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의 묘기
의사 선생님이 70번째 생일을 맞았다. 국내외로 유명한 외과의사라 파티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누군가 보니, 주인공인 의사 선생님이 구석에 앉아 훌쩍이고 있다. “아니, 선생님, 오늘 같은 날 왜 우세요?” 모두가 궁금해했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열다섯 살 때 서커스단이 마을에 왔었지. 그때 나는 곡예사가 되고 싶었어. 저렇게 자유롭게 춤추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는 삶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몰라. 그런데 나는 의사가 됐지.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들이 보기엔 성공했지만, 사실 나는 내 인생을 다 소진해버린 기분이야.” 그러면서 다시 훌쩍였다.
이쯤 되면, 인생이란 게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어릴 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는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수학을 전공한 친구는 “난 미술이 좋았는데, 먹고 살려고…” 경제학을 택한 친구는 “음악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라며 불안해한다. 도대체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이건 나무나 고양이는 절대 고민하지 않을 문제다.
한편, 옛날 어느 왕은 그림을 좋아해 전국의 화가들을 불러 그림을 그리게 했다. 수많은 그림 중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이 있었는데, 그 그림을 그린 노인 화가에게 왕이 물었다. “이 산 등허리를 넘어가면 뭐가 있소?” 화가는 “잠깐 갔다 와봐야 알겠습니다.” 하더니, 정말로 그림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도 화가는 안 나오고, 장난기 많은 왕이 “거기 있느냐?” 소리치자, 그림 속에서 “왕도 들어오시지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쯤 되면, 인생의 진짜 그림은 그 안에 들어가 살아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말 같다. 우리도 의사니, 판사니, 국회의원이니 하는 타이틀을 벗고, 그림 속으로 한 번쯤 뛰어들 필요가 있다.
믿음이란 것도 그렇다. 아브라함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훌쩍 떠나보는 것, 욥처럼 이유도 모른 채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진짜 모험이고 믿음이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가이드를 하던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20~30명을 데리고 절경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러분, 발을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모두가 긴장하는데, 가이드는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만약 떨어지게 되면, 떨어지면서 저쪽 풍경을 꼭 보세요. 정말 멋집니다!” 인생도 그렇다. 예상치 못한 낭떠러지에 떨어질 때가 있다. 그때도 풍경은 놓치지 말자.
나도 가끔은 내 자아가 녹아 없어졌으면 좋겠다. 세상에 증발해버리고, 승화해서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오는 기쁨을 엑스타시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볼 때, 그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남의 통장에 돈을 넣어주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이웃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 어떤 향기로 대하느냐, 그게 사랑의 본질이다.
결국, 우리 인생도 그림 한 폭에 들어가 살아보는 곡예사처럼, 때로는 낭떠러지에 떨어지면서도 풍경을 즐길 줄 아는 가이드처럼, 나를 녹여 이웃에게 향기를 풍기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내 안의 곡예사와 의사, 그리고 그림 속 화가를 모두 안고, 인생이라는 서커스 무대 위를 한바탕 웃으며 지나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