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케터호야 Sep 17. 2024

우리 브랜딩도 해야겠어요

B2B 회사에서 브랜딩의 쓸모 찾기

브랜딩 OKR을 설정합시다


2022년 7월 6일, 첫 브랜딩 회의가 열렸다. 대학교를 빼고는 브랜드를 다뤄본 적이 없는데, 나에게 떨어진 첫 업무가 브랜딩이었다. 한 달 먼저 들어온 고야가 혼자 고민하며 브랜딩 로드맵을 스프레드 시트에 그려두었는데, 꽤 정교하고 업무가 분명하게 그려졌다. 달리 디자인lead가 아니구나 싶었다.


브랜딩 팀은 디자이너인 나와 고야, 마케터인 MK, 호야까지 총 네명이었다. 마케터는 브랜드 전략을 설계하고, 설계한 전략을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 디자인을 만들어야 했다.


회사는 OKR을 기반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어, 브랜딩팀도 OKR을 설정해야했다. 하지만 호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OKR을 세우다보니 목표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정해야했는데, 잘 떠오르지 않았다.


두 세번 OKR을 수정한 후에야 외부 캠페인 가이드라인 3건 제작, 내부 캠페인 1회 진행이라는 Todo형 KR을 설정해 제출했다.

매번 정해진 일을 달성 했는지만 생각했는데, 직접 목표를 세우라니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C레벨이 생각하는 우리회사의 브랜드 'MVV'를 알려주세요


MVV, 회사의 핵심 가치라고 불리는 Mission, Vision, Value를 정리해야 브랜드 코어를 정리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어느 정도로 회사의 방향성에 align 되어 있는지 파악하고 싶었다. 그래서 8명의 C레벨 각자의 생각을 물어보는 것으로 첫 브랜딩 활동을 정했다.

오전에 메시지를 보내고 당일 안에 답을 보내 달라고 했다. 한 분기 안에 브랜딩을 마무리지어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도 대표를 제외한 모든 C레벨이 정성껏 답변을 보내줬다. 하지만 대표의 답변은 끝까지 받지 못해, 따로 다음날 미팅을 요청했다.


대표를 직접 대면할 생각에 살짝 떨렸다.



*MVV란?

Mission, Vision, Value를 의미한다. Vision은 브랜드의 이상향을 뜻하며 기업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Value는 브랜드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말한다. 또한, 기업이 Vision을 실현하기 위해 가지는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Mission은 Value를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느냐를 의미한다. 출처마다 의미나 정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브랜드의 지향점과 정체성을 명확히 정리해 놓는다는 점에서 브랜딩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번의 큰 좌절


대표인 구찌를 만나 우리 회사에 왜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명확한 방향성을 설명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의 대답은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특히 그는 애플의 초기 브랜드 마케터 가이 가와사키의 영상을 공유해주었는데, 이는 우리에게 Mission statement 만드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로 다가왔다.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 우리에게 명확한 해결책을 줄 거라고 생각한 기대는 산산히 무너졌다. 사실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Mission이나 Vision이나 Value, Mantra는 브랜딩을 하기 위한 방법론에서 나온 용어이지, 사실 방향성이 구성원 안에서 공유되어 있다면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출발부터 만난 예상치 못한 반응에 사기가 꺾인 건 어쩔 수 없는 도리였다.


완전히 새로운 로고를 만드는 것은 현재상황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 기존 로고를 다듬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3개월 안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을 산출하고, 그에 맞춰 전체 일정을 계획해보았다. 모두 처음의 넘치는 에너지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3개월 안에 결과물을 보여주어야 했다.


OKR의 'Key Result' 또 한 번 변경했다. 브랜딩 기준을 정립하여 일관성과 차별성 구축으로 목표를 변경하고 제작하는 가이드라인도 디자인과 이벤트 중심으로 조금 더 실무 중심적으로 바꿨다. 내부 캠페인도 웰컴키트와 문서템플릿 제작처럼 명확한 결과물 중심으로 수정했다.


앞으로의 브랜딩 작업에 대해 기대보다는 한가득 걱정이 생겨났다.



공부도 잘하면서 놀기도 잘하는 범생이


기존의 로고와 브랜딩을 최대한 유지하기로 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 각기 다르게 쓰이고 있던 슬로건과 MVV는 브랜드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정돈해 문서화하기로 했다. 방향성에는 모두가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회사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어 문서화해 정리해 두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우리 회사의 제품은 의사만 주문이 할 수 있는 서비스로, 고객도 의사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세일즈팀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를 통해 고객과의 접점에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앞으로 필요할 메시지에 대해 좀 더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우리 회사의 장점을 성장, 편리함, 소통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 서비스 이용 고객은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의 의사가 아닌,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에 적극적이고 계속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시도하는 열정적인 의사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왠지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면서 놀기도 잘하는 범생이가 떠올랐다.



'Your one answer'


회사의 미션, 비전, 밸류를 문서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슬로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기존에는 웨비나를 진행하기 위해 만든 '3 billion bases to one answer'라는 다소 긴 문장을 슬로건 아닌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이 문장을 조금 다듬고 슬로건으로서 명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좀처럼 하나의 안으로 좁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토종 한국인이었던 브랜딩 OKR팀은 영어가 주는 약간의 뉘앙스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회사 내에 있는 영어권 생활을 오래한 직원, 미국 대학을 나온 직원, 외국인 직원의 도움을 받았는데, 오히려 그 피드백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의견이 달랐다.


Your one answer.

희귀질환 진단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되겠다는 다소 도발적인 슬로건은 수많은 아이디어와 피드백, 수정을 통해 탄생했다. 다소 보수적인 바이오 업계에서는 흔하지 않은 시도였는데, 다른 회사에 비해 젊은 이미지를 추구하고자 한 의지를 보여주는 선언이었다. 브랜드와 미션, 비전, 밸류도 차근차근 정리했다.


브랜딩의 코어라고 할 수 있는 미션, 비전, 밸류가 정해지자 브랜드 디자인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브랜드 디자이너 고야는 기존 로고를 빠르게 정돈하고 컬러와 폰트, 디자인 에셋 사용 등을 정리해 하나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가이드라인이 나오자 구성원들이 더 브랜드를 가까이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내 문서와 PPT 템플릿을 만들어 배포했다.                     



웰컴 키트를 리뉴얼 하다



입사하는 날, 책상 위에는 두권의 책과 박스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책은 회사 시스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OKR'과 겸손함과 심리적 안전감을 강조하는 책, '리더의 질문법'이었다. 함께 있는 박스에는 칫솔과 휴대용 소독기, 텀블러, 노트와 펜이 들어있었다. 각각에는 회사 로고가 박혀 있었다. 이른바 웰컴 키트였다.


브랜딩 OKR을 거의 마쳐갈 즈음, 마침 운영팀에서 기존 웰컴키트도 거의 소진이 다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새로운 브랜딩에 맞춰 웰컴키트도 리뉴얼할 좋은 기회였다. 이번 웰컴 키트의 주요 이슈는 실용성이었다. 기존 웰컴 키트 중 사용이 저조한 텀블러와 휴대용 소독기보다는 더 실용적인 아이템을 선정하고 싶었다.


슬리퍼, 우산, 테이블키트 등 여러 후보가 리스트업 되었는데, 한정된 예산에 맞춰 물품을 구매하고 디자인까지 입히기가 쉽지가 않았다. 기존에는 전문 제작 업체에 맡겼지만, 원하는 아이템을 저렴하게 제작하려니, 하나하나의 상품을 따로 주문하는 것이 가장 나았다.


슬리퍼와 지비츠, 노트와 펜을 새로 제작하고 키트 외에 따로 지급되던 후드집업과 필독 도서까지 다 한 번에 담기 위한 리유저블 가방을 제작했다. 기존 직원들에게서 하나같이 웰컴키트를 다시 받고 싶다는 원성이 터져나왔다. 제품을 선택하고 업체를 선정하고, 감리를 보는 등 과정은 힘들었지만, 직원들 모두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