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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송인 Jun 19. 2024

기억을 붙잡는 마법, 메모의 힘

당신의 정체성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밀

연암 박지원도 못 말리는 메모광이었다. 그의 <열하일기>를 보면 중국에 다녀오며 일어난 일들이 빠짐없이 실려 있다. 말 타고 지나가며 본, 건물 기둥에 쓰인 글귀까지 메모한 결과다. - 출처


여행지에서 느낀 감동을 나중에도 느끼고 싶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람도 찍고 풍경도 찍고 먹은 음식도 찍고 여러 대상을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남깁니다. 하지만 나중에 더 생생하게 당시의 경험을 되살리는 것은 사진도 아니고 동영상도 아닌 글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대상을 보는 내 안에서 어떤 경험이 발생했는지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기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글은 그 내적 경험을 비교적 생생하게 담을 수 있는 수단입니다.


올해 어머니 칠순을 기념하여 지난 주에 온가족이 후쿠오카를 다녀왔습니다. 나흘 일정 중 하루는 온천이 유명하다는 벳부의 한 료칸에 머무르기도 했고요.  


박지원처럼 건물 기둥에 쓰인 글귀까지 메모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3박 4일의 일정 동안 틈틈이 보고 듣고 내외적으로 경험한 것을 노트 어플에 간략히 메모로 남겼습니다. 아내와 함께 어린 두 아이와 어머니를 챙겨야 했기 때문에 주로 이동하는 버스나 기차 안, 자기 직전,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 메모를 했던 시간입니다. 하루만 지나도 기억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고 하니 가능하면 그 날의 경험은 그 날 메모하고자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21살에도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전망대까지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수첩에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수첩을 펼쳐 보면 당시의 기억이 꽤 생생하게 복원됩니다. 가령 마음에 두고 있던 동갑내기 이성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슬프고 괴로운 마음 같은 것도 잘 기록돼 있습니다(하하).


“기억을 믿지 말고 손을 믿어 부지런히 메모하라. 메모는 생각의 실마리, 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으로 기록하라.” - 출처


다산 정약용이 한 말입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얼기설기 뒤엉킨 무수한 기억의 집합과도 같습니다. 이에 메모하고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어떤 경험을 내 정체성에 포함시킬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21살의 저는 이성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정체성에 포함시켰고 불혹을 넘긴 지금의 저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무탈하게 뜻깊은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정체성에 포함시켰습니다.


어떤 기록을 인생 스냅샷에 남기고 있나요. 어떤 기록을 남겨야 내 정체성이 조금은 더 복합적이고 탄력적이 될까요.


부정적인 경험이든 긍정적인 경험이든, 기록 그 자체가 내 정체성의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행위 아닌가도 싶습니다. 오늘부터라도 스마트폰에 탑재된 기본 노트앱을 열어 소소한 경험들을 기록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메모와 기록은 빛바랜 사진처럼 잊혀질 뻔한 여행의 감동을 되살려주듯 나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이야기를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 글은 MarkedBrunch를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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