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1호는 요즘 아이브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뉴진스는 어때, 하고 물어보면 뉴진스도 좋지만 자기 취향에는 아이브가 더 낫더라는 이야기. 그래도 초딩 5년 주제에 벌써 취향을 챙기고 좋네.
그러고 보면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음악 시장이 급변하여 다소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주로 트로트와 발라드로 양분되었던 가요톱텐 차트에서 댄스 음악이 점유율을 높인 것이다.
일례로 학교 장기자랑에서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나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던 아이들은 학년 하나가 올라가자, 노래 대신 현진영의 노래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뉴키즈온더블럭(New Kids On The Block>의 내한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극으로 기억되고, 무엇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지. 엄마 손을 잡고서 여의도 사학연금건물 지하에 있던 레코드숍에서 처음으로 내가 고른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철이와 미애' 1집 앨범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번째 라이브 공연 앨범이었다.
그때 나는 트로트와 발라드라 불리는 음악들이 조금은 구닥다리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고작 초딩 6년, 그러니까 지금 내 아이 정도의 나이였을 때 그랬다.
비록 어린 시절에는 좋아하지 않았어도 시간이 지나 뒤늦게 빠져서 찾아 듣게 되는 곡도 있다. 내겐 박정수가 부른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이 그런 곡이다. 초등학생 시절 내게 이 곡은 그저 조금 히트한 곡이었을 뿐이었다. 가수를 떠올려봐도 어쩐지 비슷한 시기에 <당신>이란 곡을 히트시켰던 중절모의 가수 김정수가 같이 떠오르는 정도였달까.
이 곡이 나오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초등학생에서 성인이 되어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흐르는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을 듣고서, 곡에 쓰인 노랫말이 정말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박정수는 그 아름다운 노랫말을 못지않게 아름다운 미성으로 무척이나 잘 전달하고 있었고.
한때 사람들마다 조금씩 빈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다가가고 싶어서,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 주변을 서성이며 우물쭈물하다가 차마 빈틈을 찾지 못해 그대로 주저앉아야만 했던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때 그가 나에게 아주 조그마한 빈틈을 내어 주었더라면.
그대의 빈틈이 있었다면 사랑했을 거라고 노래하는 박정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렇게 빈틈 찾기에 골몰하던 한 때를 떠올렸다.
곡은 포크 싱어송라이터인 백영규가 썼다. 백영규는 '소리창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작품집을 내었으나 큰 빛을 보지 못했다. 백영규는 '소리창조 2집'에서 노래를 할 사람을 새로 구했고, 그렇게 가요계에 등장한 게 박정수였다. 그래서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은 소리창조의 2집이면서, 박정수의 1집으로 불리는 묘한 앨범의 곡이 되었다.
이 곡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시적인 노랫말이다. 실제 1989년 경향신문 시 부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는 조기원이 가사를 썼다. 어디선가 본 글에 따르면 당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써주었던 연애시가 노래가 된 케이스란다.
'그대 들려줄 한 줄 시도 못쓰고 기억 속으로 차가운 안개비, 안개비만 내린다' 하는 노랫말에서 가사를 쓴 이가 시인이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이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이렇게나 아름다운 몇 줄의 노랫말을 남겨주었다.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은 훗날 곡을 쓴 백영규가 다시 부르기도 했다. 박정수와는 또 다른 매력을 들려준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왜 이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때 내 귀와 마음에는 너무나 큰 빈틈이 있었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