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장군이의 죽음의 순간을 담고 있으며 순전히 나를 위한 글이다. 왜냐하면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9월 22일 오후 12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전날이라고 하기엔 늘 당일 새벽 5시가 다 돼서야 잠들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날도 역시나 낮밤이 뒤바뀐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어나자마자 장군이부터 본다. 예쁘다. 늙고 병들었는데도 어쩜 너무 예쁘다. 호흡이 빠르다. 장군이는 역시나 잠을 잘 못 잤을 것이다. 허공을 쳐다보거나 엄마를 쳐다보며 지샜겠지. 2-3시간마다 깨서 장군이 자세를 바꿔 주면서 나도 그의 방향을 따라 눕는다. 그냥 그렇게 나란히 눕고 싶어서다. 최대 용량으로 진통제를 쓰면서도 듣지 않는 통증이 분명 장군이를 괴롭힐 텐데 내가 약이 될 순 없으니, 옆에라도 나란히 눕는다. 언제부턴가 내가 자고 일어나서 장군이를 보면, 장군이는 나를 보고 잠깐 눈이 똥그래졌다가 다시 본인 느낌에(아마 통증일 테지) 신경 쓰는 모습이다. 나는 '우리 장군이 오늘도 예쁘네'를 잠시 느끼고 다시 복잡해진다.
장군이를 보고 난 다음엔 남편과의 카톡 메시지를 확인한다. 장군이와 관련된 모든 것은 여기에 기록하고 공유하는데, 밤동안 남편이 보고 기록해 둔 모습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새벽 5시 31분에 장군이 호흡이 60~70회 수준인 것을 적어 놓고 '일단 추ㅟ침 하겠음'이라는 오타 섞인 카톡이 마지막이다. 남편과 나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에 소중하고 행복하게 보내자고 마치 잊은 것이 생각난 듯 한 번씩 불쑥불쑥 말하지만, 금세 각자 암묵적으로 맡은 일들을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말없이 맡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장군이를 살피고 내가 모르는 상황들이 있었는지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면, 순서대로 먹여야 할 약들의 첫 번째를 시작한다. 종양이 커지면서 소화계통 장기들을 누르기 때문에 주로 먹여야 하는 약은 소화 관련 약과 진통제다. 장군이는 진통제를 싫어한다. 진통제를 캡슐에 넣어서 주는데도 기가 막히게 냄새를 알아차리고 먹기 싫어한다. 먹기 싫어하다 보니 저항하다가 이빨로 물어 캡슐이 터지면 싫어하는 쓴 약이 입 안에 퍼지면서 몸무림 치는데, 이건 진통제가 싫어지는 악순환이다. 이제는 먹기 싫어하는 모습이 줄었다. 약을 먹기 위해 앉는 자세를 취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인가 보다. 내가 장군이 자세를 취해주면 남편이 그대로 붙잡고 있는데, 그래야 장군이가 옆으로 또는 앞으로 쓰러지지 않는다. 갈수록 진통제 보다 싫어한 것은 첫 번째 약 다음 두 번째 약이 대기한다는 사실 같았다. 하루 종일 약을 먹는(먹여지는) 장군이를 보면 내 마음은 하루종일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오후 12시 30분경. 스케줄에 따라 두 가지 약을 먹이고 나면 장군이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미안함보다는 약을 잘 먹어준 장군이가 기특하다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오늘은 뭘 좀 먹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유동식이라도 먹여야 되는데, 그래야 하루 총 섭취 칼로리가 100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장군이가 좋아하는 간식 위주로 순서대로 돌려가며 시도해 봤지만 역시나 모두 팽당했다. 장군이가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쩔 수 없이 산책을 먼저 나가야겠다 싶어 남편과 산책 나갈 준비를 한다. 새롭게 최애 간식으로 비상한 소간트릿(소간으로 만든 큐브형 간식)을 꺼내 입 앞에 가져다 댔는데 고개를 젓더니, 엄마의 시도가 애처로웠는지 하나 먹어준다. 아니면, '옜다 먹을 테니 얼른 나가기나 하자'라는 식이었나. 장군이가 하나 먹으면 정말 기쁘다. 간사함의 극과 극을 달리는 인간의 모습이 이러할까. 그가 억지로 먹는 것보다는 스스로 조절하는 만큼씩 먹는 것이 좋다는 걸 머리로 알면서도, 간식 하나라도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걱정근심우울 삼종세트였던 마음이 순식간에 다른 극에 가 있다. 그리고 입으로는 '아이고~!! 우리 장군이 먹었ㅉ.. 너무 잘해ㅉ.. 오구오ㄱ....!!!'(상상하시는 대로다...)
나는 산책 갈 기운이 생겼다. 아니, 좋은 기분이 생겼다. 장군이가 간식을 하나 먹었기 때문에. 비록 나와 다르게 장군이는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 말 듯 산책 채비를 하는 곳의 중간까지 도착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유일하게 혼자 힘으로 걷는 순간은 산책 가자는 말이 떨어질 때다. 나는 장군이가 비틀거려도 속으로 놀랄지언정 바로 가서 잡아주지 않는다. 바닥에는 매트가 다 깔려있기 때문에 크게 다칠 일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장군이가 스스로 움직일 때는 그의 움직임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컨디션이 달라진다는 것은 매 순간 어느 정도인지 체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날도 나는 먼저 산책 채비를 하는 곳에 가 있었고 '장군~ 산책 가자'를 말하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장군이는 나오지 않았다. 앉아 있는 자세에서 점점 고개가 떨어질 뿐. 그리곤 호흡이 가빠지는 듯했다.
계속 지켜봤다. 나에게 지켜본다는 것은 장군이에 대한 정보를 얻는 중요한 수단이다. 남편이 장군이가 좀 이상하다고 했다. 그렇기도 한 듯했지만, 부정하는 마음이 얼른 올라와 덮었다. '아냐 장군이 괜찮아, 좀 시간이 걸리나 봐'라고 말하며, 부정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장군이에게 가고 있었다. 그와 높이를 맞춰 앉았다. 장군이는 이내 괜찮아졌다. 장군이를 쓰다듬었다. '장군이 괜찮지? 산책 갈 수 있어? 산책 가야지. 장군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인데.'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평소처럼 그가 누울 수 있는 큰 개모차에 눕혀 산책 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장군이는 뒤로 돌아 다시 침대 쪽으로 향했다. 비틀거리면서.
얼마 가지도 못하고 다시 뒤돌아 나를 봤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도와달라는 듯이,
알 수 없는 그 눈빛...
네 개의 발로 불규칙한 리듬을 만들며 내게로 성 큼성. 큼... 다가왔다.
그 순간 남편의 말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우리 장군이가 이상한 게 맞다. 지금은 정말 이상했다. 알 수 없는 뜨거운 막막함이 가슴에 생겼다.
"어..?! 자기야, 우리 장군이 진짜 이 상 하 다..."
내 말도 장군이의 걸음걸이만큼이나 불규칙하고 불안정했다.
장군이는 내 앞에서 주저앉듯 쓰러졌다. 이내 호흡 소리만 들렸다.
노력하는 숨소리.
몰아쉬는 숨소리.
어안이 벙벙한 채 당황했다. 슬픔이 몰려오려 했지만, 장군이를 얼른 쓰다듬고 옆에 있어주어야 된다는 생각이 슬픔을 눌렀다. 당황도 눌렀다. 슬픔과 당황은 나중에 하는 것이고, 지금은 장군이를 잘 보내야 한다고.
장군이를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 누군가 그 생각 박스 안에 나를 넣어 놓은 것처럼 나는 그 안에서 경직된 채 옴짝달싹 못했다.
장군이에겐 숨겼지만, 머릿속은 생각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 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장군이는 사망하는 건가.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순간이 내가 생각해 봤던 그 순간인가. 장군이는 생과 사의 다리 중간에 서 있나. 장군이가 나를 떠나 괜찮을 수 있나. 내 곁을 떠나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지.'
'장군이를 쓰다듬어 줘야 해. 이 순간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야 해. 장군이가 익숙한 말들을 해줘야 해.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말들도 해줘야 해.'
그리고, 이 생각.
'장군이가 이제 편히 가서 쉬면 좋겠다. 나도 너무 지쳤다. 힘들다.'
장군이는 9월 22일 오후 1시 21분에 사망했다.
장군이가 알 수 없는 눈빛을 보인지 30분이 안된 시간이었다. 난 그렇게 슬픔을 누르고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 냈다. 마치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채비들을 잘 풀어내 사용한 것처럼.
슬픔이 몰려왔다. 한 번에 몰려와 나를 뒤덮었다. 내 가슴에 뜨거운 막막함, 그것이 서서히 올라와 이제 터져야 된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장군이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던 나는 그를 쥐어 감싸 안으며 통곡하고 있었다.
장군이가 죽는 순간을 왜 글로 써야 할까. 장군이가 죽는 순간을 목차에 넣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내 깊은 마음을 알아버렸다.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자유롭고 싶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정해 놓은 생각 박스 안에 나를 욱여넣고
그 박스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해야 할 일을 모두 하고 나오라고.
나와서 조차 박스 기준에 벗어났던 생각에 불편해하는
박스 밖에 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박스 안에서 괴로워하는
나를...
세상이 만들어 놓은 삶의 퇴장의 절차인데
내가 잘 보내고 말고 가 어디 있다고...
남들에겐 어떤 마음이든 잘 못된 것은 없다고 위로하면서,
너무 고생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하지 않는 행위를 남에게 말하고 행동하는 위선을 그만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야박한 결과를 가져온 나에게
이제 그만 야박하라고...
그만 야박한 건...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이렇게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서...
그렇게 하려 한다...
장군이를 위해 최선을 다 했음을,
충분히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음을,
스스로에게 말해주겠다.
아리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어. 얼마나 힘들었어. 고생했어.
나의 마음을 다 한다는 것이
내 착각 속에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난 당시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치고 힘들어서 장군이가 이제는 떠나는 길도 편하게, 가서도 편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