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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Oct 16. 2023

관념적인 말에 휘둘리지 말기

쓰니까 작가입니까?




여러 꼭지를 들여 '책쓰기 클래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물론 나는 이런 책쓰기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내가 말한 것과 실상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나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만약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수백에서 돈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 가며 책쓰기 수업을 들으려 한다면, 나는 말릴 것이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도시락을 싸가며 말릴 것이다.


처럼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하는 책쓰기 클래스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책을 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요즘은 이렇게 글을 쓰고자, 또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워낙에 많다 보니 학원 형태의 책쓰기 클래스가 아니라, 개인으로 활동하며 책쓰기를 종용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난 듯하다.


인터넷을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빌어먹을 알고리즘이 이런저런 글쓰기와 책쓰기를 종용하는 광고를 보여준다. 6주 만에 작가가 되어보라는 둥, 누구보다 빠르게 작가가 될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는 둥, 책을 내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라는 둥, 책을 내고 월 이천만 원을 벌어보라는 둥. 많은 광고들이 속도전과 함께 물질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떠들어댄다.


그러다가 한 글쓰기 플랫폼에서 글쓰기를 종용하는 슬로건 하나를 보았다. 그 내용은 이랬다.


'작가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니까 작가이다.'


글쎄, 정말 그럴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장과 좋은 글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여럿이 있지만, 필수불가결한 두 가지라면 논리(로직)와 수사(레토릭)이다. 물론 시(詩)와 같이 시적허용이 가능한 문학에서의 비논리는 차치하도록 하고.


그런 점에서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라는 말은 논리로 보나, 수사로 보나 그리 좋은 문장 같지는 않다. 너무나 추상적이고도 관념에 휩싸인 문장 아닌가. 쓰니까 작가라니. 이 말에 따르면 매일 일기를 쓰는 초등학생 아이들도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많은 글쓰기 수업에서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 같은 건 왜 설명하는 거지? 당연히 일기를 쓰는 이들을 보고 우리는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쓰니까 작가라는 말은 너무나도 비논리적이다.


물론 '쓰니까 작가'라는 말에 담긴 함의가 무엇인지는 알겠다. 다만 이런 슬로건은 글쓰기에 대해, 또 작가에 대해 지나치게 거시적인 관점으로 쓰인 듯하다. 쓰니까 작가,라는 말은 결국 '유명한 이가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써서 유명해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한 책쓰기 클래스의 슬로건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전형적이고도 관념적인 글쓰기의 종용이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작가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작가이다, 하는 허울뿐인 말에 휘둘리지 말고, 글쓰기에 대해 또 작가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이 아니라 미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환상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작가라서 쓰는 것인지, 쓰니까 작가인 것인지를 논하기 전에 글을 쓰는 이들은 각자 '작가'라는 단어에 대해 먼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쓰기 슬로건을 믿으며, 그래 나는 쓰니까 작가야, 하는 마음으로 생활을 한다면 곤란하다. 누군가 당신이 하는 일을 물었을 때, "아, 저는 작가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상대방은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럼 어떤 책을 내셨어요?" 하고 물어올 것이다.

거기에 대고 당신은 무어라 말할 것인가. 아, 인터넷에선 분명 쓰니까 작가라고 했는데.

"아, 저는 아직 책을 낸 것은 아니지만, 쓰니까 작가입니다." 하면서 뒤늦게 얼굴이 붉어질 것인가. 현실세계에서 누군가 '작가'라고 하면 대부분의 이들은 '책'을 떠올리곤 한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러니 쓰니까 작가라는 말은 현실에 벗어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글을 쓰는 당신은 작가가 아니며, 작가 지망생일 뿐이다. 물론 이런 슬로건이 아주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쓰니까 작가'라는 말은 글쓰기에 대해 아주 조금의 '용기'를 부여해 줄지도 모른다. 가령 피드백이 두려워 세상에 오랜 시간 글을 공개하지 못한 이가 있다면, '쓰니까 작가'라는 말을 믿으며 스스로 용기를 낼 수는 있을 것이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글쓰기란 '내 글 구려병'과 '작가병' 사이를 수시로 오가는 슈퍼발란스 게임이니까. 내 글에 아주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작가라는 마인드를 가지며 자신감을 끌어올릴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인드 역시 혼자 간직하는 편이 낫다. 나는 쓰는 사람이며 고로 작가이다 하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 자의식과잉에 빠지기 십상일 테니까.


많은 책쓰기 강사들이 글쓰기를 종용한다. 자신에게 글을 배우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고 광고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라도 책을 낼 수 있을 확률보다 평생 작가 지망생의 딱지를 떼지 못할 확률이 높다. 나는 쓰고 있으니까 작가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글쓰기를 냉정하게 바라볼 때 '작가'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라서 쓰는 것인가, 쓰니까 작가인 것인가. 쓰니까 작가라는 말은 두 번 생각해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작가들의 세계에선 '마감이 글을 완성시켜 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작가라서 쓴다는 내용이 좀 더 현실적인 문장 아닐까?


'작가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니까 작가이다.'라는 문장에서 '작가' 대신에 차라리 '나'를 넣어본다면 어떨까.


'나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니까 내가 되었다.'


글쓰기란 작가로 불리든 말든, 자신을 알아가며 쓰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작가 지망생 각자가 생각하는 '작가'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가'란 남들이 그렇게 불러줄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었다. 이건 스스로 작가라는 마인드를 가지며 용기를 얻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호랑이가 아무리 자신을 사자라고 떠들어봐야, 사람들이 호랑이라고 불러주면, 호랑이가 되듯이. 진짜 작가라면 스스로가 부정하여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줄 것이다. 그전까지는 관념적인 응원의 말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쓰니까 작가라는 말은 몹시 달콤하고 희망찬 말처럼 보이지만, 현실보다는 환상에 가깝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나는 자꾸만 환상 속으로 빠지려 드는 이의 등짝을 붙잡고서는 현실 세계로 돌려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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