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아픔 사용설명서
봄에는 봄이 오고, 겨울에는 겨울이 온다. 어릴 때는 그저 계절 따라 옷장만 뒤적이면 됐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이게 다가 아니다. 겨울에도 ‘이러다 봄 오겠지’ 싶고, 봄에도 ‘이러다 또 추워지겠지’ 하는 마음이 든다. 인생도 계절처럼 돌고 돈다는 걸, 몇 번 넘어지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마음속엔 늘 만년설이 있다. 사계절 내내 녹지 않는 그 무언가, 바로 ‘고통’이다.
고통에도 종류가 있다. 첫째, 육체적 고통. 이건 뭐, 손톱만 빼고 다 아프다. 치통 한 번 겪어본 사람은 안다. 누가 “치통은 체통을 잊게 한다”고 했는데, 정말 치통이 오면 세상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오직 이빨만 생각난다. 신기하게도 뇌는 아픔을 모른다는데, 그래서 고대인들은 뇌수술할 때 마취를 안 했단다. 이쯤 되면 뇌는 ‘나는 아픔 따위 몰라!’ 하고 당당한 척하는 것 같다.
여성들의 산고도 빼놓을 수 없다. 인류의 절반이 태어날 때마다 겪는 고통이라니, 이건 정말 신의 기묘한 설계다. 아이 하나 태어나려면 반드시 그만큼의 아픔이 필요하다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준다.
둘째, 정신적 고통. 이건 더 무섭다. 내 몸이 아픈 것도 괴롭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그저 옆에서 바라만 봐야 할 때, 그 쓰라림은 말로 다 못한다. 욥이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다. 인간의 고통은 설명이 안 된다. 왜냐고? 이유가 없으니까.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마당의 자갈처럼, 시냇물의 소용돌이처럼, 인간의 혼속에 늘 파고드는 손님이다.
그런데 최고의 고통은 따로 있다. 바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 친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으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부부끼리도, 부모 자식 간에도, 심지어 반려견에게도 말 못할 아픔이 있다. 이건 마치 각자 마음속에 만년설 하나씩 품고 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인간은 겸허해진다. 내 아픔만큼 남도 아프다는 걸, 모두가 고통의 동지라는 걸 깨닫게 된다.
또 하나, 까닭도 의미도 없는 고통이 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하며 하늘을 원망해도, 답이 없다. 욥의 고통, 아브라함의 고통, 예수의 고통이 다 그렇다. 의미 없는 고통 앞에서 인간은 질식할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 우리는 이 고통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고통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이웃을 사랑하게 한다. 남의 아픔을 덜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바로 그 무력감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어머니가 자식 걱정을 평생 놓지 못하는 것도, 내 병은 못 고치면서 남의 병을 걱정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다.
마지막으로, 고통을 대하는 법. 욥이나 예수, 아브라함은 날벼락 같은 고통을 ‘하늘 벼락’으로 받아들였다. 하늘이 모를 리 없는 아픔, 하늘이 허락한 아픔이라 믿고, 그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예수님은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 하셨지만, 결국 “내가 이 길을 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고통을 없애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기꺼이 동반자로 받아들이거나, 선택은 우리 몫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만년설 하나씩 품고 산다. 그 만년설이 녹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그 고통이 내 영혼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러니 오늘도 내 속의 만년설과 함께, 한 번 웃어보자. “고통아, 네가 있어서 내가 인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