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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탄호 Oct 30. 2022

일본의 작은 마을, 도요오카

설국(雪国)일기, 일본 가방 1번지 : 효고 현 도요오카







설국 일기, 효고현 도요오카 



거친 눈보라에 가다 멈췄다를 반복하던 두 칸짜리 전차가 함박눈 소복이 쌓인 정거장에 멈춰 섰다. 맞은편 대합실에는 코 끝이 빨개진 역장 아저씨와 목도리를 두른 채 잔뜩 몸을 웅크린 여고생 둘이 서 있었고, 이들이 뿜어낸 허연 입김이 향하는 벽 위에 덩그러니 스피커에서는 ‘운행 중지’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안도의 한숨과 걱정, 허탈함,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역을 빠져나와 역전 광장에 진입했다. 세찬 눈바람에 인적이 사라지고 주인 잃은 발자국 몇 개만 남은 광장은 처량함을 자아냈다. 





건너편에 위치한 아케이드 상가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평소였으면 손님으로 분주했을 가게들은 줄줄이 셔터를 내린 채 침묵했다. 굳게 입(셔터)을 닫은 상점이 길게 늘어진 보도 를 따라 걸었다. 상점가 3분의 2거리 지점에서 노란 조명과 은은한 커피 향이 퍼져 나왔다. 1931년에 문을 연 로스터리 커피 전문점 히구라시 커피(ヒグラシ珈琲)다. 












 꽁꽁 언 몸을 녹일 겸 들어간 실내 여기저기에는 각양각색의 커피 원두가 놓여 있었고, 바로 맞은편에는 계산대와 작은 주방이, 그 뒤로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미처 떼어내지 못한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가장 따듯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했다. 히터가 뿜어내는 열기도 어쩌지 못 한 추위가 그윽한 커피 한 잔에 스르르 녹아 내렸다. 









한 모금, 두 모금 알찬 목 넘김으로 무거운 긴장과 케케묵은 피로를 씻어 낸 동시에 어느 정도 체온도 되찾았다 판단해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몸을 돌려 몇 십 보 더 걷자 도요오카 시청이 나왔고 바로 건너편에 ‘도베르주 도요오카1925’라고 하는 노란색 근대건축물이 보였다. 1934년, 은행 건물로 탄생한 이곳은 이후 몇 차례 업종 변경을 거쳐 지금은 예쁜 디저트를 파는 카페와 결혼식장, 레스토랑, 호텔을 융합한 복합 서비스 시설로 재탄생 했다. 이렇듯 오랜 역사와 사람들의 발자취가 묻은 이 공간에서 하루 쉬어 가기로 했다. 












큼직한 출입문을 열자 낭만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실내가 등장했다. 고급스러운 가구와 식탁이 놓인 실내 중앙으로는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가 진열된 동그란 카운터가 있었고 바로 옆에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가, 피아노 의자 바로 앞으로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서 있었다. 





‘이랏샤이마세, 오토마리데스까?’(어서오세요? 숙박이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녀의 안내를 받아  체크인을 하고 삐걱대는 복도 끝에 자리한 객실에 이르렀다. 






빛 바랜 입구 문 사이로 조그맣게 난 구멍에 열쇠를 넣어 돌리자 서부 개척 영화에서 볼 법한 풍경이 펼쳐졌다. 가전 제품이라고는 조그만 히터 한 대가 전부이고 가구 또한 낡은 침대와 목재 테이블, 의자 하나가 고작인. 그 옆으로 금고 하나와 조명 한 대가 달랑인 객실. 바쁜 일상과 전자기기에 지친 현대인들의 근심 걱정을 풀기에 최적인 공간에 짐을 풀고 자리 잡았다. 




고작 하루 묵는 숙소에 ‘속세의 묵은 때를 벗긴다.’라는 말을 붙이는 건 지나친 의미 부여일지도 모르겠으나 손목시계의 째깍거림 말고는 그 어떤 소음도 없는 공간에서 오롯이 내게 초점을 맞추니 마음엔 고요가, 가슴엔 안정이 스며들었다. 




눈을 감은 채 1시간가량 휴식을 취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건물 2층으로 이동했다. 1층 로비가 내다보이는 2층 공간,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피비가 무섭게 직원 하나가 다가와 오늘 나올 음식을 소개했다. 10분쯤 지나자 차례차례로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나왔다. 










푸짐한 식사 위로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 잔잔한 선율이 부른 화사한 분위기. 도처에 낭만이 가득한 지금 이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좋았다.







오장 육부와 모든 감각을 황홀케 한 식사를 끝낸 후 바깥에 나갔다. 그 사이 눈발은 더욱 거세어져서 한 치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마치 대자연이 ‘오늘은 꼼짝달싹 말고 호텔에만 있어.’ 라 명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 호기 부리며 멀리 나갈 수도 없는 노릇. 아쉬운 대로 호텔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목욕탕에 들렀다. 교고쿠유(京極湯) 라고 하는 100년도 넘은 목욕탕은 내일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허름한 외관을 자랑했다. 반다이(番台, 일본 목욕탕 카운터) 뒤로 이어진 탈의실에는 닳을 대로 닳은 목재 사물함과 1950~60년대 생활 사진전에서나 볼 법한 체중계가 놓여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목욕탕 내부는 더욱 놀라웠다. 벽 한쪽으로 색이 바랜 타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왼쪽에는 조그만 탕이, 오른쪽으로는 수도꼭지와 앉은뱅이 의자 몇 개가 달랑 남아 오랜 역사를 실감케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폭설로 인해 손님이라고는 내가 고작이라 건물 전체를 전세 낸 것 마냥 느긋하게 몸을 담갔다. 



목덜미까지 몸을 담갔다 들었다를 반복하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천정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떨어졌다. ‘똑’ 하는 소리에 옅은 파동이 일었고, 자연스레 물결이 이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건너편 외벽 위로 작게 난 창문 속 검은 하늘. 세상 모든 어둠과 고요를 집어삼킨 창틀 중간 즈음에 시선을 맡긴 후 넋을 놓았다. 적당한 포만감과 뜨뜻한 열기가 빚은 짙은 나른함,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수증기와 똑똑 떨어지는 물 방울 말고는 모든 게 멈춘 공간. 이미 나른하지만 좀 더 나른해지고 싶어 등을 벽에 붙인 다음, 허리와 둔부를 밀어 물속 깊이 빠져들었다. 







일본 가방 생산 1번지, 도요오카 



다음 날. 밤새 눈발을 흩뿌리던 눈구름이 물러난 자리에 푸른 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그 아래로 기다랗게 이어진 골목골목에서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었고, 주민 몇몇이 바람도 흩뜨리지 못한 눈더미를 치웠다. 멀지 않은 곳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공설시장인 후레아이 공설시장이 자리했다. 1925년, 시내를 덮친 대 화재 이후, 도시 부흥 차원에서 개설한 70미터 규모의 시장에는 16곳의 점포가 생계를 잇고 있다. 그리고 공설 시장 근처로는 이른 아침에만 문을 연다는 번개시장이 열렸다. 다닥다닥 이어진 가판 사이로 이른 장사를 마친 할머니 몇 분이 앉아 웃음꽃을 피웠다. 이를 지나 몇 백 보 더 걷자 ‘가방 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붙은 아케이드 상가가 등장했다. 







지난 2005년, 도요오카 시내에 소재한 가방 메이커와 상점가가 ‘지역 산업과 상점가의 활성화’를 목표로 발족한 가방 스트리트. 400m에 이르는 상점가 곳곳으로 국내 유명 가방 업체를 비롯해 수선, 가공 공방이 들어섰다. 이들 업체들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상생하는 동시에 ‘일본 가방 본고장’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시민들의 생계이자 긍지이기도 한 도요오카 가방의 역사는 19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찍이 버드나무 행낭(큰 주머니) 생산지로 번영한 도요오카는 19세기 중후반에 태동한 산업화를 맞이해 변화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이때 주목한 게 버드나무 행낭과 연관성이 있는 가죽 가방이었다. 이후 시내에 소재한 공방들은 기존의 버드나무 행낭 기술자들과 공방이 가진 노하우를 활용해 양질의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 공방이 만든 가방은 1913년, 인근 다카라즈카 시에서 결성한 여성 공연단인 다카라즈카 극단의 소품으로 널리 활용된 한편 부유층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는 일본 선수단의 행낭으로도 채택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 가방은 작은 충격에도 외형이 망가지는 일이 잦아 소비자들로부터 볼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에 도요오카 가방 장인들은 어지간해서는 안 끊어지는 피아노선으로 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튼튼한 가방이라는 이미지가 생긴 도요오카 가방의 명성은 한층 상승했다. 그 결과 1950년대 후반, 시내에는 300곳 넘는 가방 공방이 생겨 ‘일본 가방 시장’을 지탱했다. 











이러한 역사에 걸맞게 오늘날, 거리 곳곳에는 여러 가방 공방과 판매점이 남았다. 그리고 이들 가게 사이에는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가방 자판기가 있다. 누가 봐도 ‘돈 쓰고 가세요.’ 라는 신호라 평소 같으면 거들떠 보지 않았겠지만 이상하게 여행만 하면 무한대로 부풀어 오르는 호기심에 그냥 지나치지 못 하고 지인에게 선물할 가방 하나를 뽑은 다음, 큰 부담 없이 구경 가능해 보이는 가게 두 곳에 들러 가방을 살폈다. 다만, 물건을 사지도 않을 거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건 예의가 아닌 듯하여 최대한 존재감을 숨긴 채 눈으로 ‘순간’을 담았다. 그런 다음 도요요카 역으로 이동해 역전에 있는 낡은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가자, 소바의 고장 이즈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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