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 클래스란 무엇인가. 5
책쓰기 협회에서 일어나는 투고란? (2)
작가 지망생의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이들은 어떤 식으로 투고를 하고 계약을 하는지 궁금했다. 작가 지망생의 시간이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내가 꿈꾸는 바가 이루어지기보다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 확률이 훨씬 높은 것. 그런 불안한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원고 투고', '출판사 투고', '투고 답장', '투고 계약' 등을 찾아보는 일이 늘어났다. 블로그 같은 곳을 보면 가끔 투고에 성공했다는 몇몇 이들의 글이 있었지만, 그 사례가 많지는 않아 보였다.
반면 한 책쓰기 협회에서는 투고만 했다 하면, 짧게는 몇 십분 만에, 길게는 단 두어달 만에 긍정적인 답장을 받고, 계약금을 받고, 투고에 성공했다는 소식들이 올라왔다. 뭐지, 이거. 며칠 동안 블로그에서 찾아본 '투고 성공' 게시물보다, 책쓰기 협회 카페에서 하루에 올라오는 계약 성공 건이 더 많아 보였다. 진짜 책쓰기 협회란 곳은 천만 원이란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성과를 내는 곳인가?
그런데 카페 사람들의 계약 성공담을 보고 있자니 조금 이상했다. 아니, 그건 아주 많이 이상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출판 계약 건이, 특정 출판사에 몰려 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XX북스' 같은 곳이 그랬다. 그곳의 수강생들은 꼭 몇 곳의 특정 출판사와 계약에 성공했고, 총알 계약금을 받아냈다. 정말 투고하고서 단 몇 시간, 며칠 만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가끔 드문드문 다른 출판사의 이름이 섞여있었지만 결국 대부분의 출판 계약은 특정 출판사 몇 군데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보니, 나처럼 의심이 많은 좀팽이들은 당연히 이 책쓰기 협회와 특정 출판사와의 커넥션을 상상하게 될 텐데, 의외로 사람들은 그런 의심을 하지 않는 듯했다. 거 참 너무 이상한 일 아닌가. 사람들은 돈 만원정도하는 점심 식사는 어디에서 먹을지 고민하고 궁리하면서, 게시물 몇 개만 찾아봐도 너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책쓰기 협회에는 돈 천만 원을 갖다 바친다.
물론 이 책쓰기 협회와 특정 출판사의 커넥션이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는 멍청한 내 머리에서 나온 뇌피셜일 뿐, 설마 그럴리야 있겠는가. 아무렴 우리 천재 코치님이 운영하는 곳인데, 그저 이 특정 출판사에서 이 특정 책쓰기 협회의 원고를 신뢰하고 믿음으로 받아주는 거겠지. 그러니 투고 한 시간 만에 계약도 하고, 계약금도 보내주고...
하지만 나의 뇌피셜을 조금 더 움직여 생각해 본다면,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지 않을까. '미XX북스'는 대개 자비출판으로 책을 내지만 아주 가끔은 기획출판도 한다. 책쓰기 협회에서 수강생에게 천만 원 받아서, '미XX북스' 출판사에 "우리 수강생 하나가 투고하거들랑, 원고가 좋다며 얘기 좀 해주고, 계약금 바로 쏴주고, 책 하나 대충 만들어줘라." 하는 식으로...
수강생에게 천만 원을 받아서 계약금 백만 원을 주고 자비출판을 한다면 그건 엄청 많이 남는 장사가 될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빨리빨리 이루어진 계약은, 책쓰기 협회를 홍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게 빨리 책을 내준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해야, 또 빨리 책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나서 거금 천만 원도 쉽게 쓸 수 있는 예비 천재 작가들을 모실 수 있을 테니까.
'미XX북스' 외에도 이 책쓰기 협회와 유독 자주 연결되는 몇몇 출판사들이 있다. 재미난 것은 그중 몇몇 곳은 앞서 말한 '미XX북스'와 같은 곳이며(본체가 같다는 이야기), 또 어떤 곳은 책쓰기 협회의 가족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이기도 하고 (응?), 어떤 곳은 이 책쓰기 협회의 대표가 창립을 한 곳이기도 하다는 거 같다. (응?)
이거 결국, 내 수강생들 '투고'의 과정을 거쳐서 '내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는 일인데, 이거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닌가. 그냥 수강생 중에 글 좀 괜찮은 사람 바로 책 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여러분들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이 책쓰기 협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보여주기' 그 자체에 있는 거니까. 투고하고, 10분 만에 답장이 오고, 한 시간 만에 계약이 되고, 또 그날 바로 계약금을 받아야,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테니까. 이곳에서 계약한 출판사가 자비출판이란 의심을 하지 않도록, 계약금을 일백만 원을 보내주는 게 중요한 거니까. 한 책쓰기 협회에서 특정 출판사와만 계약이 자주 되는 것은 정말 너무너무 이상한 일 같지만, 이미 책 출간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그런 게 눈에 안 들어올 테니까.
최근 인터넷을 하다가 한 투고자가 이 '미XX북스'와 계약을 했다는 게시물을 읽었다. 투고자는 출판사에서 반자비 출판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투고원고에 피드백을 너무 상세하게 주어서 결국 함께 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와 충돌하는 일이 생겼단다. 출판사에서는 책에 '무료 소스 사진'을 넣자고 했단다. 투고자는 그래도 자신의 글에 무료 소스 그림이 들어가는 것은 좀 별로라고 생각하여, 차라리 '일러스트'를 넣어 달라고 요구를 했단다. 그러자 '미XX북스' 출판사에서는 책에 들어갈 '일러스트'는 투고자가 사서 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투고자는 어이없어했고,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단다.
제대로 된 출판사라면 절대 계약한 작가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게 책에 들어갈 일러스트든, 사진이든. 혹은 출간 후에 저자에게 책 구매를 맡기는 일이든. 저자에게 무료 사진을 제안하고, 유료 일러스트를 책에 넣고 싶으면 직접 사 오라는 출판사는 당연히 자비출판사라 봐야 할 것이다. 한 책쓰기 협회에서 집중적으로 계약이 체결되고 있는 출판사의 수준이란 게 이 정도다.
많은 책쓰기 협회에서 이런 식의 출간 계약을 맺는다. 그들은 돈 천만 원을 받고서 기획출판이 아닌 자비출판 계약을 이끌어내면서 그 마저도 자신들이 책쓰기 수업을 잘한 결과라며 홍보로 이용한다.
이쯤 되면 모르겠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일이 아닌가. 책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돈 천만 원을 쓰고야 마는 사람들의 결과물을 생각할 때, 나는 그게 조금 웃기면서도 한숨을 짓게 된다.
요즘은 이런 책쓰기 협회와 뭔가 다르다면서 새로운 형태의 책쓰기 클래스들도 생겨났다. 사람들에게 원고를 받아 출판사에 연결해 주는 한 출판에이전시에서는 '연구생'이란 제도를 만들어서 396만 원 정도를 받고, 어느 곳에서는 자기네들은 천만 원 이하를 받는다며, 990만 원의 가격을 책정하는 식이다. 생각하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어떤 이들은 '프리미엄 자비출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 표현이 너무 재밌다. 프리미엄 자비출판이라니. 뭔가, 우리는 같은 똥이 아니다, 우리는 향기 나는 똥이다, 하는 느낌이랄까.
전에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쓰면서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천만 원짜리 책쓰기 수업에 들어갈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서점에 들러 10만 원어치만 글쓰기와 책쓰기에 관한 책을 사보시라고. 나머지는 소고기 사드시고, 저축하시라고. 소고기가 싫으시다면, 돼지고기나 닭고기, 양고기도 좋고, 쌈도 아주 최고급으로, 쌈장도 슈퍼에서 파는 제일 비싼 걸로 드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도 돈이 아주 많이 남을 테니.
책 하나를 내는 데 돈 천만 원을 들이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며, 그 천만 원을 들인 책쓰기 협회에서는 어쩐지 자꾸만 구린 일들이 일어난다. 책쓰기 수업을 듣는 일이, 책을 내는 데에는 아주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방법의 대부분은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정말, 책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상한 글쓰기/책쓰기 강사들이 쓴 책 말고,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 쓴 글쓰기 책과 출판사 편집자들이 쓴 책쓰기 책을 보면 된다. 믿어도 좋냐고? 나 같은 멍청이가 투고해서 책을 낸 것을 보면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살면서 나보다 멍청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글쎄, 책쓰기와 관련된 원데이 클래스 같은 건 경험 삼아해 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수백만 원의 돈을 들여 그런 곳에 들어간다면, 나는 조심스레 의절을 생각해 볼지도 모르겠다. 수백만 원을 들여 책쓰기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이미 너무 책이 내고 싶어져, 심각한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지금이라도 사이비 종교와 같은 책쓰기 협회에 묶여 책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면, 빠져나오도록. 물론 환불은 어렵겠지만.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고 이런 일련의 일들이 뭐가 문제인가, 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이런 책쓰기 협회가 왜 문제가 되지는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