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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Apr 26. 2023

엄마의 시간을 나의 존재를 찾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요.

엄마의 시간은 제2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부제: 에너지 관리가 중요한 이유, 엄마의 시간은 제2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어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애나 잘 키워,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듣는 말이다. '나'라는 사람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엄마라는 상자 안에 '나'라는 사람이 들어가게 되는 것인 줄은 몰랐다. 엄마라는 작은 상자 안에 나를 가두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엄마가 이런 옷을 입어도 되는 걸까?' 하며, 예쁜 옷을 입고 싶다는 작은 바램에서조차  눈치가 보이곤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희미해져 갔고,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의 경계도 허물어져 갔다. 그저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그뿐이고, 정말 어른들의 말처럼 '애나 잘 키워야지,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며 자조했다.




벼룩은 자신의 몸에 100배까지도 점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벼룩들을 작은 유리병에 가둬 두었더니, 처음에는 탈출하기 위해 높이 점프를 하는 바람에 유리병 뚜껑에 머리를 자주 부딪혔다고 한다. 며칠 뒤, 벼룩이 들어 있는 뚜껑을 열어 두었다. 그런데 뚜껑이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마리도 탈출하기 위해 점프를 높이 뛰지 않았다.




이 실험을 보면서 엄마라는 이름에 갇혀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왔으며, 나 자신에 대해 한계를 짓고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지내 왔는가를 돌아 보게 되었다. "애나 잘 키워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라는 말에 갇힌 채, 아이를 잘 키운 엄마가 되지 못할까 봐, 남편이 힘들게 벌어 오는 돈을 함부로 쓴다는 오해를 받게 될까 봐, 집에서 놀면서 아이를 유치원 돌봄 교실에 보내는 엄마라고 손가락질 당할까 봐, 사회적으로 만들어 놓은 허상과도 같은 저 말을 거부할 용기조차 잃어버린 채 지내 왔다. 내가 가진 능력을 얼마든지 키워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리병에 갇힌 벼룩처럼 갇혔다는 사실조차 잊고, 결국엔 출구를 찾을 에너지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엄마라 불리면, 엄마로만 존재하고, 엄마로만 존재하면 엄마로밖에 불릴 수 없는 겁니다." 쓰려고 읽습니다 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당연히 엄마지만, 엄마라는 이름에 묻혀 나의 존재를 그대로 묻어 둔다면, 언젠가는 이 시간 속의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게 되지 않을까? 아니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은 이름을 갖고 태어나 자기 이름 아래 묻힙니다. 삶의 시작과 끝에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지워진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존재가 희미해질수록 인간은 자기 이름에 대한 갈증을 느낍니다. 인간은 불리는 대로 존재하고, 존재하는 대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엄마라 불리면 엄마로 존재하고, 엄마로만 존재하면 엄마로밖에 불릴 수 없는 겁니다.

쓰려고 읽습니다.-이정훈


© jontyson, 출처 Unsplash





지금의 나는 주부로서 엄마로서 대체 불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며, '나'라는 사람으로 스스로 자립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굳은 결심만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근과 퇴근이 없는 전업주부가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  또한 육아와 집안일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집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을 살리는 일 또한 정말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조금 의욕을 갖고 도전을 하다가도 '애나 잘 키울 것이지...' 하는 마음의 엄격한 판사가 나타났기 때문에도 그랬다. 그런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선 엄마의 에너지가 관리가 중요했다.




15층의 계단을 매일 오르며 체력 관리를 하는 것, 주변에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곁에 두려고 노력하는 것과 내향적인 성향에 맞춰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살림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남편의 적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늘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이가 되어 가는 것,  이 모든 에너지 관리가 나에게는 결국 엄마의 시간을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인 것이다.









엄마로서 가진 부담감과 응당 그래야만 한다는 책임감 사이, 엄마라는 이름에 자신의 가능성을 가두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그랬지만, 엄마들은 겸손이 습관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아이가 처음으로 자기 이름 석 자를 썼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그거 아무나 다 쓰는 거잖아 별거 아니야!"라고 말할까요? "와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 하겠죠. 그러면서 나 스스로가 가진 무언가에 대해서는 참 박하게 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 누가 그러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사는 데 왜 너만 유별나게 구냐고요. 다들 그렇게 살아서 행복하다면 그건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데, 제 행복은 그게 아닌데 어떻게 하겠어요. 엄마지만, 나의 행복을 찾는 게 죄는 아니니까요. 아니 저는 오히려 엄마가 먼저 언제 행복한지 알아 가고 일상에서 그걸 보여주는 게 가장 큰 교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집안을 이끌어 가는 것,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들을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 관리할 수 있도록 나름의 체계를 세웠던 것 같아요. 일단 스스로 엄마로서, 주부로서 책임을 못 다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저에게 이로운 것들을 하면서 저만을 위한 에너지를 차곡차곡 만들어 나갔어요. 그걸로 내 이름을 되찾고, 엄마의 시간을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려고요. 어찌 보면 참 치밀한 작전이었어요.




물론 제 선택이 정답은 아닙니다. 저의 행복의 레이더가 그쪽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저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고 있을 엄마들에게 하나 묻고는 싶어요... 잘나가는 인플루언서나 옆집 엄마를 보면 부럽지만, 나는 애나 잘 키우면 되는 거지 뭐, 내가 지금 와서 뭘 잘 할 수 있겠어? 내가 그렇지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한 적 있으시다면...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시길 권유하고 싶어요. 정말 나의 행복은 엄마라는 이름 하나인지를요... 나의 존재가 우선, 그다음이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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