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이동 신청한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나를 포함해 여러 명의 인력 재배치를 논의 중이고, 때가 되면 알려주겠다는 말씀을 들었다.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상황이 궁금해도, 사내 인간관계가 협소하고 그나마 권력의 핵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대부분인 나로서는 어디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조금이라도 면식 있는 분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여쭤도 보고 부탁도 드리고 해볼까 했지만, 관뒀다. 안 하던 일은 하지 않는 게 낫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 떠들고 다니든, 신경 쓰지 않고 내 일만 하며 지내기로 했다. 입사 이후 지금까지, 회사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였다. 조용히 내 할 일만 하고 싶다는 것. 되도록 사내 정치나 이슈에 말려들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면서 지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지 못했던 건, 현실에 끝까지 순응하면서 살기에는 의지가 부족하고 맞서 싸우면서 살기에는 용기가 모자란, 그런 어중간한 태도로 살아왔던 때문일까.
조용히 살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몇 번인가 사내 이슈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대체로 혼자는 아니었고, 최중심에서도 약간 빗겨서 있었지만, 그러나 손을 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과 앞줄에 서는 그런 위치였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상황상 당사자로서 나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항상 홀로 당사자였던 것은 아니기에, 모든 결정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 선택에 지금도 후회는 없지만, 결과에 안타까움은 있다.
그렇게 몇 번의 사건을 수년간 겪으면서, 친했던 동료와 멀어지기도 하고, 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인생의 교훈을 배우기도 했다. 반대로 예상치 못한 도움과 지지를 건네준 고마운 사람들도 만났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준 동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이곳에도 무리가 있다. 입사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대충 어떤 무리에 속하게 될지, 어떤 무리와 거리를 두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처음부터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에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다만 내게 허락된 그 무리와 내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들이 바뀔 수는 없으니, 내가 떠날 수밖에.
그래도 괜찮았다. 회사는 일을 하러 오는 곳이고, 내가 내 몫의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이상 문제될 건 없었으니까. 무리의 보호를 받지 않아도, 나의 업무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무리에 속해 있지 않아서 편한 것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회사에서 그 누구와도 말을 편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무리에 속한 사람끼리는 서로를 형, 동생, 언니 등으로 편하게 부르며 지내기도 한다(어째서인지 오빠나 누나라는 호칭은 드물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불리지도, 누구를 그렇게 부르지도 않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벽을 치고 살았던 건 아니다. 다만 형님이라 부르라고 하면서 밥 한 번 안 사준 사람, 친하게 지내자고 해 놓고서는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 그러면서 내가 필요할 때는 거리를 두는 사람, 나를 앞줄에 세우고 본인은 뒤에 숨기만 했던 사람, 그래놓고 자신은 불만을 내세운 적이 없는 순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챙기는 자들과는 선을 그었다. 반대로 나의 미숙함으로 멀어지게 된 이후 다시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도 있다.
정리할 사람 정리하고, 떠나는 사람 보내고 나니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만 곁에 남았다. 회사에서 형 동생 언니 찾지 않는 소수자들만 남았으니, 서로 결이 비슷한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다. 사적인 친분보다는 동료로서의 교류를 우선하는 사이다. 서로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하소연도 하고 위로도 나눌 수 있지만, 내 문제에 타인을 끌어들이진 않는다. 스스로 홀로 되기를 선택한 나와 같은 자들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혼자로 지내고 있다. 딱히 외롭거나 슬프지는 않다. 어차피 무리 지어 다니는 그들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 자기 살 길이 안 보이면 언제든 갈라 서고, 반대로 필요할 때는 원수 같던 사이와도 웃으며 손을 잡는다.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그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아직 나는 그렇게 능숙하게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나대로, 혼자로 살기로 했다.
부서를 이동하게 되면, 외톨이인 나를 그나마 지켜주고 있던 나의 업무와도 결별이다. 나는 온전히 혼자인 상태로 다른 부서, 다른 업무를 마주하게 된다.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리셋버튼을 누르기로 결정한 건 나다. 부서를 옮기면 스트레스 안 받고 편안하게 회사생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남아서 지금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이미 나에겐 한계였다. 이대로는 정말로 숨막혀 죽을 것 같아서 선택한 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괜찮다. 입사 이후 줄곧 바라던 대로, 내 일에만 신경 쓰면서 조용히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혼자로 지내게 된 이상 더는 누군가에게 잘 보일 이유도, 밉보일 이유도 없다. 평가나 승진에도 크게 미련은 없다. 업무에 대한 성실함 만으로 경쟁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는 힘들지만, 그렇게 나쁜 평가를 받기도 어렵다는 것을 여러 해에 걸쳐 깨달았으니까. 경쟁은 포기했지만 성실함까지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그것마저 내려놓으면, 나를 지켜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속해 있는 무리도 없고, 뒷배가 되어줄 선배도 없고, 내 상사까지 온전한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외톨이가 되어서도 내가 스스로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업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맡은 업무에 있어서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 정도로 해왔다. 늘 완벽했던 건 아니지만, 누구도 업무로는 나를 공격하기 힘들 만큼은 해냈다. 그게 내가 회사에서 혼자로 살아온 방법이었다.
끝.
※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글이지만, 상황과 인물에 대한 각색이 있습니다. 저의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 데 집중한 글입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