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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Apr 20. 2024

#5 아지트는 공덕역 루프탑호프

소설 연재

공덕역 4번 출구에서 박종을 만나기로 했다. 정확히 5시 3분에 박종이 도착했다. 4시 59분 50초에 마음속으로 10까지 세면서 동사무소에서 가장 먼저 뛰쳐나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동사무소 1등 직원 납셨네요~” 


“야! 동사무소라고 하지 말라니까. 센터라고 하라고. 센터.”


“주민센터가 뭐냐? 주민은 한국어고 센터는 영어잖아. 국가기관에서 왜 동사무소라는 멋진 말을 두고 명칭을 바꾸냐고.”


박종은 그런 현지씨 머리를 한 대 때린다. 퍽. 현지씨는 박종을 노려보고 손을 뻗는데 그 틈에 박종은 멀리 도망쳤다.


“야 너 거기 안 서? 딱 서! 죽는다 진짜. 이제 어른이니까 때리는 거 그만하라고. 미친년아”


두 사람은 서울 공덕동 빌딩 숲 사이 헐기 직전의 3층짜리 건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빌딩으로 둘러싸인 100평도 넘는 널찍한 루프탑 호프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하게 반반치킨에 골뱅이와 생맥 두 잔을 시켰다. 초록색 페인트칠된 옥상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빨간색 야외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가 군부대처럼 쫙 깔려있었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현지씨도 셀프로 옥상을 꾸몄다. 고등학생 때부터 두 사람의 아지트는 공덕 루프탑 호프였다. 현지씨의 이웃집에 살던 아줌마가 오픈한 가게라서 가족들과 외식하러 오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현지씨와 박종만 애용하고 있다. 그 후 직원들이 현지씨를 아줌마 친딸로 오해한 덕분에 현지씨는 미성년자임에도 맥주를 주문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불시에 아줌마가 방문해서 현지씨를 봤을 때 술은 되도록 먹지 말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현지씨가 달라는 대로 술을 주라고 했다. 18세에도 인생이 힘들면 술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그게 서른 살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술 값만 5천만 원이다. 가스나야!” 아줌마의 농담은 진담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현지씨는 고민이 있을 때면 루프탑호프에서 박종을 만났다. 고민이 없을 때도 물론 만났지만 이번 사건은 인생에서 벌어진 어떠한 것보다도 형사사건급이었다. 


“박종, 나 어떻게 처신해야 될까? 그냥 무시할 순 없어. 안 이상.” 


현지씨는 오직 박종의 조언만을 맹신했다. 박종은 현지씨에겐 솔로몬이었다.


“야 현지야. 넌 나보다 수능도 잘 보고 토익도 990점인 애가 왜 그렇게 어리석냐? 네가 불륜커플을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아?”


“뭐, 불륜이 벼슬이냐?”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현지씨를 쳐다보았다. 이 중에 불륜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제 현지씨는 순진한 얼굴 뒤에서 어떤 짓들을 벌이고 있을지 사람들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니, 쫄리는 건 걔네지. 내가 아니잖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등신아. 걔네 멘탈은 우리 같은 소시민은 상상할 수가 없다니까? 너는 니가 불륜했을 때의 입장으로만 바꿔서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무실 사람들 눈치 보고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그런 찐따 같은 너와 같을 거라고 그들을 예상하고 있는 거야.”


“엥? 당연한 거 아냐?”


“하. 너 나 죽으면 이 더러운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냐. 병!신!아! 애초에 너 같은 년은 불륜도 못해. 그런 새가슴으로는! 너 기억나? 우리 중학교 때 일진 초희.”


“아 중학교 때 성형수술한 애 아니야? 고등학생 때 학폭가해자로 정학당하고 미국 갔다던.”

“걔 지금 미국맘카페에서 난리 났어. 텍사스인가 어디에서 레스토랑 몇 개 있는 40대 유부남 사장이랑 불륜이래. 그 와이프 아주 작정하고 신상 다 올려났어. 딱 보니까 걔더라고. 일진 초희.”


“헐 대박이네. 얼굴은 어떻게 들고 다닌다냐. 한국 온 건가? 그 뒤로?”


퍽. 머리를 때리면 지혜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듯 박종은 현지씨를 쳤다. 


“아 씨! 때리지 말라고!”


“으유. 진짜 내가 너 때문에 공무원으로서 품행을 단정히 할 수가 없다! 야, 아까 말했지. 그건 딱 너다운 생각이라고. 일진 초희년은 다음날 빡세게 화장하고 딱 붙는 미니스커트랑 힐 신고 가게에 나가서 사모행세를 시작했다더라. 어차피 들킨 김에 더 당당하게 사장 세컨드로 한몫 챙기겠다 이거지.”


현지씨는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패를 쥐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적들은 두 명이고 그것도 파렴치한에 악질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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