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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n 21. 2018

잘 때만 꾸는 게 꿈이 아니지.

 장시간 노트북을 들여다봐서겠지? 나의 눈은, 이런 표현을 쓰기는 싫지만 눈알이 매우 얼얼하다. 눈에 좋다는 루테인도 복용하고, 블루베리도 한 줌씩 먹어 보지만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당분간 책을 읽지 말아야겠다는 나름 현명해 보이는 대책을 내세워, 한동안 책을 보지 않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을 텐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달즘 시간이 지나고, 눈알이 빠질 것 같은 상황들이 좀 정리되니  내 눈을 독서에도 나누어 쓸 수 있게 되었다. 바빠지기 전에 읽다 만, 마이클 부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을 꺼내 들었다. 휴! 오랜만이야!  작가의 통찰력 넘치는 유쾌한 북유럽 해부기인데, 아직 북유럽에 가보지 못한 나의 환상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흥미롭게 읽고 있었던 책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스웨덴 편- 순서상 맨 끝이다-부터 읽었던 터라, 그러고 보니 러시아 월드컵의 아픔이 떠오르네, 이번에는 목차대로 덴마크 편부터 정주행 한다. 덴마크에 사는 영국인 작가는 아내와 아이들의 뜻에 따라 썩 내키지 않지만 일주일간 진행되는 합숙 합창단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덴마크인의 집단적 삶의 방식을 이해할 좋은 기회라지만, 400명 가까이 되는 덴마크 전역에서 모인 낯선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된 작가의 당황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라면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 함께 노래 불러도 당당했을 텐데... 마치 덴마크 사람들처럼. 

북유럽 사람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일까?

 얼마 전에 대학교 합창단 동기를 우연히 만났다. 잊고 있었지만, 그렇다. 나는 합창단 활동을 했었다. 우리 합창단은 전공과 상관없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동아리 규모가 꽤 컸다. 한 주에 두 번씩, 내 기억으로는 화요일 저녁과 토요일 낮에 전체 연습을 하고, 가을에 있을 정기 공연을 준비했다. 합창단이니까 당연히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를 맡은 단원들이 있고, 그 단원들을 이끄는 지휘자가 있다. 단원들이야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어차피 합창이니까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지휘자는 다르다. 정기 공연에 우리 같은 아마추어 단원들을 연습시켜 무대에 올리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음대생들이 지휘를 맡아 왔는데, 합창단의 역사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3학년 때, 음대생이 아닌 사람이 지휘자가 되었다. 그것도 나의 동기가. 그렇다. 바로 오늘 마주친 그 동기다. 공대생이었던 그는 노래 부르는 게 그냥 좋았던 나와 대다수의 단원들과는 달리,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항상 음악을 연구했고, 음악에 진지했다. 음악에 열정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그래 봤자 졸업하면 합창단에서 지휘했던 일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지 싶었다.  나의 예상은 틀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소식이 끊겼던 그는 진짜 지휘자가 되어 있었다.  

 출처:클래식의 숲님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KBS교향악단과 함께한 백윤학 지휘자의  엘가,위풍당당 행진곡 지휘 장면 캡쳐.

 "네가 지휘자 돼서 놀라기도 했지만, 너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넌 합창단 때 우리랑 좀 다르긴 했거든."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합창단에서부터, 어쩌면 그전부터 일 수도 있지만,  꿈을 꾸기 시작했고, 결국 그 꿈을 이룬 거구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합창단 아니었으면 어쩔 뻔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 그래, 나도 그랬었지. 그때가 시작이었다. 합창단에서 겨울에 엠티를 갔다가 거기서 꾸민 특별 무대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시켰는지 모르겠는데, 얼떨결에 하게 됐다. 끝나고 나니 합창단 사람들이 하는 말. "너 정말 아나운서 같아!"  "아나운서 하면 어울릴 것 같은데?" 아나운서 같이 사회를 본 게 과연 잘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그런가? 내가? 아나운서...? 그와 동시에 예전에 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 앵커 멋지지 않니? 너도 한 번 해봐.'라고 했던 일도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들었던 아버지의 말이 다시 생각나는 걸 보니 완전히 흘려들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합창단 엠티가 있던 그 날 이후로 나는 아나운서의 꿈을  진지하게 키우기 시작했다.  합창단에서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 사람이 한 두 명은 아니었던 거다.

합창단에서 불렀던 추억의 노래 악보... 어디에 있는 거냐? 사진: 합창단 친구 현정, 고마워

 그렇지. 나는 꿈을 꾸었던 사람이다. 꿈을 이룬 이후로, 그 꿈을 어떻게 이뤘는지, 얼마나 힘들게 얻어낸 건지 잊어버렸지만, 나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했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나운서 시험 첫 해에는 물을 먹었고, 그러고 나서는 IMF로 경제가 어려워 언제 있을지 모를 시험을 기다리며 불안과 초조의 시간들을 보냈다. 방송사는 물론이고 어느 기업도 채용 계획이 없었다. 암담했지만 나의 꿈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매일 신문 기사들을 스크랩하고, 언론 고시를 위한 시험공부를 하고, 논술 준비를 하고, 방송 프로그램들을 모니터 하고, 카메라 면접 준비에 매달렸다. 같이 준비하는 친구들 중에 누구라도 어디선가 합격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어려웠다. 그런 시간들을 보낼 만큼 보내고 나서 겨우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1997년 말... 이런 일이 있었지.  알고보면 대포 (대한민국이 포기한) 세대 출신.사진: 경향신문

 무언가 꿈이라는 걸 꾼 지 이제 20년 가까이 된다. 세상에! 그 사이에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밤에 자면서도 수많은 꿈을 꾸는데,  깨어 있을 때 나는 그 어떤 꿈도 꾸지 않았다. 꿈꾸는 건 자유라는데, 난 그 자유를 꽤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다. 더 이상 꿀 꿈이 없었던 걸까?  사철채송화의 꽃말이 나태와 태만이라고 라디오 디제이가 이야기하고 있다. 나태와 태만이라는 단어가 아프게 꽂힌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하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들리는 말이라니... 

사실, 사철채송화는 나태하지 않다. 부지런히 꽃을 피우는 아이다. 사진: 아시아뉴스통신

 아무런 꿈을 꾸지 않았던 그 시기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가장 부러운 시기였을 수도 있다. 아나운서인 네가 부족한 게 뭐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처럼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둘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들조차 '배가 불렀구먼!'이라고 차마 말은 못 하고 있지만, 눈빛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자신도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으니까. 그만둘 당시에 도망치듯 나왔던 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비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여기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나는 흐릿하게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여기서는 어떤 꿈도 꿀 수 없다고, 그래서 떠나는 게 맞다고.  


 회사를 그만둔 지 거의 3년이 다 돼간다. 이제야 나는 선명해졌다. 더 이상 그곳에서는 꿈을 꿀 수가 없었고,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위해서 회사를 떠난 것이다. 그렇게 극단적인 처방을 하지 않고는 자기 연민에 빠져 계속 허우적 댈 것이라고. 다른 일이라도 도전해 볼 걸 그랬어라고 나중에 후회 섞인 반성만 하고 있을 것이라고.  꿈 대신 핑계만 대고 있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한 것이다. 무모하지만 결국은 나를 살리는 선택이었다. 진작 할 걸 그랬어. 후배 김소영 작가의 책 제목처럼 말이야.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내 주변에는 유유상종이라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는 그동안 해오던 일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자기 꿈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 자극도 되고 용기도 난다. 힘들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서로의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많이 배우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도전은 어려운 일이다.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디오 편집도 간신히 배웠는데, 영상 편집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 조회수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남의 지갑은 어떻게 여는 건지 마케팅에 뛰어든 사람들도 참 대단하다. '눈알'도 많이 아프고, 체력도 달리고,  돌봐야 할 사람들도 많고,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말하자면, '제2의 인생'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 도와주신 윤대현 교수님 감사!

 그래서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내 책을 쓰고 싶다고. 언젠가 이 꿈이 이루어지면, 난 또 다른 꿈을 꾸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십 년 만에 꿈을 다시 꾼 것처럼, 다음 이십 년 뒤에도, 또 다음 이십 년 뒤에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또 다른 꿈을 꾸고 있구나. 어느새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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