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남편의 말에 마음이 다칠 때면 입을 다문다.
"알았어."
수긍 아닌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대답을 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고 나 홀로 대화한다.
나의 마음 안에서.
남편에게 쏟아내고 싶은 말들을 나의 마음에게 쏟아낸다.
'왜 늘 똑같을까.'
'먼저 해 줄순 없나? 나도 그런 얘기하기 싫다고!'
그렇게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남편도 마음과 대화를 하나보다.
그리고 손을 내미는 건 언제나 남편 쪽이다.
이번에도 장본 짐을 들어주는 것으로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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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보통 평판이 그랬다.)
어른 시절의 나는 역시 조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때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20대 중반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지금처럼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만 안 내뱉었을 뿐이지, 표정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이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직장에서 대표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답은 "네."라고 했지만 불편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었나 보다.
"김 과장은 표정에 다 드러나네?"
대표의 의도가 뭔지 아는데도 표정을 들어낸 것에 미안함은 없었다.
나의 대답은 이거였다.
"그런가요?"
글을 쓰다 보니,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나는 마음이 상했음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불편한 건 참지 못하나 보다.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렵지 않아 한다.
해야 한다면 빨리 하고 빨리 털자는 주의다.
이런 모습이 좋게 본다면 시원하다, 결단력 있다 등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좋지 않게 본다면 무례하고, 성급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곧 40살이 되는 나는 하루하루 자아성찰 하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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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상했을 때,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잠시 멍을 때리거나 책을 읽는 순간
그 순간이 나에게 힐링이 된다.
그리고 내뱉는다.
"뭐, 그럴 수 있지!"
"세상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그 사람과 내 마음이 다를 수 있어!"
참 단순하다.
그런 내가 가끔 좋다.
내가 잡초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광합성이 필요한 들판의 잡초 같은 사람이었다.
따뜻한 햇살로 광합성하고 만들어진 양분으로 마음을 채운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온기로 양분을 얻는다.
몸이 차가운 사람답게 따뜻함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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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말에 마음이 상해서
온몸으로 '나 기분 안 좋아!'를 내뿜다가
은근슬쩍 장바구니를 들어주고, 은근슬쩍 프라이팬 고기를 볶아주는
남편의 온기에 마음이 적당히 생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