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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May 25. 2021

나 아직 쓸만한 사람일까

같이 육아를 하던 친구들이 하나 둘, 일을 시작했다. 한 명은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어린이집에 출근하고, 또 다른 한 명은 원래 하던 학습지 교사로 돌아갔다가 지금은 공부방을 차려서 열심히 지낸다. 또 한 명은 원래 바둑을 취미로 하다가 방과 후 교사로 들어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또 다른 엄마도 새로운 곳에 취직했다며 연락을 해 온다. SNS에서 소통하던 엄마들도 물건을 판매한다거나 책을 내고 강의를 하는 등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며 자신감 넘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본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초보 엄마 시절을 함께 겪어 왔는데, 어느새 하나 둘 사회로 진출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그동안 자격증 하나도 안 따놓고 뭘 했나 싶어 자괴감이 밀려온다.




주위 사람들만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영부영하다가 둘째가 5살 터울로 생겼다. 둘째를 낳고 나니 또 그만큼 밥벌이와는 멀어져 버렸다. 아이들이 어려서 못한다는 핑계 대는 것도 한 두 해지, 그게 쌓여 가니까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이기는 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잘 아끼면서 지내도 쪼들릴 정도는 아니니 남편이 벌어 오는 돈 허투루 낭비만 안 해도 좋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외면했던 시절도 지났다.




'나는 과연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던졌다. 이 질문이 어떤 곳에 취업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경력이 단절되어서 어딘가에 취직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도, 누군가와 원치 않는 관계를 늘려 가며 사람들 속에서 힘들 것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균형을 잃고 싶지 않은 살림과 육아를 전적으로 내가 이끌어 나가면서 지금 있는 방구석에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바뀌고 난 이후부터, 이전에는 책을 취미로 읽었다면,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노력 끝에 찾아낸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인생을 살면서 계속해 왔던 게 무엇이 있었나 생각하다 보니 글쓰기 하나가 맨 마지막에 남았다. 정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던 시절에도 보고서를 썼고, 회사에서 발표 자료를 만들었고, 가끔 글 공모전에 응모도 했고, 편지도 자주 썼다. 억울하고 속상할 때, 또 기쁠 때마다 다이어리에 일기를 썼다.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블로그에 책 리뷰를, 아이를 갖고 나서부터는 육아일기를,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기저귀 값이라도 아껴 보겠다며 육아 제품 체험단 글도 열심히 썼다. 그렇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공존했던 존재가 바로 글쓰기였던 것이다. 삶에서 크고 작은 순간을 함께 해 왔던 글쓰기라면 지금 당장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래에 살아남는 직업 중 하나가 작가라고 하는 책도 읽었겠다.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 인지,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글쓰기라는 시험대 위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앞 뒤가 잘 맞지 않아 형편없는 글도 쓰고, 잘 모르지만 열심히 공부한 것들을 나누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하고, 감정이 뒤죽박죽 섞였을 땐 정리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도 했다. 남이 본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되고, 조금 더 잘 쓰고 싶어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런 고민들 속에서 조금씩 나라는 사람에 대한 브랜딩이 조금씩 이루어져 갔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는 엄마, 맘 편한 살림과 육아를 하려고 애쓰는 사람, 부족하지만 열심히 재테크 공부를 하는 사람, 조금이라도 부수입을 올리려고 애쓰는 사람, 글 쓰는 사람, 글 쓰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인 사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같은 주부들과 나누고 싶은 사람, 이렇게 조금씩 '나'라는 사람을 글로 쓰면서 규정해 나갔다. 다른 누군가가 보고 알아줄 경력한 줄 말고, 글을 쓰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경력으로 쌓아 가는 것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때로는 은유 작가님처럼 표현력이 좋고, 비유를 잘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SNS 상에서 몇 줄 안 되는 글만 써서 올리더라도 몇 백개씩 좋아요가 달리는 인플루언서의 글쓰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문장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자신만의 콘텐츠가 확실해서 책을 몇 권 씩 베스트셀러에 올리는 블로거의 글쓰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글쓰기 코칭을 하는 사람이 되어 돈벌이를 하고 싶기도 하고, 글 잘 쓰는 방법과 같은 강의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나는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자주 실망하고 속상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많지는 않지만 새 글을 올리면 언제나 찾아와 내 글에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그게 내 밥벌이가 될지는 물론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넓은 세상에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받았다. 나는 다행히도 아직은 쓸 만한 사람인 것 같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만 해도 글쓰기의 큰 수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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