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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Oct 13. 2020

번역가에게 영어 실력만큼 중요한 이것!

<번역이 궁금해> 세 번째 이야기

영어 좀 하면 

누구나 다 번역가가 될 수 있을까?


제가 전문 번역가로서 일을 하며 종종 속상한 마음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번역이라는 일 자체를 영어만 좀 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치부할 때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이죠. "번역이나 해볼까?," "안 되면 번역이라도 하지 뭐." 단순히 번역가라는 직업을 무시했다는 생각보다는 사실 번역은 그 어떤 곳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역량이 요구되는 분야거든요. 그런데 마치 할 게 없으면, 하다 하다 안 되면 번역이나 하겠다 식의 말과 태도를 접할 때면 솔직히 좀 황당한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외국어를 능숙하게 말하고 표현하는 것과 그것을 다른 언어로 옮겨 번역을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은 누구나 한국어를 읽고 쓸 줄 압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죠.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어를 오랜 시간 연마해 읽고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도 그것을 모국어로 옮기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영어 좀 한다고, 일본어 좀 한다고 누구나 통역사가 되고 번역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영어 실력만큼 중요한 한국어 실력


그렇다면 단순히 외국어를 잘 하는 것을 넘어 외국어를 모국어로 매끄럽게 옮기려면 어떤 능력이 뒷받침돼야 할까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모국어 실력입니다. 영어와 한국어를 예로 든다면 영어 실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가정할 때 전문 번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탄탄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학부 시절 심리학 교양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 수업 교재로 사용했던 책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영어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서였는데 각종 심리학 전문용어만 가득할 뿐 좀처럼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 책의 역자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우리말 해석이 불가하게' 옮긴 걸까요? 아닙니다. 아마 심리학으로 미국에서 석,박사를 받은 재원으로 영어 실력도 무척 뛰어났을 겁니다. 다만, '번역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매끄럽게 옮기는 작업'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어 실력 키우는 방법


제가 통대 재학 시절 문학 번역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 들었던 최고의 칭찬은 '번역문이 아닌 본래 한글로 쓰인 글처럼 자연스레 읽힌다'라는 칭찬이었습니다. 문학 번역의 대가인 교수님께 그런 칭찬을 받은 건 더 없는 영광이었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번역을 할 때 '번역을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번역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첫째, 원문의 내용을 100% 이해하고 둘째, 그 내용을 최대한 쉽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쉽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옮기려면 일단 한국어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장을 매끄럽게 쓸 수 있어야 하고, 적절한 표현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어려운 원문 내용도 쉽게 풀어내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즉, 한국어를 잘 읽고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 부분은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째,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사실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좋은 글(번역문)을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별다른 왕도가 없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 저는 학부 시절 언론사 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한 경험이 있습니다.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읽고 쓰는 훈련은 여한 없이 했는데요, 그때 주로 사용했던 방법이 좋은 문장을 보면 무조건 노트에 옮겨 적는 것이었습니다. 신문에서든 책에서든 나중에라도 꼭 활용하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면 노트에 적고 수시로 읽었습니다.


둘째, 내가 직접 써봐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글을 많이 읽어도 읽는 행위 자체가 글쓰기 실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려면 내가 직접 써봐야 합니다. 노트에 수북이 적어둔 좋은 표현도 내가 글을 써봐야 적용하고 써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처음에는 이 하얀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막막하지만 하루하루 쓰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속도도 붙습니다.


셋째, 첨삭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소위 '공포의 빨간펜'이죠. 많이 써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가의 첨삭을 받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내가 쓴 주제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썼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며 한겨레 아카데미라는 곳을 다녔는데요, 당시 강의를 맡으셨던 기자님께 제가 쓴 글을 매주 첨삭을 받았습니다. 종이 가득 빨간펜이 체크돼 있는 걸 볼 때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 과정은 제 글쓰기 실력의 탄탄한 거름이 돼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번역가의 한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살펴봤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가장 기본은 읽고 쓰는 역량임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aaronburde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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