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복덕방 사장님을 만났다. 복덕방이라 함은 동네의 온갖 진실과 구라가 섞인 소문들이 파다하는 곳 아닌가. 그런 복덕방의 특성 때문인지 사장님은 사무실 주변에서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분 중 한 분이시다.
그 복덕방 사장님이 대뜸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까지 책 얼마나 냈어요?"
"아, 네네. 다섯 종 냈습니다."
"아, 나도 책 하나 써보고 싶은데, 책 내면 본전은 뽑아요?"
"어... 그... 책 내는 데 제가 돈 들일 일은 없어서요, 본전이라고 할 게 없거든요..."
"어? 아니 그럼 책 내는 데 출판사에서 돈을 다 내주는 거예요?"
"네네, 자비출판 하면 자기 돈이 들기도 하는데요, 저는 글 쓰고 출판사에 투고해서 컨택이 됐거나 출판사에서 책을 써달라고 한 거라서요. 제가 출판사에 돈을 내는 게 아니라, 저는 출판사에 인세를 받는 거죠."
이런 대화를 나누다가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여 복덕방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헤어졌다. 고백하자면 '책을 내면 본전은 뽑느냐'는 복덕방 사장님의 질문에 조금은 부러 거들먹거리며 대답을 했던 것도 같다. 복덕방 사장님의 물음에는, "책 내는 데 돈 얼마나 썼어?" 하는 함의가 숨겨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 함의의 궁극에는 "돈 있으면 책 얼마든지 낼 수 있지?"처럼 느껴졌으므로.
그리고 어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어제는 아들 2호의 친구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아이 친구 아버님께서 책을 낼 때 저자의 돈이 어느 정도 드는지 물어보셨던 것. 그때도 역시, 아 제가 따로 돈이 드는 건 아니고요, 하는 대답을 해드리긴 했지만.
책을 내고서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상대의 뉘앙스에 따라 살짝 기분이 나빠지다가도, 반복되는 질문에 출판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책을 낼 때 저자의 돈이 드는 걸 당연시 여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게 글쓰기 플랫폼에서 책을 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살펴봐도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물이 대부분인 듯하다.
살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인생이지만,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 오로지 내 힘으로 글을 쓰고 책을 냈다는 것에서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라면 최소한 편집자 한 사람 정도는 설득시킬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기준의 '작가'라면,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지는 않으니까. 어떤 글쓰기 강사는 대출까지 받아서 자비출판을 하고서, 그걸 경험이라며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하던데. 그렇게 하면 스스로 좀 부끄럽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은 진짜 '작가'가 되고 싶은 것보다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필요한 거겠지?
책 내면 본전은 뽑나요? 모르겠다. 그저 내 글을 믿고 선택해 준 출판사가 적자나 보지 않도록 중쇄나 찍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뿐. 책 내면 본전은 뽑느냐는 질문에는 아마 앞으로도, 아... 제가 따로 돈 들일 일은 없고요...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는.
아, 참고로 복덕방 사장님은 대머리이신데 가발을 쓰시고 다닌다. 그냥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