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이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1개월을 넘길 수 없다는 말이 귀로는 들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단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와 산책을 잘 다녀왔는데 1개월 뒤에 죽는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이는 정돈데, 어떻게 1개월 뒤에 죽는다는 건지 도무지 가당치 않았다. 그러나 장군이 뱃속을 검사한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 내가 들은 말들이 정말 그렇게 될 일이라는 것이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했고 나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다.
장군이가 얼마 후 죽는다는 사실은 나에게 많은 감정이 들게 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은 황당함, 진짜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 내가 일찍 알아채지 못해서 병원에 늦게 왔나 싶은 죄책감, 그동안 내가 몰라봤을 행동이 병의 증상들이었나 아닌가 헤집어 보는 갑갑함, 몇 개월 전에 다녀온 여행이 장군이에게 안 좋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 그리고 나와 함께해 온 내 반려견이... 내가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되어준 내 털복숭이 친구가 아프다는 사실... 죽는다는 사실이 극도의 슬픔과 두려움을 몰고 왔다.
장군이의 생의 의지를 존중하고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완화의료적 수술을 했고, 경구 항암제를 복용한 후 얼마 동안은 장군이가 급격히 회복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불가능한 일인걸 알면서도 외면한 채, 건강했던 옛날로 돌아간 느낌을 즐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미 전이되어 있던 간에 암세포가 빠르게 종양화되는 것을 보고는 결국 불가능한 희망을 품었었다는 것을 다시 직면하고 바라보고, 목에 걸린 덩어리를 억지로 삼켜버리 듯 괴롭게 꿀꺽 삼켰다. 본격적인 호스피스 케어로의 전환이었다.
호스피스 케어로 전환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언제라도 장군이가 죽는 순간을 맞닥뜨린다는 생각.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결국 그런 순간은 올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준비"하기로 했다.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는 이유는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슬퍼만 하다가 어영부영 장군이를 보내지 않기 위한 대비, 내가 당황하다 장군이를 더 잘 보내주지 못할 것에 대한 대비,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한 대비, 내 슬픔보다 장군이 삶의 마무리를 잘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간과하지 않도록 하는 대비.
장군이가 사망하는 순간부터 사망한 이후까지 떠올려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장군이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나의 두려움과 슬픔 같은 감정들은 넣어두기로 했다.
사망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고 상상했다. 고통스럽지 않게 장군이가 자는 도중에 편안히 가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컸다. 그렇지 않을 경우라면, 장군이의 안위를 최대한 편안하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강아지의 정상 신체 가동 범위나 자세를 고려해서 최대한 장군이의 자세가 편안하도록 취해주어, 마지막 숨의 끝자락까지도 고통을 덜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갑작스럽게 쓰러지거나 발작을 하는 경우라면 주변에 위험한 물건이 없도록 치우고 억지로 자세를 변경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도 포함되었다. 장군이의 동선을 고려해 내 손이 닿기 용이한 곳에 수건, 물티슈, 배변패드, 비닐봉지와 같은 용품들을 미리 두었다.
장군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미리 생각해 두지 않으면 나는 분명 울기만 하고 나중에 이렇게 말해줄 걸 하고 또 슬퍼할 것이 분명했다. 사망하는 순간 장군이를 안정시켜 줄 수 있는 말, 숨이 끊어진 후에 2시간 동안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청각을 고려해 그 순간에 해주고 싶은 말들을 사전에 생각했다. 실제 나는 장군이에게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갔다 올게, 사랑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그리고 장군이가 편안한 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바라는 말들, 다시 만나자는 말도 해 주었다.
사후강직이 시작되기 전에 사후처치를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들은 미리 준비해 두었고, 장례식장에 가기 전까지는 냉방이 가능한 곳에 아이스팩을 몸에 끼우고 교체하면서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공간을 미리 생각하고 확보했다. 장군이는 전조증상을 보이고 30분도 안되어 사망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짧았다는 것에 위안을 두고 있지만, 한 번 더 안아줄걸 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과 행동과 결정과 선택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모두 다 장군이를 위한 것이었으므로.(반려견 사후 기초 수습 영상 링크)
사후 기초 수습을 할 때에는 한 생명의 삶의 끝맺음을 대한다는 마음과 내 가족이라는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해 귀한 손길로 대했다. 삶의 끝맺음은 삶의 완성이다. 마침표를 찍어야 문장이 완성되는 것처럼. 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생명들 중에 한 인간 종에 불과하며 다른 생명들에 대해 다 알 수 없지만, 내 인식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오버할 것도 소홀할 것도 없다. 생명 존중. 그것이 가장 우위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반려견 가족이라는 것...
장례식장에 가기 전까지 하루 정도 장군이를 집에 데리고 있기로 했지만, 막상 시간이 다가오면서 보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만 더 장군이를 데리고 있자고 남편에게 제안했고, 그가 동의했다.
시원함을 넘어서 추울 정도로 맞춰진 공간의 온도, 단단하게 굳은 차가운 장군이의 몸, 굳은 표정, 분미물... 과 같은 것들이 서서히 '낯섦'이라는 감정이 들게 했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장군이를 사랑하며, 사랑한다는 것이 장군이의 육신을 가져야 함은 아님을. 이렇게 내 가족의 육신을 보낼 수밖에 없도록 세상이 만들어 놓았음을. 그것에 반하는 것은 되지도 않는 고집을 부리는 것이며, 내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장례식장으로 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세상의 순리가 네가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내가 너의 육신을 보내지만 너를 사랑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장군이에게 마음으로 말했다.
반려견을 기억할 물품은 무엇으로 하고 싶은지, 화장 후 유골을 어떻게 보관하고 싶은지, 추모 방식은 어떤 식으로 하고 싶은지 등도 생각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감추기보다는 미리 가족들과 터 놓고 이야기해서 준비한다면, 내 반려견이 가는 길에 더욱 충만한 사랑을 더 해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당황하거나 슬퍼하고 있다가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이하기엔 반려인에게 반려견은 정말 소중한 존재인 것을 안다!
반려견 호스피스 과정에서 반려견의 마지막을 앞서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반려견에게 집중하고 그의 삶의 완성도를 높이도록 한다. 나의 슬픔은 잠시 뒤로 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나중에 슬퍼해도 된다. 나중에 슬퍼하는 것만 해도 엄청나다.)
죽음을 앞두고 주어진 시간이 더욱 빛나기를,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며 반려견의 삶을 더 잘 완성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