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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Feb 12. 2018

미스티, 절박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미스티.  흠... 격정 멜로라... 내가 생각하는 격정 멜로드라마는 19금을 넘나드는, 이를테면, 베드신 이라든지 노출신만 많은 그런 드라마는 아니다. 물론 격정 멜로를 완성하기 위해 그런 장면들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것 이외에 다른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잊고 지내다가 그 감정을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당혹스러움. 이 당혹스러움은 삶을 뒤흔들만한 크기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사랑에는 현실적 제약이 많은데, 이런 상황 속에서 당사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진실하기 어렵고 때론 말 못 할 비밀도 생긴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봐...^^ 김희애, 유아인 주연의 밀회 이후, 이렇다 할 격정 멜로를 겪어 보지 못한 터라 ‘우리 드라마는 진한 격정 멜로드라마예요’라고 대놓고 홍보하는 미스티에 관심이 갔다. 거기다가 뉴스 앵커가 주인공이라니 더 끌릴 수밖에.


 처음 입사했을 때 ‘이브의 모든 것’이라는 드라마가 방영을 앞두고 있었다. 주인공인 채림과 김소연은 아나운서 동기로 입사해 뉴스 앵커 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고, 방송국 이사로 나온 장동건 -현실에 이런 이사님이 있겠는가-을 두고 연적이 된다. 연기에 도움을 얻고자 배우 채림 씨와 김소연 씨는 우리 신입 사원 교육 때 뉴스 리딩도 함께 했었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대립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세면대 앞에서 마주친 김소연 씨에게 실제로 채림 씨랑 친한 사이인지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질문인데,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준 김소연 씨에게 고마울 뿐이다. 어쨌거나 현실 속 친절한 소연 씨와는 달리 드라마 안에서는 욕망에 가득 찬 악녀였던 그녀는 틈만 나면 갖은 모략으로 채림의 뒤통수를 치며 승승장구했다. 다행히 현실에서는 겁날 정도로 무서운 욕망의 화신, 김소연 같은 캐릭터는 없었고, 너무 착해 계속 당하는 채림 같은 캐릭터도 없었다. 

사진출처: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

 순진했던 신입 사원 시절이 한참 지난 지금, 현실판 이브의 모든 것은 어떤지 묻는다면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최근에 실제로 이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미스티를 보고 아는 후배가 언니, 정말 저래요?라고 묻는 것이다.  설마... 저 정도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극적인 장면의 연출을 위해 캐릭터들을 더 코너로 몰아놓고 심한 대립을 유도하고 있지만, 경쟁이 심한 어느 조직이든 충돌은 존재하지 않는가? 그리고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는 상황은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여자여서 더욱 그런 것은 아니다. 이브나 아담이나 다 마찬가지니까.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뉴스 앵커 자리 때문에 임신 중절 수술까지 받는 독한 사람들은 아니니까. 내가 겪은 아나운서국에도 많은 욕망들이 서로 충돌해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통해서 성숙해가겠지.


 미스티로 돌아가자. 후배 기자의 도발에 분노하며, 생방송 5분도 남지 않은 시간,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며 보도국장과 맞짱을 뜨는 고혜란 앵커. 그녀의 정면돌파 방식에 시청자들은 멋지다며 환호한다. 그러나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아니 겪고 있다. 상사나 회사를 상대로 저렇게 각을 세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면돌파 방식보다는 측면으로 돌아가든지 그것도 안되면 후진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15년 넘는 회사 생활 동안 저런 명장면을 한 번쯤은 연출해 봐야 했었는데 그러진 못했다. 

출처 :JTBC 방송 캡처한 텐아시아 기사 사진

 사이다보다는 고구마를 많이 먹었던 나와는 달리 고혜란의 명장면은 계속된다. 어차피 얼마 못할 거 쿨하게 자리 물려주면 안 되었냐고 따지는 후배 기자에게 고혜란은 절박함이 없어서 너는 안된다고 한다. 후배 기자는 그럼 당신이 그렇게 절박하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녀의 대답은 놀랍게도 정의사회 구현. 뉴스 앵커 자리를 위해서 어떤 희생도 치르는 그녀가 절박하게 원하는 건 정의사회 구현이란다.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난 그 대답의 진정성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 대화를 듣는 순간 내가 꽂힌 단어는 정의사회 구현이 아니라  ‘절박함’이었으니까. 넌 절박함이 없어. 절박함이 없어. 무엇인가 그렇게 절박하게 원했던 적이 있는가? 그 절박함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한 적이 있었던가? 넌 절박함이 없다는 고혜란의 말에 너무 뜨끔했다. 아팠다. 


 그렇다. 아나운서 생활을 돌아보면 내겐 절박함이 별로 없었다. 절박해야 하는 순간에 나는 그 절박함을 모르는 척했고, 절박한 마음이 들 때 조차도 절박함을 쓸데없는 욕심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절박함을 인정하면 많이 부족한 사람, 실패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 같아 애써 외면해왔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절박함을 인정하기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내 안의 이 절박함이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내서 나에게, 또 많은 사람들에게 오픈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절박함이 많은 것을 이루는 힘이라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절박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부족에서 비롯되고, 그 부족함은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능력이나 자질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정서적 측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경우로든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고 그 부족함을 채우고 싶은 갈망은 절박함으로 나타난다.

 

 절박하다는 말은 간절하다는 말과 통한다. 절박함. 간절함. 반드시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의지와 다짐이 간절하면 놀라운 힘이 발휘되며 결국 그 무엇이 이루어진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실제로 그런 성공 사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도 꿈과 성공을 이루는데 간절함의 중요성은 수십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을 던지며 위대한 선수가 됐다. 요즘 한창 진행 중인 평창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많은 선수들도 간절함으로 그 자리까지 왔다고 말한다. 우리도 박찬호 선수처럼, 올림픽의 선수들처럼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다. 간절하게 바라고 원한다면. 


 오늘도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미소 짓기를. 누군가에게는 작은 울림이 있기를. 그래서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다시 한번 간절하게, 절박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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