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 학생들의 성장통을 함께하는 것
The decisions I made after that moment were not the ones she *would have made. They were the choices of a changed person, a new self. You could call this selfhood many things. Transformation. *Metamorphosis. *Falsity. *Betrayal. I call it an education. (책 329쪽에서) (*에 대한 설명은 글 최하단에 있습니다.)
-<Educated> by Tara Westover
(옮긴 글)
그 순간 이후로 내가 한 결정들은 과거의 내가 했었을 결정들이 아니었다. 그 결정들은 변화한 사람이, 새로운 자아가 한 선택들이었다. 당신은 이 자아를 여러 가지로 부를 수 있다. 변신, 변형,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2014년부터 교직생활이 시작되었으니 9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했다. 10년 차가 시작될뻔했던 올해 3월부터 딸과의 시간을 갖고자 육아휴직 중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9년 간의 교직생활동안 고전이나 명서들에 나오는 교육의 뜻보다 교사로서 직접 느끼고 배운 교육이란 학생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결실을 맺는 어려운 과정을 함께 해주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진학해 교사라는 직업을 얻고 싶다는 목표가 확고했다. 이유는 없었다. 운명적으로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사로 부임한 첫 학교, 같은 학년실에서 근무했던 선배 선생님께서 나에게 “선생님은 교사가 천직인 사람 같다. 다음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사랑 많이 주고받는 교사가 됐으면 좋겠다.” 고 말씀하신 걸 보면. 선배 선생님의 시선에서 그렇게 비쳤다면 그래도 교사로서 내가 하고 싶었던 교육 활동을 잘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교육, 바람직한 교사상은 2007년 즈음 자리 잡은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니까. 종이 신문을 읽다 교육 칼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려대 사범대 학생들이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교육 멘토링 활동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타강사나 학습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버는 내용, 어떻게 1등급을 만들어주는지에 대한 내용의 기사들보다 항상 힘든 경제적, 가정환경에 처한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 가능성을 함께 찾고 그 과정을 같이 헤쳐나가기 위해 교수, 학습적 도움, 경제적 지원, 상담을 통한 지지와 치유를 주는 내용들에 이끌렸다. 교육 멘토링 칼럼을 고이 가위로 오려 접고 다이어리 포켓에 넣어두었다. 부적처럼. 수능을 치고 사범대에 진학해 멘토링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교사가 되어도 지금 이 마음과 생각을 잊지 말자고. 이 마음으로 꼭 교사가 되겠다고. 그러니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그렇게 부적처럼 칼럼을 넣어두었다.
그렇게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진학했다. 당시 교육 멘토링 활동이 졸업 요건도 아니었다. (내가 졸업하고 나서 졸업 요건이 된 걸로 알고 있다.) 3학년이 되고 잊지 않고 한 고등학교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는 특히 많은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이 영어를 잘한다면 장학금을 받고라도, 혹은 영어 관련 전형으로, 추후에 취업을 할 때에도 많은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단기간의 멘토링 활동이었지만 과외, 학원의 도움이 부재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떻게 보면 나의 첫 제자들인 그들에게 진심을 다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 합격 후 교사가 되었다. 세 학교를 거치는 9년 동안 다양한 학생들을 만났다. 그 학년의 제일 요주의 학생도 우리 반에 있었고, 홀어머니와 살며 항상 교실에서 우울하게 홀로 앉아 있는 학생, 이혼한 부모님 중 아버지와 살며 어머니로 대변되는 여자에 대한 안 좋은 관념으로 항상 여자 선생님과 문제를 발생시키는 학생, 성 관련 문제로 틀어진 교우관계를 힘들어하는 학생부터 영어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부모님이 주시는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학생까지. 1,000명의 학생들을 만났다면 한 명 한 명이 다 다른 역경을 헤쳐가는 중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우리 반 중2 남학생이다. 결석과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말만 하면 거짓말에, 담배를 피우고, 밤늦게 동네를 배회하며 친구들과 위험하게 놀고, SNS상 성관련 문제도 있었던 전 학년의 학교생활, 그리고 학교를 믿지 못하는 아버지를 둔 학생이었다. 연초에 학년부장 선생님이 올해 우리 학년에서 제일 걱정되는 학생이라며 이러저러한 연유로 선생님 학급에 배정되었다고 미안하다고 선생님이 잘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긴장됐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만나야 할 운명이구나, 잘 지도해 봐야겠다. 만나서 반갑다.’는 마음으로 그 학생을 맞이했다.
일 년 동안 그 학생을 위해 해 준 것은 편견, 선입견 없이 그저 믿어주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도 속아도 좋으니 믿어주었다. 그리고 교무실을 들어오면 왔다고 칭찬해 주고, 인사하고 나가면 인사를 잊지 않았음을 칭찬해 주고, 이렇게 작은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칭찬하고 격려해 줬다. 같은 학년실 동료 선생님들도 그 학생을 함께 칭찬해 주셨고, 함께여서 좋은 영향이 더욱 커지고 빛을 발한 것 같다. 조금씩 그 학생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그 문은 가끔 수업 시간에도 열렸다. 한 번씩 발표를 할 때가 있었는데 진심으로 선생님이 감동했음을, 그리고 덕분에 수업 분위기가 활기차진 것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교우관계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 학생은 우리 반에서 튀는 요주의 학생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학급의 일원처럼 유쾌하고 재미있는 학생이 되었다. 그러더니 영어 듣기에서 100점을 받고, 지필 시험에서 약간의 성적 상승까지 이뤄냈다.
매년 스승의 날마다 찾아오고, 올해는 휴직 중이라 연락이 왔다. 다녔던 중학교가 아니라 고등학교를 가는데 갈 때마다 선생님 생각이 난다고. 운동부인데 유명해지면 다 선생님 덕이라고 말할 거라고. 진심이라고. 끝에는 나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특한 학생이 되었다. 그 학년에서 제일 요주의 학생이었던 그 학생이.
교사가 해야할 일이 수업을 잘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수업은 교사의 당연한 직무 중 하나이다. 어쩌면 학생들의 학습 외적으로도 관심을 갖고, 아직 어리고 여린 존재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편견 없이 그 존재 자체로 봐주는 것. 함께하는 그 시간 동안 가능성이 꽃을 피우는 그 과정을 함께 해주는 것.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인내하고 돕는 것. 이렇게 학생의 성장통의 과정에서 교사가 진심으로 응원하며 함께하면 학생은 자신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로부터 느끼고 받은 그 진심을 수업에까지 되돌려주게 된다. 진지하게 자신의 성장, 목표, 꿈을 위해 학생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학습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임을 느낀다.
결국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한 차시 수업의 목표 표현이나 어휘, 문법 그 이상이 된다. 너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금 처한 가정환경이, 교우 관계가 어떻든, 무엇이 얼마나 힘들든,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면 어떤 가능성, 실마리가 있다고.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고 받고 또 받은 만큼 주면서 그렇게 성장하고 살아가자고. 교사의 눈빛에서, 말에서, 힘이 실린 목소리에서, 손짓에서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학생들에게 다 전달된다.
김태현 선생님은 책 <교사의 시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코로나19, 미래 사회,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원격수업 등 2020년은 유난히도 변화의 단어들이 많이 나왔다. 이에 우리 교사들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원래부터 소중히 생각해야 할, 보통의 단어들이 우리 머릿속에서 잊혀가는 듯했다. 미래적이고 진취적인 단어들만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작고 단순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물론 문명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평범의 가치들이 있다. 예를 들어, 교육에서는 서로의 손을 잡아두는 따듯한 온기,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교감, 서로의 말을 깊이 들어주는 공감 등 이런 일상의 행동들이 그런 것이다. “
어떻게 보면, 내가 9년 교직생활을 하며 체득한 교육의 의미는 참 진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변하는, 다른 것이 대체할 수 없는, 학생에 대한 교사의 애정과 진심만이 이뤄낼 수 있는 변화. 그것이 교육의 본질적인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would have made: 가정법 과거완료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반대로 가정했을 때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측으로도 쓰인다. 여기서 she는 과거의 나, 즉 교육을 받기 전의 나(어린 소녀)를 의미한다. 영어로 past self 혹은 past I가 아니라 she로 표현한 이유는 교육을 받고 난 이후 완전히 탈바꿈한 자아를 나타내기 위해, 또 다른 나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임을 나타내기 위해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그 거리감을 표현했을 것이다. 교육을 받고 난 이후에 내가 한 선택들은 그 소녀가 내렸을 것 같은 결정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들일 것이다.
metamorphosis: transformation과 ‘변형, 변화, 탈바꿈, 변신 등’으로 같은 의미의 단어. 차이점은 metamorphosis는 곤충 등의 변태, 생물학, 병리학 등에서 쓰이며, transformation은 수학, 언어학, 유전학, 정치학 등에서 자주 쓰인다. transformation은 특히 향상된 방향으로의 변화를 자주 나타낸다.
falsity / betrayal: 교육으로 변화된 자아를 왜 허위, 배신으로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가족, 특히 교육을 시키길 원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명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