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내 인생에 진짜 중요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손가락으로 꼽아보면,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리고 나를 매일 아침 깨우는 알람시계 정도? 그런데 그 알람시계는 왜 그렇게 신처럼 내 인생에 개입하는 걸까. 신이 있다면, 분명 알람시계와 한 패일 거다.
서울 한복판, 인파에 휩쓸려 걷다 보면, 인생이란 게 마치 ‘무한도전’ 방청객처럼 매번 새로운 얼굴로 바뀌는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가지만,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은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그나마도 가끔은 “이 인연, 환불 안 되나요?”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신은 언제 나타나는가? 내 경험상, 인생이 막장 드라마로 치닫는 바로 그 순간이다. 예를 들어, 마나님이 아이를 못 낳아 하녀를 들여보냈더니, 하녀가 아이를 낳고, 마나님은 질투 폭발! 결국 하녀와 아이는 사막 한가운데로 쫓겨난다. “이게 뭐야, 내 인생 왜 이래?” 싶은 그 순간, 신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 마치 “이제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직전에 등장하는 특급 게스트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하녀는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된다. 인생,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도망가서 양이나 치며 외롭게 살아간다. “이제 내 인생 끝났다” 싶을 때, 신이 또 슬쩍 다가온다. “야, 너 네 민족 해방 좀 시켜볼래?” 이쯤 되면 신은 인생의 ‘반전 전문가’다. 모세가 된 그 사람, 아마도 양치기 시절엔 상상도 못 했을 거다.
그리고 밤새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실의에 빠진 어부들. 그물이나 씻고 있는데 예수가 다가와 “배 좀 빌릴 수 있을까?” 묻는다. 고기가 가득했다면 빌릴 수 없었을 텐데, 빈 배라 가능했다. 예수의 말대로 그물을 던지자, 고기가 배 터지게 잡힌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제 대박났으니 예수와 동업해야겠다!”가 아니라, “나는 죄인이니 떠나달라”고 한다. 역시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쯤에서 깨닫는 교훈 두 가지.
첫째, 신은 우리가 명상에 빠져 있을 때보다는, 인생이 꼬이고, 실패하고, 절망할 때 슬쩍 나타난다. 마치 “네가 바닥을 쳤다고? 자, 이제 내 차례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둘째, 신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한 민족의 조상이 되거나, 해방자가 되거나,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된다. 실패와 절망이 ‘반전의 재료’가 되는 셈이다.
조금 더 좁혀서 보면, 예수는 실패한 인생의 빈 배를 빌리고,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말씀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상상도 못한 기적이 펼쳐진다.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만, 예수는 과거엔 관심도 없고, 오히려 미래만을 이야기한다. 신과의 인연은 우리가 죄를 자복하며 다가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신이 우리의 실패와 절망을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다가온다.
결국,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오늘도 혹시 인생이 꼬이고, 빈 배만 남았다면, “이봐, 신이 옆구리를 콕 찌를 차례인가?” 하고 웃으며 기다려보자. 어쩌면 내 인생의 드라마는 이제 막 2막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람시계가 울릴 때마다, 혹시 신의 신호는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