 5시에 시작하는 독서모임은 위대하다. 경이롭다.
개인의 생각과 지식을 드러내고 나누며, 인식과 지성을 확장하여 지혜와 통찰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만남.
차분히 열려 뜨거워지는 새벽의 시간.
기대된다. 벅차다.
20대 시절 참여했던 일요일 아침 7시 독서모임, RAD(Readers At Dawn)의 경험과 느낌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그 활기찬 기운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2시간으로 예정된 모임은 책을 읽고, 질문하고, 나누는 젊은이들의 열기로 정오를 넘기기 일쑤였다. 질문이 꼬리를 물고, 생각이 확장되며, 인식이 팽창하던 그 시절! 그 특별한 공간과 시간, 느낌!
내가 다시 경험하고 싶던 바람이 오늘 새벽시작되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움직이는 거대한 우주의 방향성! 내가 진심으로 원하면 우주는 나를 돕는다. 나는 단지 온 마음을 다해 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동시성'이란 우리가 변하면 우주는 그 변화를 더욱 심화, 확장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긴 전쟁을 끝내고 만난 연인처럼 그동안 버려두었던 자아를 반갑게 맞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