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들이마시다, 나를 바라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끝에 스치는 냄새가 있다. 자동차 매연, 가로수 잎, 어쩌다 한약 냄새까지. 이쯤 되면 내 코는 ‘오늘은 또 무슨 향연이 펼쳐질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세상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겨울에는 눈이 덮여 코가 쉬고, 봄이 오면 갑자기 코가 바빠진다. 꽃냄새 맡으려고 코를 벌름거리다 보면, 어느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게 된다. 이쯤 되면 코가 내 인생의 주인공 아닌가 싶다.
그런데 코만 그런 게 아니다. 혀도 있다. 집에 들어와 밥을 찾다가 고추장 한 점 혀끝에 닿는 순간, ‘아! 인생은 이런 맛이구나’ 싶어 얼굴에 땀이 흐른다. 귀는 또 어떤가. 뮤지컬에서 마음에 드는 대목이 나오면 숨을 참았다가 길게 내쉰다. 눈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 경치를 전부 눈에 집어넣고 싶은 충동에 깊은 숨을 쉰다. 이렇게 오관이란, 세상이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들창이다. 그런데 이 들창이 더러워지면 세상도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서 감각을 잘 씻어야 한다는 진리가 있다.
학자들 말로는 코가 1,700가지 냄새를 구별한다는데, 매일 그만큼의 냄새를 맡지 못하니 코가 둔해진다. 마치 에어컨 필터를 망치로 때린 것처럼 우리의 감각도 무뎌진다. 그래서 우리는 50촉짜리 불빛 아래서, 킨 건지 끈 건지 모르게 인생을 소모한다. 아기에게 말을 걸지 않고 안아주지 않으면 죽는다는 실험도 있다. 감각이 뇌의 연장이라, 모유 대신 감각의 먹이를 주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해석이다. 감각이란, 이토록 소중한 것임을 새삼 느낀다.
그렇다면 감각을 잠시 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몸을 푹 쉬게 하면 명상이 찾아온다. 명상은 누구나 하는 거다. 제일 싼 명상은 바로 꿈이다. 명상에 익숙해지면, 머릿속의 부정적인 찌꺼기를 정돈할 수 있다. 화장실에 수건이 예쁘게 개어 있는 것처럼, 우리 머릿속도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명상은 굳어지는 것을 지우는 일이다. 감각을 쉬게 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지혜의 샘물이 솟아난다. 그리고, 때로는 기차가 방으로 들어오고, 벽에서 꽃이 피고, 사다리가 하늘로 뻗치는 환상도 만난다. 이쯤 되면 내 감각은 ‘총천연색’이다.
명상의 깊은 곳에 이르면, 우주 전체에 깔린 은총을 체험한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하느님의 손길, 인자, 사랑이라 부른다. 명상을 하다 보면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고, 감각이 예민해지면 또 명상의 깊은 곳으로 간다. 이 순환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본질에 닿는다. 마치 바위가 창조주와 교류하는 방법을 인간은 감각과 명상을 통해 배우는 셈이다.
스승이 제자를 회초리로 때렸더니, 제자는 아프다고 소리쳤다. 스승이 절간 기둥을 때리며 “이건 왜 소리치지 않느냐?” 묻는다. 바위와 인간의 차이다. 바위는 소리치지 않지만, 인간은 감각과 명상으로 세상과 교류한다. 야곱이 돌을 베고 자다 사다리가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꾼 것도, 감각과 명상이 만나는 순간이다.
결국 최고의 명상은 학문을 감각하는 것이고, 최고의 감각은 세계를 매 순간 명상하는 것이다. 감각과 명상은 한 가지다. 우리는 50촉짜리 불빛만 붙들지 말고, 어둠과 밝음을 모두 체험해야 한다. 명상은 내가 하늘에 닿으려는 게 아니라, 하늘이 내게 다가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감각은 자연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이고, 명상은 하늘이 내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오늘도 코끝에 스치는 냄새에 미소 지으며, 내 오관과 명상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