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6. monster 등장 영어 그림책 3권
사랑하는 딸과 좋아하는 영어를 즐기는 순간들을 기록하고자 쓰기 시작한 브런치북 <1살 딸과 영어 그림책은 사랑이다>. 딸은 최근 만 2세가 되었고, 에필로그로 딸이 0살일 때부터 만 1세까지 2년간의 시간들을 더듬고 정리해보고자 한다.
현 브런치북에 소개된 영어 그림책은 20권 내외 정도이지만 읽어준 모든 책을 적어보자면 보라색 튤립사운드북인 <아기영어동요>, <노부영 베이비 베스트 15>, <노부영 마이퍼스트 스팟>, <DK My First Collection>, <노부영 베스트 15>, <노부영 스테디 베스트 15>.
이렇게 읽어준 그림책들을 나열하면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많이도 읽어줬네‘ 와 같은 반응과 함께 부담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타 블로그나 책육아 카페에 들어가보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림책들을 사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읽어주는 분들이 적지 않다. 현직 중등 영어교사임에도 딸에게 특별히 많이도 특별히 다르게도 한 게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딸과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딸에게 해준 것을 요약하자면
1. 집에서 항상 CD를 재생시켜 영어 노래를 들려주었고,
- 딸이 18개월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하루의 반은 영어 노래, 나머지 반은 우리말 노래를, 어린이집을 다니고 나서부터는 집에서 영어 노래 위주로
2. 엄마 목소리로도 노래를 불러주었고(나도 계속 듣다보니 노래가 쉽게 외워진다),
- 특히 딸이 말을 하기 전 그리고 옹알이를 할 때 엄마 목소리로 많이 불러주곤 했는데 이때도 영어 노래 반, 우리말 노래 반 정도
3. 노래로 들려준 책을 읽어주었다.
- 책을 보여주며 엄마가 노래를 불러주거나 책 읽듯이 자연스럽게 읽어주기도
더 간략히 핵심만 요약하자면 영어 노래를 들려주고, 불러주고, 책을 읽어준 것이다. 당연히 우리말 노래도 들려주고, 한글 그림책도 많이 읽어주었다. 모국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영어는 그저 어릴 때부터 노출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받아들이기만을 바랐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SNS 상에는 두돌 전부터 영어 문장을 정확하게 발화하고 이해하는 아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건 더욱이 내가 바라고 목표한 바가 아니었다. 엄마의 목표가 딸을 옥죄어 갈까봐 두려웠다. 그저 엄마가 좋아하는 영어를 딸에게 소개해주고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가지며 웃고 춤추며 추억을 쌓아가고 싶었다.
그 결과, 현재 26개월, 만 2세인 딸은 스스로 영어 그림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한다. 노래 후렴구를 부르며 엄마에게 노래에 해당하는 책을 읽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며 엄마가 어떤 영어 노래를 부르거나 책 속 문장을 말하면 그 책을 가져올 수도 있다. 영어 단어들을 듣고 해당 사물, 동물, 상태, 동작 등을 나타내는 사진을 짚어내고 몇몇 문장들은 정확하게 발화한다.
두돌되기 얼마전 쯤 그리고 요즘에도 딸은 한창 괴물에 빠져있다. 우리집에는 TV가 없어 친정에 방문할 때면 딸이 영상을 시청하는데, 딸의 최애는 ‘똘똘이’다. 똘똘이 에피소드 중 할로윈이 주제인 영상이 있는데 그걸 시청한 이후로 자기 전에 종종 괴물책을 읽어달라고 들고 온다. 영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Are you a monster?” “Not me.”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한 권이 아니라 지금껏 읽은 괴물 관련 책들은 다 들고 왔다.
처음엔 무척 놀랐다. 딸이 스스로 이전에 엄마와 책을 통해 경험한 괴물들과 이후 외가집에서 TV를 통해 본 ‘똘똘이’ 속 괴물이 다르게 생겼음에도 서로 연결시키는 걸 보고 말이다. ‘괴물’, ‘monster’에 대한 개념이 딸의 머릿속에 확립된 느낌이었다.
현 브런치북에 올린 글들에서 재차 적은 내용이지만 만0~1세의 영유아들에게 책육아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핵심은 책을 통해 보고 들은 것을 세상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세상과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죽은 지식과 다를바 없다. 그러므로 엄마가 현실에서 책 속 사물과 연결지어주고, 상기시켜주는 것은 무엇보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느낀 바가 있다면 이 시기 영유아들은 그야말로 언어 스펀지라는 것이다. 우리말이든 영어든 언제 배웠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동안 엄마를 통해 들은 표현들을 불쑥 불쑥 사용할 때가 종종 있다. 심지어 생후 몇 주 후, 발화 능력이 없음에도 발음의 미세한 차이를 들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Peter Eimas and his colleagues, 1971).
그래서 종종 영어 그림책을 읽어줄 때 우리말로 통역해줄 필요가 없음을 여실히 느꼈다. 우리말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다. 부모인 우리는 우리말을 통역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어 스펀지인 영유아들은 주어진 현실 상황을 통해 혹은 책 속에 그림으로 묘사된 상황을 통해 관련 표현의 용법을 스스로 습득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해석, 통역할 필요 없이 책을 읽어줄 때 아이에게 그림을 볼 시간을 충분히 주며 핵심 표현에 집중하여 이해하기 쉽게 읽어준다면 무리없이 습득해낸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아이의 성향,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경우 노래를 엄청 좋아한다. 리듬과 박자를 정확하게 타고 음정, 가사를 빨리 외우는 편이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놀라움을 자아내시곤 했다. 이 시기 대부분 아이들의 특징일지 모르나 나는 딸의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했다. 노래를 항상 먼저 들려주니 큰 거부감 없이 책을 소개하며 읽어줄 수 있었고 딸이 더 쉽게 영어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두돌이 지나 26개월인 딸과는 또 어떻게 영어를 즐겨볼까 고민하는 요즘이다. 영어 영상을 체계적으로 노출해볼까 고민 중이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한글이나 영어 알파벳 등 글자를 아직 가르치고 싶진 않다. 딸이 책 속 검은 글자들을 보고 “엄마 이건 뭐야” 하면서 물은 적이 있긴 하지만 “글자야. OO이가 글자를 배우고 깨우치게 되면 혼자서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어” 라고 그저 대답해주고 만다. 아직은 딸이 책 속 스토리들에 집중하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
또, 딸이 사랑스럽게 영어 노래를 부를 때나 문장을 발화할 때 영상으로 혹은 녹음을 통해서라도 남겨두고 싶다. 그 순간을 감탄하느라 촬영, 녹음을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데... 지나간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 특히 딸이 커가는 동안 기록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사무치게 후회스럽다.
2년동안 책육아를 하며 절실히 느낀 게 있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과 그 시간을 통해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자신을 사랑해주는 엄마와 함께 책을 즐기는 환경 속에서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과 그것을 알아가는 것의 재미를 느끼는 것 말이다.
영어 표현 몇개 더 알고 먼저 발화하는 것, 알파벳 빨리 깨우치는게 중요하지 않다. 이 시기가 아니더라도 일정 시기가 오면 영유아기 때보다 아주 짧은 시간에 습득하고 배울 수 있다. 특히 영유아 시기엔 그 무엇보다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게 최우선적인 과제다. 지상 최대의 과제.
* 딸이 26개월이 되었을 즈음 써둔 글이다. 딸이 29개월이 된, 이 글을 발행하는 지금은 영어 그림책의 노래 한 곡 전체를 일부 제외하고 많은 부분 딸이 외우고 있고 따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