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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Apr 11. 2021

신간에세이 '괜찮지 못한 인간' 프롤로그 소개

에세이 <괜찮지 못한 인간> / 박도 지음

달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뛴 후의 개운함보다는 뛸 때의 괴로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와 많이 뛰었다’ 싶어서 타이머를 보면 겨우 15초 지났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달릴 때도 마찬가지. 옆을 보면 날씬한 사람이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별로 달리고 싶지 않지만 왠지 나도 달려야 할 것 같아서 덩달아 속도를 올린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어’ 언젠가 본 러닝머신 사고 기사를 떠올리며 ‘띠띠뚜두두두두둑' 속도를 낮추고 느리게 걷는다. 힐끗. 하아. 나만 뚱뚱해.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터덜터덜 집으로 향한다. 


세상에는 빨리열심히 달리는 우사인 볼트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천천히 걷거나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뚱뚱한 내가 보잘것없게 느껴진다실제로 내가 별로인 것보다도 한껏 과장해서 나를 얕보게 된다다른 페이지로 마우스를 클릭하면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피가 말라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다그걸 보고   정도가 아니라 괜찮아 수는 없다모든 것에 쉽게 물들 만큼 나는 보편적인 나약함을 지니며 살고 있다.


보통의 괜찮지 못한 사람들 이야기


어디에나 널려있다고 해서 시시한 건 아닐 것이다. 우리들의 안 괜찮음은 더 많이 공유되어야 한다. 종종 괜찮아 보이는 친구들이 자기만의 안 괜찮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족의 애환 또는 비애를 느낀다. 괜찮지 않은 게 오히려 정상이 아닐까. 드러내지 못할 '안 괜찮음’을 품은 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는 ‘비괜찮’ 유전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으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를테면 B-not-okay Gene number 1988 같은 것. 


대체로 불완전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낸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털어놓기를 수천 번 반복하다가 서른이 된다. 언제부터인가 조용히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괜찮아지기도 하는 어른의 스킬도 획득한다. 이 책에서 그런 평범하지만, 좀처럼 말을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별로인 나를 마주하면 할수록 내가 더 싫어지기도 한다. 책을 다 쓰고나서 이걸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싶은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기어코 다시 또 책을 내고 만다. 왜냐하면 고통을 해결하고 극복하려는 내 안에 강한 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생긴 문제의 답을 내 속에서 찾으려고 발악하는 힘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희망이었다.


살겠다는 발버둥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고 있다. 그곳에서 조금씩 괜찮아지거나 그대로 거나 어쨌든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용기를 내서 두 번째 책을 낸다. 열 번, 백 번째 책을 낼 때도 오늘과 같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기술이 숙련된다고 해서 용기가 필요 없다는 건 아닐 테니까. 오히려 다른 차원의 용기와 마주하며 살아갈 것이다. 더 크고 깊은.  


-       뉴욕에서, 박도 






작가 소개 

1988년에 수원에서 태어난 후 2019년에 뉴욕으로 이사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일, 영상을 만드는 일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했지만 자세히 소개하기엔 어쩐지 너무 오래된 일 같아 생략한다. 퇴사 후에는 줄곧 에세이를 쓴다. 그렇다고 에세이스트 혹은 전업 작가라고 하기에는…… 

에세이 <솔직한 서른 살> 출간 후 홀로 172nd BOOKS 출판사를 운영한다. 

인스타그램 @hem_allo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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