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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송인 Nov 29. 2020

THE TYRANNY OF THE SHOULD 1

Neurosis and Human Growth(pp. 64-72)

2장에서 신경증이 외부 현실과 관계 맺는 측면을 살펴보았다면 3장에서는 당위적 사고와 관련한 내적 현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벡이 쓴 우울증의 인지치료 초반부 챕터에 자신이 영향받은 심리치료적 전통에 관해 언급할 때 카렌 호나이가 언급됩니다. 벡은 아시다시피 정신분석적인 전통에서 트레이닝 받았고 그래서 이런 연관성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호나이 책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당위적 사고를 다루는 챕터가 있다니 반갑네요.

~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사고는 특히 내외적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삶에 적용될 때 문제가 된다고 보는 듯합니다. 전 마음 한구석에 유학을 꿈꾸지만 합격 자체도 실현가능성이 낮은 데다가 1%의 가능성을 뚫고 합격한다 한들 가족을 데리고 유학길에 오르는 것은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없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혹은 가족 생활비까지 대학에서 지원해 주지 않는다면요. 그런데도 난 꼭 유학길에 가족 데리고 올라야겠다며 다른 모든 가능성을 접어두고 유학 준비에만 올인한다면 그것은 병리적이라 할 수 있겠죠. 이 챕터의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당위의 폭정이겠고요.

tyranny하니 제 24개월 안 된 아들이 즐겨보는 뽀로로의 티라노사우르스 에피소드가 자동 연상되네요. 사진 한 장 첨부해 봅니다.. ㅎ  


아무튼.. 머리로는 실현가능성의 측면에서 제약이 많다는 것을 안다 하더라도 실제 행동은 가용한 시간과 에너지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고 봅니다. 저도 시간의 유한함을 간과한 채 스터디를 벌이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뜨끔했습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이성은 감정적 선택/결정을 뒷받침할 때가 많고, 호나이도 높은 지능이 현실적 제약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돕기보다 오히려 편향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추론 능력을 발휘하게 될 때가 많다고 봅니다.  

당위적 사고는 외적/물리적 현실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내적/심리적 현실도 무시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 감정은 분노인데 당위적 사고는 웃으라고 말한다는 것이죠. 스스로의 행동은 잘 못 살펴도 타인의 행동(특히 모순된 행동)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을 거스르며 당위적 사고를 따르는 행동은 타인에게 기만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당위적 사고에 의해 진솔한 내적 경험이 희생되는 삶은 이미 지옥이겠죠.

당위적 사고를 지닌 사람은 과거로까지 당위적 사고를 소급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양육방식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할 때 전적으로 부모 탓을 한다든가 정반대로 자신이 뭔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며 전적으로 자기 탓을 하는 것이죠. 카렌 호나이는 전적으로 누구 탓이라기보다 책임이 각자에게 조금씩 있다는 식의 회색지대를 가질 수 있다면 치료적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합니다.

또 다른 예로, 과거에 스스로가 한 행동을 현재의 당위적 기준에 근거하여 완전히 무익한 것이었다고 평가절하해 버릴 때 호나이는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수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애도 과정이라 봅니다. 애도라는 표현을 직접 쓰진 않았지만 정확히 그런 과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신경증적 환자는 더 잘했어야 했는데 충분하지 않았다는 믿음을 유지하기 쉽습니다.

2장에서와 마찬가지로 3장에서도 환자가 당위적 사고를 인식한다 한들 이것을 포기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하며, 당위적 사고를 포기하지 못 하는 자신에 대해 치료자가 부정적인 감정을 품을 것이라는 식으로 자기비판적 측면을 치료자에게 투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real moral standards or ideals과 당위적 사고의 질적 차이에 대해 논한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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