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사진은 정확히 이 글의 배경이 되는 날 아침이다.
눈이 오던 아침, 수원으로 향하는 제이슨의 차를 엘라의 요가원 앞에서 타기 직전이다.
"이런 날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할 수가 있나...?"
즉석에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도가 터서 마구 던지는 우리는, 연말 약속을 잡았다.
아니 뭐, 연말이라고 송년회 약속을 잡은 건 아니고, 그냥 놀자는 약속이었다.
원래 계획으로 가려고 한 곳은 스타필드 하남에 입점해 있는 스몹(스포츠몬스터였는데 이름이 바뀌었더라)이었다. 언제 잡혔는지도 모르게 잡아둔 약속을, 모두 다 약속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눈치게임을 보고 있었다. 뭐, 사실 귀찮아서 그렇지, 좋은 사람들과 노는 걸 누가 싫어하나.
그러다 보니 연말 특수로 스몹의 예약은 동이 나 버렸고, 우리는 이를 대체할 곳을 찾거나, 파투 내는 수밖에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이때를 놓치지 않고 MJ의 한마디. "수원에 비슷한 곳 있는데, 거기 가요!"
회사나 회사 사람들이나 거주하는 곳이 거의 서울 인근이다보니 평소에 어울리기엔 너무 멀어 아쉬워하던 MJ의 기쁜 한 마디였다.
그래, 수원으로 가요.
20대 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수원역 인근 골목에서 치킨을 뜯던 기억이 있을 뿐, 제대로 수원 화성이나, 요즘 유명한 행궁동 인근도 가본 적이 없다.
여동생이 수원에 맛집과 놀 곳이 많다며 그렇게 얘기할 때도 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는데. 이 즉흥적인 모임은 기어코 12월 말에 약속을 잡아버렸다. 눈이 쏟아지는 아침을 맞이할 줄도 모른 채...
제이슨, 엘라, 이안과 나는 황금과 같은 연말 토요일 아침 약속을 위해, 금요일 일찍 잠에 들었다.
잠에 들기 전, 매일 요가를 가기 싫어하는 엘라는 그 특유의 즉흥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며, 아침 요가를 꼭 다녀가겠다는 다짐을 우리에게 알렸다. 덕분에 우리의 약속장소는 송파역 인근 엘라의 요가원 앞이 되었고, 약속 장소에 가까이 살고 있는 MJ를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접선하게 되었다.
(아, 아쉽게 제제는 해외여행 일정으로 이 날 함께하지 못했는데, 아마 우리보다 더 행복하고 덜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집을 나서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 눈은 사그라들 생각을 안 했다.
뭐 차들이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라면 우리도 수원 정도까지는 갈 수 있지 않겠나 하며, 모여 엘라의 "네가 사라" 시전에 당한 이안과 나는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샀다.
제이슨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위험한 순간을 두 번 정도 지났다. 옆 차선에서 튄 눈 뭉치가 앞 창문을 두 번이나 가렸다. 오 주여.
직선 도로여서 망정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진짜 진짜 위험했을지 모르겠다는 상상을 한다. 그래도 N이라고, 상상력이 꽤나 풍부하게 내 걱정을 시각화 시켜주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 없는 소리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바운스 파크 건물에 도착해 먼저 도착한 MJ를 만날 수 있었다.
도착하니, 공간이 꽤 컸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초대형 놀이터 같다랄까? 스타필드의 스몹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았다. 옆에는 나와 이안이 좋아하는 클라이밍 장도 붙어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작년이니까, 갔던 5명의 나이는 대략 평균으로 30 즈음이다. 바운스 파크에는 휴일을 맞아 놀러온 가족들과 친구들 단위로 놀러 온 13세 이하의 친구들이 많아 보였는데, 삼촌 이모가 껴도 되는지 자꾸 물어보고 싶었다.
얘들아... 삼촌, 이모들도 껴줄래? ^.^...
눈치 없게도 우리는 신나게 놀았다. 아니, 준비되어 있는 거의 모든 기구를 다 탔다. 특히나 즐겁게 타고 지친 것은 온갖 종류의 방방(또는 트램펄린, 또는 봉봉, 또는... 또 뭐가 있나?)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서로에게 공을 던지며, 방방에 몸을 던지며 뛰어놀았다. 놀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느끼게 된 건 빠르게 지치게 된 우리를 보면서다.
저녁 먹을 힘, 집에 돌아갈 힘 정도를 간신히 남겨둔 우리는 바운스 파크를 떠나 그 유명하다는 수원 '남문 통닭'으로 향했다.
눈은 다행히 그새 그쳐있었다.
지친 우리에겐 '좋은 단백질원'이 절실했다.
치킨이야 늘 그렇듯 맛있었다.
클라이밍 후 치킨이나, 바운스 파크 후 치킨이나, 신나게 힘을 빼놓은 뒤라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었다.
우리 중 단 한 사람, 제이슨 만이 제대로 치킨을 못 먹었는데, 이는 제이슨이 자동차의 바퀴를 펑크 내는 사건이 치킨집 도착 5초 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비스 센터와의 연락으로 비교적 단시간에 문제는 해결되었다.
식은 치킨과, 눈보라를 헤친 운전, 늦은 시간에 집까지 돌아가야 하는 제이슨이 가장 고생하는 연말 이벤트였다. 그럼에도 그는 늘 그렇듯 군말 없이 모두를 바래다줬다.
어쩌면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한 단 게 더 가까워지고, 다시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는 사건을 하나 얻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미 6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날을 '여러 고비를 넘긴 연말 이벤트'로 추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