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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Apr 11. 2021

내 사진이 별로 없잖아

나만 알고 그는 나를 모르는 나보다 두 살 어린 뉴요커가 주근깨가 훤히 보이는 쌩얼에 편안한 후드티, 두꺼운 뿔테안경, 거기에 털모자 쓰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스토커 아님) 연이어 올린 사진에는 비슷한 차림의 주변인들이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들 모임에 갈 때 귀티와 광내는데 애를 쓴 나머지 편안해 보이기는커녕 보는 사람도 불편해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림과 모양새였다. 그 모습은 마치 초등학생들이 놀이터에서 그네, 구름사다리, 시소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듯 풋풋하고 싱그러운 청춘 그 자체였다. 그의 친구 중에는 마흔 살도, 쉰 살도 있었다.


‘아 나도 이렇게 매 순간을 찍어야겠어. 사진에서 그날의 즐거운 분위기와 사랑스러운 향기가 느껴지도록.’ 


그걸 보고 언제라도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모습으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적당히 아끼는 옷을 입고 머리를 빗고 립밤을 바르는 정도면 된다. 두꺼운 화장 대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거로도 충분하다. 왜 그게 어려울까. 어제는 준군이 나를 보더니, 머리가 3일 내내 똑같아 보인다고 했다. 뜨.끔. “아니야! 이틀이거든?”하고 외치면서도 그것도 크게 자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내 사진을 찍는다는 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웬만한 관종력이 있지 않은 이상 좀처럼 시도하게 되지 않는다. 일단 찍어주는 인간도 없다. 아는 포토그래퍼가 있어서 내 사진을 많이 찍어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내지 않는 이상. 하물며 요즘처럼 집에 많이 머물 때는 친구를 만나는 일도 드물기 때문에 발로 사진 찍는 사람조차 만나기 어렵다. 가족한테 찍어달라고 하면 그리 귀찮아 할 수 없다. 심지어 가족은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대체로 똥손이다. 그런 이유로 작년 사진첩을 훑어보니 ‘내 사진’이 별로 없었다. 


얼마 전 집에서 혼자 좋아하는 니트를 입고 메이크업을 한 후 방에 삼각대를 설치했다. 아무도 찍어주지 않는다고 오늘의 젊음을 기록하지 않는 건 결국엔 내 추억만 손해였다. 


싸이월드 사진에는 0.001초 찰나의 순간이 담겨있지만, 그 사진을 보면 시절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같이 놀던 친구의 스타일, 함께 먹었던 음식의 달고 짠맛, 그때 나눴던 돌이켜보면 사소하지만, 그땐 죽는 줄 알았던 막중한 이야기, 그날의 날씨와 온도,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던 설레던 목소리 같은 것이 사진 한 장에 줄줄 적혀있는 것만 같다. 

그때보다 사진 찍어 올리는 게 더 편해졌지만 어째 사진은 갈수록 줄기만 한다. 안돼.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고. 아 뭐 꼭 젊은 날만 기록할 필욘 없지만.


카메라 타이머를 누르고 후다닥 달려가서 소파에 앉았다. 헉헉거리며 몇십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소파에 나의 개 온도도 앉혀놓고 같이 찍었다. 몇 번 해보니 여유가 생겨서 책 읽는 척도 해봤다. 흐린 날의 오후 뉴욕에서 온도와 남긴 사진들은 오중석 작가 부럽지 않게 잘 나왔다. 쉰 살에 이 사진을 꺼내 봐야겠다. 그때도 온도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사진 지옥에서 도망치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개의 수명 상, 길면 내 나이 마흔여덟 살까지 온도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많이 남았거늘 그 생각만 하면 눈이 무거워진다. 과학의 발전은 정작 정말 필요한 분야에선 꼭 90년대에 멈춰 있지! 


자주 찍으려고 했지만 역시나 그다음 날부터는 사진을 안 찍었다. 집에선 무조건 노브라로 생활하는데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에는 젖꼭지가 티가 난다. 그건 극복할 수 있다고 쳐도(?) 청소를 잘 안 해서 집이 더러운 게 문제다. 어쩐지 노브라는 오케이지만 옷 무덤에서 질식할 것 같은 방은 모두가 반대할 것 같다. 둘 다 자유주의 측면에선 비슷한 카테고리이긴 한데. 말할수록 손해인 것 같으니 그만하자. 

글을 쓴 김에, 생각이 나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내 사진을 왕창 찍기로 다짐한다. 사진 찍기 전에 나와 내 주변을 정돈하고 언제든 카메라를 들 수 있도록 해야지. 혼자서도 꿋꿋하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의 청춘을 담아낼 것. 앱에서 해주는 성형수술 효과와 필터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많이 미소 짓고 미간 펴기. 그리고 언제나 활짝 웃기. 


올해는 내가 몰랐던 내 표정과 내 몸짓을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나라도 나를 사랑해줘야지,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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