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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Sep 08. 2023

책쓰기 클래스란 무엇인가. 3

나와의 약속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수강생들, 특히나 돈 천만 원을 지불하고 책쓰기 정규 과정에 합류한 천재 작가들을  위해, 오늘도 책쓰기 협회의 대표님은 이런저런 목표를 정해주고, 동기를 부여해 줄 것이다. 아무렴 돈을 천만 원이나 태웠는데.


이 책쓰기 협회를 눈팅하면서 이곳에서의 재미난 문화를 많이 봐왔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바로 책쓰기 협회의 대표님 단독 저서를 준비하는 수강생들에게 잊지 않고 미션 하나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 미션이라는 게 무엇인가.


그 미션의 이름은 바로 '초.고. 선.포.'

응? 선포? 내가 '선포'라는 단어를 언제 접했는가 떠올려보면, 계엄령 선포와 전쟁 선포 말고는 딱히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만큼 이 '선포'라는 단어는 뭔가 대단하면서도 흔치 않은 일에 쓰이는 것 아닌가. 계엄령도 그렇고 전쟁도 그렇고 생각하면 너무나 무서운데, 초고를 선포하다니. 아마도 대표님은 글쓰기란 이렇게나 대단하고 위험하고 무섭다는 것을 수강생들에게 은근히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아아, 대표님은 대체 어디까지 바라보고 계신 걸까.


그렇다면 이 '초고 선포'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크게 세 가지를 적어내는 거 같은데, 첫째로는 '내가 이제부터 초고를 쓰기 시작하겠다.' 하는 다짐을 시작으로 하여, 둘째로는 '내가 언제언제까지 이 초고를 마무리하겠다.' 하는 나와의 약속.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초고 마감의 약속을 지켜냈을 때 나는 내 자신에게 이런 선물을 안겨주겠다아, 하는 선물의 내역을 적어내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적어내는 이 선물의 내역을 보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서 책쓰기 협회의 눈팅을 멈출 수가 없다. 초고 선포를 하며 자신에게 행하는 초고 완성의 선물은 다들 제각각인데,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근사한 식사를 하겠다는 것은 소박한 축에 속하고, 어떤 이는 제주도로 2박 3일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어떤 이는 초고를 완성해 낸 자신을 위해 해외여행을 선물로 주겠다고 한다.


내가 보았던 초고 완성 선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벤츠 SUV'였다. 응, 벤츠? 그 고오급 자동차 벤츠? 내가 차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벤츠 SUV라고 하면 그래도 1억에서 왔다갔다 하지 않나? 초고 선포하고, 마감을 지켜내면 나를 위해 벤츠 SUV를 선물하겠다니.


글 쓰는 이들이 많이 인용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유명한 말이 있잖은가. '모든 초고는 쓰레기이다.' 하는. 그렇게 따지면 지금 이분께서는 쓰레기를 만들어놓고서, 스스로에1억 정도를 선물하겠다는 거 아닌가...


하아, 사실 너무 부럽다. 자신을 향한 선물로 한 번에 1억을 태울 수 있는 재력가라니. 그런 분이시니 책쓰기 클래스에 천만 원을 태울 수 있는 거겠지. 나는 초고 완성한 날 기분 좋아서 떡볶이나 사 먹을 텐데. 아니, 근데 1억을 쓸 수 있는 분이 굳이 뭐 스트레스받아가며 책 같은 거 쓰실 필요가 있나. 이쯤 되면 진짜 책이 뭐길래, 작가가 뭐길래 싶어 진다.


나는 책을 다섯 내봤지만, 어디 가서 나 이제 초고 쓴다? 초고 다 쓰면 날 위해 나에게 선물한다? 하는 선포 따위를 해본 적이 없다. 처음 책쓰기 협회의 사람들이 하는 '초고 선포'를 보고서는, 대체 저딴 걸 왜 시키는 거야 싶었다.

그저, 카페 사람들에게, 나 이제 멋진 작가의 길을 걸어갈 테야, 그런 나를 위해 응원의 댓글을 달아줘, 나에게 멋있다고 환호해 줘, 나에게 우쭈쭈를 해줘, 하는 거잖아.

초고 마감일을 적어놓은 것도 그래. 그렇게 날짜 떡하니 올려놓고 글 쓰는 거 그거, 해내면 본전이고 못하면 망신뿐인 일이잖아. 대체 저런 짓을 왜 할까 싶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겨우 책 다섯 내 본 일개 글쟁이 나부랭이인 내가 책쓰기 협회 대표님의 큰 뜻을 너무 몰라본 것이 아닌가 싶다. 대표님은 아마도 '초고 선포'를 시킴으로써 예비 작가들에게 미리 '마감'의 압박을 느끼게 하고서, 스스로의 약속을 중요시 여기게 하는 법을 알려주며, 그 약속을 지켜냈을 때 셀프 선물을 안김으로써 작가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


응? 아니었을까? 아, 이거 아닌가?

모르겠네. 대체 이런 초고 선포는 왜 하는 걸까.


여하튼 책쓰기 협회의 수강생들이 피땀 흘려가며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이제는 출판사를 향해 투고를 해야 할 시간이다. 천재 작가들의 원고가 만들어진 만큼 투고는 무척이나 신나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돈 천만 원이나 들여 책쓰기 수업을 들었으니,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그런 유명 출판사에 컨택이 되어 베스트셀러를 빵빵 배출해 내겠지. 아무렴 천재 코치에게 배운 천재 작가들의 천재적 원고 아닌가.


그럼 다음 시간에는 책쓰기 협회에서 이루어지는 투고에 대해서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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