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왕, 장자, 그리고 예수의 허무를 넘어서
많이들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왕 이야기가 있다. 황금의 손으로 유명한 그 미다스 왕, 나이 들어 인생의 스승을 찾겠다고 신하들을 풀어 천하에 악마를 잡아오라 명했다. 이유인즉, 인생을 곰곰이 들여다보니 원치 않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그 일들이 결정적으로 우리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래, 악마를 잡아다가 인생의 스승으로 삼으면 어떨까?” 미다스 왕의 기발한 발상이었다.
결국 악마가 포승줄에 묶여 왕 앞에 끌려왔다. 왕은 묻는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 영어로 하면 “WHAT IS THE BEST FOR A HUMAN BEING?” 악마는 피식 웃으며, “하루살이 인생에게 무슨 최선이 있겠습니까?”라며 대답을 회피한다. 왕이 집요하게 다그치자, 악마는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영생불사의 특권은 자신들에게만 남겨두고, 인간에게는 죽음을 선물했다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두 가지 처방을 내린다.
첫째, “THE BEST IS NOT TO BE BORN.” 즉,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 둘째, “THE SECOND BEST IS TO DIE AS SOON AS POSSIBLE.” 차선은 되도록 빨리 죽는 것이라는 대답이다.
이쯤 되면 왕도, 듣는 우리도 허탈하다. 인생이란 게 이렇게 허무한 걸까? 사실 허무라는 것은 삶의 긴 여정이 결국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고리를 뜻한다. 공허는 또 어떤가. 겉모습은 멀쩡한 달걀 같지만, 속은 텅 빈 무정란처럼 우리 안에 불변의 씨앗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뼈저리게 느낀다. 전도서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이 허무와 공허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자, 우리가 문명을 세워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허무와 공허를 피해보려 애쓴다. 첫째, 우리끼리만의 룰을 만들어 게임을 한다. 직장에서는 계장, 과장, 교수, 목사, 장관, 장군 등등,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나무도, 산도, 구름도 없는 듯 살아간다. 둘째, 문제를 만들어 풀고 또 만들고 풀다 보면,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온다. 그렇게 문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게임이 이어진다. 셋째, 종교라는 벽화를 허무와 공허 근처에 그려놓고, 그 아름다움에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허무와 공허를 덮어줄 뿐,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유머러스한 예를 들어보자. 한 여자가 보석상에서 다이아몬드를 고른다. “이게 진짜인가요?” 주인에게 묻자, 주인은 “확실한 방법이 있죠. 이걸 사서 시장에 나가 잃어버려보세요. 진짜라면 아무도 돌려주지 않을 것이고, 가짜라면 누군가 돌려줄 겁니다.” 논리적으로 완벽하지만, 실상은 이래도 저래도 낭패다. 진짜라서 못 찾으면 땅을 치고, 가짜라서 돌려받아도 비싼 돈을 생각하며 땅을 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해도 낭패에 봉착하곤 한다.
또 이런 일화도 있다. 더운 여름날, 머리가 하얀 노인이 버스를 탔다. 짐이 커서 운전사가 “짐 좀 치워주세요!”라고 했지만, 노인은 들은 척도 않고 흥얼흥얼 노래만 한다. 화가 난 운전사는 짐을 창 밖으로 던져버린다. 그래도 노인은 아무 말 없다. 운전사가 “이젠 어쩔 거요?” 묻자, 노인은 “그거 내꺼 아니요. THAT WAS NOT MINE.” 하고 다시 노래를 부른다. 이 단순한 태도, 내 것 아닌 것에 연연하지 않는 그 자유! 예수께서 이 자유와 기쁨을 가르쳐 주기 위해 오셨다는 해석도 있다. 집도, 짐도, 이름도, 소유도 “THIS IS NOT MINE”이라고 흔쾌히 내려놓을 때, 우리는 소유(having)를 넘어 존재(being)로 나아간다.
장자의 빈 배 이야기도 있다. 배가 부딪혔을 때, 그 배에 사람이 있으면 욕을 하지만, 아무도 없으면 화낼 일이 없다. 인생도 빈 배처럼 지나가라는 가르침이다. 예수께서도 빈 배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쾌히 자신의 운명을 살다 “IT IS FINISHED”라고 하며 사라지셨다. 그분은 우주의 근원이 되는 아버지와 하나 되어 공허를 불살랐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깨달음으로 허무를 넘어섰다.
미다스의 악마가 말한 대로, 예수는 이미 죽은 듯이 살아가셨고, 우리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남겼다. 한 알의 씨가 죽어야 열매를 맺듯, 살고자 아등바등하는 자는 죽지만, 흔쾌히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역설을 남기며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창조했다.
결국, 인생이란 강도를 만나 지갑을 열었을 때 낙엽 몇 잎만 남는 그런 자유와 희열, 그 빈손의 기쁨을 아는 것이다. 하루를 내 것 아닌 것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허무와 공허를 받아들이고, 그 너머로 나아가 생명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수와 장자가 우리에게 남긴 삶의 지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