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는 몰리 말론 동상 앞. 몸살 기운에 등이 무거울 지경인데 비바람 치는 거리로 걸어 들어갔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바득바득 버스에 오르며 '시발 도대체 몰리 말론이 누군데ㅠㅠ'라고 생각했다.
몰리 말론은 더블린에서 낮엔 조개와 홍합을 팔고 밤엔 매춘을 하던 여자다. 젊은 나이에 열병으로 사망했다는 게 공식 설정이다. 실존 인물도 아니다. 오래된 출판물이나 노래에서 기원한 실감 나는 가상 캐릭터다.
더블린의 기념품 가게에서도 수레를 끄는 모습의 몰리 말론 상품을 볼 수 있다. 더블린은 왜 가난한 성노동자이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여성을 대표 캐릭터로 내세울까?
난 더블린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스스로의 얼굴을 평범한 노동자이자 이 도시에서 살아낸 약자로 선택했다는 것이. 전염병과 빈민가, 식민정책과 억압, 이주 등 시대의 상처와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이야기가. 살아남아야 했던 모든 이들의 이름인 몰리 말론이.
몰리 말론에 대해 찾다 보면 마지막에 덧붙여지는 정보가 있다. 가슴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다. 실제로 몰리 말론 동상을 보면 가슴만 칠이 닳아 황금색으로 번들거린다.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여전히 몰리 말론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월스트리트 황소의 성기를 만지면 부자가 된다든지, 돌에 거꾸로 입 맞추면 말주변이 좋아진다든지 하는 이야기야 얼마든지 있다. 인간이 한때의 염원으로 매개체를 만들어 특정 행동을 하는 것이 하루이틀인가? 아무튼 다른 건 안 봐서 모르겠지만 몰리 말론의 가슴은 그만 만졌으면 한다.
상처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 더블린의 존엄, 낮에는 해산물을 밤엔 자신을 팔았던 여자. 오래전 죽은 그 여자를 기껏 다시 도시 한가운데 밤낮으로 세워놓을 거라면, 몰리가 무엇을 팔아 생존했는지 안다면, 하물며 더는 돈을 지불할 수도 없기에, 몰리의 가슴은 그만 만졌으면 한다.
무슨 몰리 말론 가슴을 만진다고 행운이 오겠는가. 실없는 소리란 걸 누구나 알 거다. 재미없는 농담에는 웃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