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is and Human Growth(pp. 86-102)
많은 설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감정이나 욕구를 도외시한 채 신경증적인 자부심을 유지하기 노력하다 보니 합리화나 주지화 투사 같은 방어를 쓰게 되고 역설적이게도 점점 정반대편의 자기경멸에 빠지기 쉬운 취약성이 공고해진다는 부분이 와닿네요. 특히 자신의 욕구를 건강하게 표현하지 못 하고 그것을 억누른 채 이상화된 자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왜곡하여 내놓는 것, 예를 들어 강한 의존성을 타인에 대한 사랑(love)으로 변모시키는 그런 예시가 눈에 띄는데, 타인의 욕구나 감정에 초점 맞추는 사랑이라기보다 자기 고양을 위한, 즉 자기 자신의 숭고한 사랑을 부각시키는 자기중심적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니 이내 쓸쓸해지고 공허해지는 마음이 있었고요. 호나이도 말하듯이 다른 사람에게 위선적으로 보이기 쉽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심리평가에서나 치료에서나 왜 이렇게 참 자기를 부인하는 왜곡된 방식으로 자기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가 라는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역전이로 인해서 경계가 흐려질 가능성이 줄어들 테고 내담자나 환자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고요. 이게 되려면 역시나 내담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내면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공유된 이해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게 숭고한 사랑이든 무소불위의 권력이든 무엇이든 간에 신경증적 자부심이 insult 당하게 되면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할 수 있는데 어떤 내적 과정을 통해서 굴욕이나 수치를 경험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호나이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결과가 같더라도 그 기제(유지요인?)은 저마다 다를 텐데, 어떻게 다른지가 그 사람의 성격(호나이가 structure라고 표현하는)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일 수 있겠다 여겼습니다.
이번 챕터 읽으면서 치료 경험이 적다 보니 아무래도 저 또한 제 내면의 경험을 더 많이 떠올리며 읽었고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특히 98쪽부터의 내용이 그렇네요.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하는 것이 신경증적 자부심에 부합하지 않으니 이런 감정을 부인하고 분노나(외재화) 죄책감(내재화)로 변형이 일어나기 쉽다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아시는 분도 있고 모르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두 아이의 아빠인데 양육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네요. 아이들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욱하는 마음이 자주 올라오고 또 실제로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내기도 하는데, 이럴 때의 경험을 사후적으로 들여다보면 수치심이 분노보다 앞서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심리학 전공자인 것도 모자라서 명색이 심리치료/상담을 한다는 사람인데;;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아빠들보다 못 하다고 여겨지니 제가 지닌 이상화된 아빠상에 배치되면서 수치심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 수치심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으려면 제가 양육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임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게 안 되니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내게 되는 것 같아요. 집밖에서나 안에서나 모두 잘하는 이상화된 아빠상을 포기하기 싫은 거죠. 아무래도 오은영 박사님께 치료를 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 읽으면서 더 뼈를 맞았던 것은 죄책감을 경험하되 그것이 아이에 대한 진솔한 감정이라기보다, 즉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그런 감정이라기보다 내 스스로의 이상화된 이미지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데 따른 자기중심적인 죄책감이라고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이 그 부분을 콕 짚으니 너무 낯부끄럽고 아프고 그랬습니다.
이렇듯 신경증적 자부심과 그것이 상처 받았다고 느낄 때 외부로 표출되는 분노의 연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든 내담자 마음이든 얽히고 설킨 마음의 타래를 너무 위협적이지 않게 천천히 풀어나가는 작업이 있어야겠다고 느꼈어요. 심지어 치료에 왔다는 것 자체가 내담자의 신경증적 자부심에 스크래치를 낼 수 있는 상황인지라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불쾌함을 드러낼 때 이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만큼 raw-skin/thin-skin으로 살아오려니 얼마나 아팠을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와닿습니다.
끝으로 신경증적 자부심의 상처가 분노뿐만 아니라 두려움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 부분과 예시가 흥미롭고 임상적으로도 유용해 보여요. 분노의 강도는 사실 두려움의 강도와도 다를 게 없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되고요. 뒷장에서 자부심의 상처가 나타나는 또 다른 양상인 자기혐오/자기경멸을 어떻게 풀어낼지도 기대가 됩니다. 이런 감정적 반응조차 없을 때 정신병, 우울증, 알코올 남용, 정신신체적 장애가 발생하기 쉽다는 부분도 눈에 들어와요. 정말 재미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