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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Feb 09. 2021

집에서 일하니까 좋겠다고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빠른 속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게 된 단어가 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인데요. 사실 저는 이런 표현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작년 6월, 브런치를 비롯한 디지털 세계에 입문하고 보니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던 말이더라고요. 처음엔 '디노'라고 줄여서 말하길래 아들맘인 저는 공룡을 뜻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디지털 세계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아시겠죠.


그렇게 디지털 세계에 입문하며 저 역시 서서히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저는 진작부터 디지털 노마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회사나 기관에 소속된 적 없이 이미 9년째 프리랜스 번역가로 일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든 어디서든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SNS로 부가적인 수익을 내며 그 영역이 조금 확대되었을 뿐입니다.


두 아이를 기르며 번역 일만 할 때도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에서 애도 보고 일도 하니 얼마나 좋아!"

"누구 엄마는 좋겠다. 나도 프리랜서 하고 싶어."

"버는 돈 좀 적으면 어때. 집에서 애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잖아."


네, 맞습니다. 내 아이 남한테 안 맡기고 내 손으로 기르며 일도 할 수 있으니 정말 좋았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처럼 보였죠.


그리고 감사하게도 저는 디지털 세계에 입문 후 제 본업의 연장선에서 또 다른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단 1%의 대면 없이 오로지 비대면 활동으로만 지식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를 통해 부가적인 수익도 얻고 있고요. 그런데 여러분, 사람과의 직접적인 대면 없이 100% 온라인으로 일을 하는 생활. 그 이면의 삶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많은 사람이 소위 '디노맘'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그것을 현실화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법이니까요. 이 글은 그저 아, 디노맘은 이런 고충이 있구나, 디노맘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이런 관점에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느낀 디노맘의 그림자는 다음 네 가지입니다.


첫째, 노트북과 스마트폰의 노예가 됩니다. 사실 이건 비단 디지털 노마드뿐 아니라 현대인의 공통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집에서만 일을 하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집니다. 모든 의사소통은 문자, 카카오톡, 이메일, 전화로 이루어집니다. 내게 일감을 줄 클라이언트 언제, 어떻게 연락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알람은 꺼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받은 연락으로 뭔가 일을 처리해야 할 때면 바로 노트북 앞에 앉습니다. 아이들이 뭐라고 말을 해도 "잠깐만, 엄마 이것 좀 하고."라며 거부하기 일쑵니다. 자연스레 아이들의 눈에는 온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엄마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래서 제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면 저희 작은 애는 요즘 확 낚아챕니다. "엄마, 나만 봐."하고요.


둘째,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저는 '집에서 옆에 있어주는 엄마'가 아닌 '집에서 공부하는 엄마'입니다.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하며 큰애를 임신했고, 돌이 지나고부터 바로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큰애 머릿속에 저는 '공부하는 엄마'입니다. 그래서 제가 책상 앞에 앉으면 이렇게 묻습니다. "엄마, 공부해? 공부 안 하면 안 돼?" 그래서 자연스레 저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공부하는 엄마'가 되었어요.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공부가 곧 일이었지요.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워보겠다고 선택한 번역가라는 직업.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있는 저는 아이들 곁에 있는 엄마가 아닌 책상 앞에 앉은 일 하는 엄마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안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네요. 그럴 때면 차라리 출퇴근하는 엄마들이 부럽습니다. 그분들은 최소한 집에서는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일과 육아가 분리되는 삶일 테니까요.


셋째, 일과 육아, 살림까지 하는 것이 당연시됩니다. 저는 일을 하는 엄마입니다. 다만 직업의 특성상 출퇴근에서 자유로울 뿐입니다. 남들이 직장에서 일하는 것만큼 집에서도 일하는 시간이 확보돼야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아이를 기르며 그 시간을 확보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새벽을 깨우고 늦는 밤을 밝혀가며 10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왔네요. 그럼에도 육아는 물론 살림까지 '당연히' 제 몫입니다.


물론 남편도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특히 요즘은 주말에 꼭 2-3시간씩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주어 평일 내내 아이들과 붙어 있는 제게 꿀같은 휴식 시간을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바쁠 때면 한 달에 두세 번 집밥 먹기도 힘든 남편이 주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차피 주 양육자는 저, 엄마입니다. 집에 있기 때문에,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집에 있는' 제 몫입니다.


제3자가 보기에도 저는 그저 전업주부일 뿐입니다. 차려 입고 출근하지 않으니까요. 등원도 제가, 하원도 제가, 학원 픽업도 제가 다니니까요. 제 상황을 소상히 밝히지 않는 이상 저는 그저 전업주부에 불과합니다. 그저 집에서 번역 알바쯤 하는 애 엄마겠죠. 남들 못지않게 공부하고, 못지않게 활동하는 사회인인데, 그런 시선을 마주할 때면 속상하다 못해 억울합니다.


째, 그렇게 집에만 있다 보니 자연히 외모 관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모임도 있고 교회도 가고 정기적으로 외출할 일이 있었기에 외모를 가꾸는 데 소홀하진 않았습니다. 큰애 입학할 즈음에는 전문적으로 메이크업을 하시는 분께 화장법을 배우기도 했네요. 아이에게 멋진 엄마, 내세우고 싶은 엄마가 되고 싶었거든요. 옷도 비싼 건 아니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외출복으로 일 년에 한두 벌은 마련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출퇴근을 한다면야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긴장을 놓지 않겠지만, 지금의 저는 일주일, 아니 한 달에 한 번도 외출할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 주일마다 교회 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수개월째 중단됐으니까요. 미용실은 물론 옷을 살 일도, 화장할 일도 없습니다. 만날 늘어난 고무줄 바지만 입고 있으니 살이 얼마나 찌고 있는지도 체감이 잘 안되네요.




위 모습이, 많은 분께서 선망해 마지않는 일명 '디노맘'의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한 가지 조심스러운 건, 팬데믹 상황임에도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기관에 맡겨야 하는 부모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제 글이 행여나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다만 저는 이 글을 통해 우리가 흔히 선망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라는걸, 그만큼의 그림자도 함께 존재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모든 걸 직접 경험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 번쯤 솔직하게 풀어내고 싶었고요. 그런 관점에서 가볍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팬데믹 시대, 밖에서 일하는 엄마든 집에서 일하는 엄마든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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