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그 미운 오리 새끼를 위한 변명

by 아침햇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에 ‘오늘도 스트레스와 함께!’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시작된 이 미묘한 긴장감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상사의 한마디에, 혹은 갑자기 울려대는 휴대폰 알람에까지 내 삶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어놓는다. 스트레스란 녀석, 도대체 왜 이렇게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걸까?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건, 어쩌면 스트레스를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좀 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나 자신을 관찰해 보면, 정말 그렇다. 박테리아가 모두 해로운 게 아니듯, 스트레스도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위장 속에서 유익균이 열심히 소화를 돕듯, 스트레스도 내 삶 어딘가에서 은근히 도움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을 상상해 보자. 짐을 적당히 실은 트럭은 안정감 있게 달리지만, 텅 빈 트럭은 덜컹거리며 불안하게 흔들린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라는 짐이 조금은 있어야 삶에 균형이 잡힌다. 물론 너무 무거우면 힘들고, 너무 가벼우면 허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스트레스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창조적으로 써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


생각해보면, 과학자나 예술가, 작곡가, 시인, 매일 새로운 사실을 찾으려 애쓰는 이들은 스트레스와 한 몸처럼 살아간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남을 위한 스트레스, 세상을 위한 스트레스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스트레스다. 기독교의 진리도 결국 이 점을 말해준다. 스트레스는 인간이 사는 한 영원히 존재하며, 그 자체가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훌륭한 계기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느냐다. 무한한 용량의 쿠션, 즉 하나님께 우리의 스트레스를 털어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화를 경험한다. 겉은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속은 강직한 ‘외유내강’의 삶. 마치 깨지지 않는 유리컵처럼, 혹은 양파의 단단한 속살처럼, 우리는 겉으로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속으로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집중하며 살아가야 한다.


노자도 말했다. “죽음의 본성은 꿋꿋하고, 생명의 본성은 부드럽다.” 시체는 단단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손은 부드럽다. 생명의 본질은 유연함과 부드러움이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밖에서 들이닥쳐도, 우리는 그 스트레스를 쿠션에 툭툭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다.


성경 시편 55편을 보면, 시인은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털어놓는다. 누군가는 ‘그게 뭐 대단한가?’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건 엄청난 용기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 괴로움, 두려움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새의 날개가 있다면 멀리 날아가고 싶다’는 희망까지 아뢴다. 그리고 마지막엔 짐을 여호와께 맡기면, 그분이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 주신다는 약속까지 받는다.


요한복음의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하늘에만 계셨던 분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과정을 겪으셨기에, 우리의 모든 고민과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스트레스를 느끼면서도, 그 뒤에 든든한 쿠션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는다. 스트레스는 이상한 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곁에 두신 ‘유익균’ 같은 존재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스트레스를 껴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때로는 든든한 동반자처럼. 스트레스 덕분에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또 한 발자국 성장한다. 그리고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마음의 쿠션에 스트레스를 툭툭 털어놓는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 평화와 기쁨이 스며든다. 스트레스여, 오늘도 반갑다!

sticker sticker


keyword
이전 14화빨간 줄을 푼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