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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Sep 09. 2022

지치지 않는 비거니즘

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Chapter 3. 끊임없이 불화하고, 화해하고


두 번째 이야기. [지치지 않는 비거니즘]


  2020년 여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비가 멈추지 않았다. 54일이라는 역대 최장 장마 기간을 기록했다. 6월의 학교엔 추적추적 빗소리만 들렸고, 습기를 견디지 못한 복도 창문엔 몇 주 째 김이 서려있었다. 원격수업 기간에 동아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한 영자신문은 눅눅해진 채 책상 한 켠에 쌓여갔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복도는 조용했다. 아이들이 없으니 체력은 비축되었지만 학교생활에 권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 담임을 맡아 설렜건만 체육대회도, 학교 축제도 하지 못하고 우리 반 아이들과 가까워질 기회조차 없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장마와 코로나로 인한 무기력감이 겹치며 6개월 만에 비거니즘 번아웃이 찾아왔다.


  한강물이 불어 자전거도로가 잠길만큼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은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만 같았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배달 음식들은 무릎까지 빗물이 차오르는 날에도 세상 이곳저곳을 누볐으며, 여전히 TV를 틀면 고기의 육즙을 찬미하는 먹방이 나왔고, 여전히 나는 내 주변의 유일한 비건 지향인이었다. 기후위기를 목도하면서도 그대로인 세상을 향해 답답함을 느꼈다. 매일 밤 도시락을 싸는 일은 지쳤고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쓰레기가 얼마나 나올지, 비건인지, 나에게 정말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일도 피곤했다. 내가 이렇게 애써도 세상은 그대로인데, 기후위기는 되돌릴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다 무슨 의미인가?


  힘이 빠지니 조그맣던 빈틈은 조금씩 넓어졌다. 동료 선생님들이 커피를 배달시켜 먹자고 하면 일회용 컵의 존재를 떠올리면서도 나의 몫을 함께 주문했다. 교무실에 드립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도구가 있음에도 동료 선생님들이 오며 가며 플라스틱 캡슐커피를 하나둘씩 주면 열심히 얻어먹었다. 밤마다 축 늘어진 채 침대 위에서 도시락을 쌀까 말까 고민하다 잠을 선택하고는, 다음 날 일회용기에 담긴 샐러드를 배달시켜 먹었다. 편리함을 앞세우는 생활은 중독성이 강했다. 점차 그 빈도는 잦아졌다. 먹고 마실 때까진 편리함에 취해있다가도, 돌아서서 쓰레기를 버릴 때면 박약한 의지를 탓하며 자괴감을 느꼈다.


  어쩌다 동물권이란 걸, 비거니즘이란 걸 알아버려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을까. 반년간 고민을 한 아름 안고 살았더니 고민 없이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실천을 그리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자각하며 더 힘이 빠졌다. 책을 읽는 것조차 지겹게 느껴졌다. 특히 동물권 책은 그만 읽고 싶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맞서기엔 너무 거대한 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한 비인간 동물의 고통을 계속 마주하는 것이 몹시 지쳤다. 그런데 맙소사, 최근 사놓은 책은 죄다 동물권 책이었다. 혼자서 가시덤불로 가득한 섬에 갇혀 허우적 대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러게 거길 왜 들어가서 피곤하게 사느냐고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고민 없이 치즈돈가스를 먹던 과거가 그리웠다.


  장마 내내 퇴근하고 돌아오면 잠들기 전까지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흘려보냈다. 하염없이 무기력감에 짓눌렸다. 운동은 내 정신건강을 지탱해줄 최소한의 안전장치였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 수업만 겨우 다녔다. 등교 수업 기간이면 눕자마자 짧은 저녁잠에 빠졌지만, 원격수업 기간에는 체력이 남아 눈이 말똥했다. 하루는 퇴근하고 누워 욜라텡고의 나른한 노래를 들으며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천장을 보는 것이 지겨워지니 쌓여 있는 책 더미에 눈길이 갔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재미 강박이란.


  책 더미 위엔 먼지가 쌓여 있었다. 긴 호흡의 책은 피하고 싶었기에, 가장 얇은 책을 꺼내 보았다. 문선희의 <묻다>였다. 노란색 바탕 표지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화 같은 그림이 있고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이라 쓰여 있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기에 “전염병”이란 단어는 익숙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동물 살처분 매몰지”는 낯설었다. 어렴풋이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떠올랐다. 책을 펼쳐보았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책을 여니 표지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사진들이 연이어 나왔다. 다시 표지를 보니, 그 역시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풀도 있고, 흙 같은 것도 있고, 현미경으로 찍은 잎사귀의 줄기 같은 사진도 있었다. 사진 옆에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2312, 1588, 73000… 수열인가? 숫자들 사이에 규칙이 있나 찾아보려 했지만 규칙은 없었다. 마지막 사진 다음 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 사진들은 구제역과 조류독감 매몰지 3년 후를 촬영한 것이며, 제목으로 쓰인 숫자들은 그 땅에 묻힌 동물들의 수입니다.”


동물들의 수. 앞으로 돌아가 사진들을 다시 보았다. 자세히 보니 곰팡이가 피어오른 땅의 사진이었다. 그 안에 동물들이 묻혀 있었다. 가장 큰 숫자는… 84879였다. 84879명의 생명이 산채로 그 땅에 묻혔다.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코로나를 마주한 인간은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이동을 제한하고, 첨단 기술을 동원해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다. 반면 비인간 동물은 전염병이 닥쳐도 “살 궁리”를 할 수 없다. 비인간 동물의 전염병을 해결하는 방법은 죽음이다 [1]. 수십만, 수백만 생명이 죽어야 끝이 난다. 밀집 사육은 비인간 동물들이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환경이다. 효율과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시스템이다. 하지만 밀집 사육 때문에 전염병이 더 빨리 확산될 때마다 산채로 죽어야 하는 건 아무 잘못 없는 비인간 동물이다.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동물들조차 죽어야 한다 [2]. 2010년 겨울 구제역 사태로 347만 9,962명의 돼지를 살처분했다. [3]


‘내가 돼지였다면, 거대한 흙구덩이 속에 던져졌다면, 영문도 모른 채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천천히 죽어가야 했다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품이 드는 일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가정법의 문장으로 뱉고 써내야 겨우 조금씩 상상력이 나에게서 타자로 옮겨간다. 공감을 하기 위해선 단순히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남의 신발을 신고, 좀 걸어봐야 한다. 걸어보며 남이 살고 있는 세상의 풍경은 어떤 모습인지 하나씩 살펴보아야 한다. 그건 분명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난 동물의 고통을 상상하는 일에, 공감적 상상력을 뻗는 일에 지쳐 있었다. 자꾸만 비인간 동물이 처한 세상의 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괴로웠다. 비거니즘 번아웃의 한 복판에서 살처분 현장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일은 무력감을 더했다. 나 혼자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이 거대한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책에는 살처분으로 인한 비인간 동물의 고통만 담겨 있지 않았다. 동물의 고통 곁에는 언제나 인간의 고통이 있었다.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었던 공무원 아홉 명은 과로 누적과 작업 중 사고로 사망했고, 살처분과 매몰 업무 담당자 중 34.5 퍼센트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겪었다. 동물 사체 더미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는 하천으로 유입되어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켰다. 인근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 지하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4].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으로 인해 비인간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고통받고 있었다.


  어쩌면 동물의 고통과 인간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그들의 건강이 우리의 건강한 삶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리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어렵다면, 조금 더 가깝게 인간 타자의 현실을, 그조차 힘들 때면 그저 눈앞에 주어진 우리 자신의 현실을 응시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긴 장마로 인한 무기력함,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없어진 학교처럼 말이다. 우리가 동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의 삶 역시 건강하고 지속가능할 수 없다. 비거니즘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동물의 고통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함이기도 한 것이다.


  동물권과 비거니즘을 접하며 새로운 욕구와 감각들로 충만함을 느끼면서도, 너무 거대한 세상의 고통을 마주할 때면 한없이 지치곤 했다. 내 실천의 빈틈이 타자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힘들다면, 잠시 상상력의 범위를 좁혀도 괜찮다. 잠시 공감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온 힘을 집중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를 살기 위한 방법 역시 비거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지치고 싶지 않았다. 지속가능하게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싶었다.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의 안온함을 바라기 때문이다.


          


[1] 백신으로 구제역을 종식시킬 경우, 최소 2년간 구제역이 재발하지 않아야 세계 동물보건기구에 백신 사용 청정국 지위를 신청할 수 있다. 살처분만으로 구제역을 종식시킬 경우 마지막 발생일로부터 3개월 후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신청할 수 있다. 구제역 청정국끼리만 육류를 교역할 수 있기 때문에, 청정국 지위를 상실하면 육류 수출에 제한이 생긴다. 1999년 우리 정부는 사료 소비, 생산량 감소, 수출 제한, 비용 절감을 근거로 살처분을 구제역 박멸을 위한 기본 모델로 채택했다.  


[2] 2010년 12월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독감(AI)으로 살처분당한 가금류 중 99.999퍼센트는 건강한 동물이었다.


[3] 그해 겨울 전국에 조성된 매몰지는 4,799곳이다.


[4] 2010년~2011년 당시 경기 북부 지역에 조성된 1,009개의 매몰지 중 192곳은 과거 침수가 발생했던 장소 혹은 하천으로부터 거리가 50미터 미만인 곳에 있었다. 2010년 이후 강화군에 조성된 51곳의 매몰지 인근 지하수 수질 검사 결과, 31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대장균, 질산성 질소 등이 검출되었다. 강화군은 상수도가 없어 모든 주민이 지하수와 계곡물에 의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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