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Oct 16. 2023

그런 걸 왜 가르치는 거지?

작가 지망생에게 지망생 되는 법 가르치기 아닌가?



몇 년 전 한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 글쓰기 코치의 유료 커리큘럼에 '브런치 작가 되는 법' 따위가 있는 것을 보고, 왜 저런 것을 돈 주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게. 이건 마치, 작가 지망생에게 '작가 지망생'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대체 그런 걸 왜 가르치는 거지? 그런 글쓰기 코치들은 작가 지망생도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고액의 책쓰기 수업은 아니더라도,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단기 글쓰기 수업을 들을 수도 있을 테고. 글쓰기란 대체로 외롭고 고단한 일이니까, 때로는 글벗이 필요할 수도 있을 테지. 그러니 글쓰기 수업이 그런 목마름을 해소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사랑하는 이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그런 그가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글쓰기 수업을 들으려 한다면 정말 제대로 된 글쓰기 강사의 수업을 들으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커리큘럼에 '브런치 작가가 되는 법' 따위를 넣어둔 강사를 만난다면 무조건 도망치라고 알려줄 것이다. 그건 정말 작가 지망생에게, 작가 지망생이 되는 법을 가르치려 드는 것 같으니까. 세상에 가르칠 게 얼마나 없으면 그런 걸 가르치는 걸까.


몇 년 전 다른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커리큘럼에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넣는 강사는 많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이 눈에 띈다. 나에게 배우면 무조건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떠드는 이부터, 심지어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된 걸 가리켜 '등단'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보았다. 하아, 정말 말세야. 말세. 대체 브런치가 뭔데?


물론 개개인이 나는 이렇게 했더니 브런치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하는 팁을 공유할 수는 있겠지. 실제 브런치나 블로그에서 그런 글들은 수두룩하기도 하고. 그런데 돈을 받고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가르친다고? 또 그걸 돈을 내고 배운다고? 아니, 대체 왜? 왜 그러세요들 여러분?

그런 수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브런치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 알까? 이건 마치, 출판사 편집자도 아닌 사람들이 '편집자를 사로잡는 글을 쓰는 법' 따위의 책을 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출간을 여럿 이룬 작가들은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제목의 책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브런치에서 사람들을 심사하고, 글쓰기 권한을 부여하던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가르친다면, 아 저런 기준으로 사람들을 뽑았었군 하고서 수긍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자기가 왜 뽑혔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돈을 받고서,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아니, 브런치 심사 기준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 걸까?


내가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쓰게 된 데에는, 글쓰기 연습하기 좋다는 한 출판사 편집자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UI도 깔끔하고, 나름대로 맞춤법 검사기도 돌아가고, 무엇보다 매년 책출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공모전도 열린다. 이러한 장점들이 있다고 하여도, 이곳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작가가 아닌 작가 지망생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 브런치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책을 내고서 꾸준히 글을 쓰는 진짜 '작가'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아닐까.


브런치에서 자신들의 플랫폼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을 심사하고, 글쓰기에 제약을 두며, 그 허들을 통과한 사람에게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부여하자, 오히려 '작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의식과잉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생겨났는가 하면,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친목질을 일삼는 이들도 보인다. 타인의 글은 읽지 않으며, 자신의 글만 읽히길 바라면서 마구잡이로 '좋아요'를 누르고는 구독 호객행위를 하는 빌런들도 많다.


그러니 때로 브런치 같은 글쓰기 플랫폼은 작가 지망생에게 오히려 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이가 진짜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이라면, 글을 쓸 수 있는 매체가 어디든 개의치 말라고 할 것이다. 브런치처럼 글쓰기 권한을 두고서 심사하는 곳에서 내 글을 뽑아주지 않는다면, 사사로이 브런치에 매달릴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글을 쓰면 될 일 아닌가. 브런치는 그저 글쓰기 연습하기 좋은 플랫폼이지, 이곳에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진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 나는 어떻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냐고. 앞서 말했듯 출판 편집자의 권유로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떨어졌다. 그다음 날 같은 글로 재신청했더니 또 떨어졌다. 그다음 날 같은 글로 재신청하였더니 그때는 붙었다. 재신청하는 과정에서 고친 게 있다면 아마도 단어 몇 개 수정했던 것 같고.

지금도 나는 브런치에서 무얼 보고 내 글을 뽑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사흘 내내 신청 버튼을 눌러서 담당자가 귀찮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좋은 글을 읽어봐야 하듯이, 글쓰기 권한에 제약이 있는 플랫폼에 글을 쓰고 싶다면 그곳에서 쓰인 글을 읽어보면 될 일이다. 괜한 돈을 들여가며 '브런치 작가 되는 법' 같은 이상한 수업 듣지 말고.

이런 수업을 돈 받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걸 잘난 척하려고 가르치려 드는군, 가르칠 게 얼마나 없으면..." 하고 무시해도 좋다.


 

이전 14화 관념적인 말에 휘둘리지 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