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비와 음악 07화

나도 몰라

선우정아 - 생애

by 이경



천둥번개를 동반한 세찬 비바람 소리 사이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새어 나오듯 건반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조금은 체념한듯한 목소리가 노래한다.


'나도 몰라'


선우정아의 정규 3집 [Serenade]에 실린, <생애(Life)>라는 곡의 도입부 장면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음반을 산 이후로 사십 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CD를 사모으고 있다. 다만 집에 CD플레이어는 있어도 좀처럼 사용하는 일은 없고, 출퇴근 시간에는 주로 스마트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 결국 CD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카오디오를 통한 운전할 때가 거의 전부다.


그런 이유로 자동차 보조석 서랍에는 늘 예닐곱에서 열 장 가까운 CD가 들어있는데, 1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빼지 않았던 음반이 두 장 있다. 그만큼 수시로 또 자주 들었다는 이야기인데, 하나는 <It's a Very Deep Sea>가 실린 스타일 카운슬(Style Council)의 베스트 앨범이고, 나머지 한 장이 바로 이 선우정아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스타일 카운슬의 <It's a Very Deep Sea>는 소위 말하는 '영감'이 필요하다 싶을 때마다 꺼내 듣는 곡이다.


선우정아 3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라면 아무래도 <도망가자>이겠지만, 나에게는 <생애>가 최고의 트랙이다. <도망가자>가 100점짜리 트랙이라면, <생애>는 120점짜리 곡이랄까.

<생애>는 앨범에서 열세 번째로 자리 잡고 있는 트랙인데, CD를 넣고는 아예 <생애>만 돌려 들었던 날도 적지 않다. 1년이 넘도록 차에서 이 곡을 틀다 보니 나중에는 차에 같이 앉아 있던 아들 녀석이 또 이 노래를 듣는 거냐며 잔소리를 날리기도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흘러나오는 곡을 따라 부르곤 한다.


'나도 몰라'


<생애>는 곡이면 곡, 가사면 가사, 노래면 노래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훌륭한 트랙이다. 특히나 내가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청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소리들을 시각화하여 들려주는 데에 있다. 도입부의 천둥번개와 빗소리가 그렇고, '파도'를 노래할 때에는 악기들을 꽉 붙잡아두었다가 풀어줌으로써, 정말 소리들을 이용해 '파도'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보여준다. '가슴속'을 노래할 때는 드럼의 쿵쿵쿵쿵 하는 소리만 들려주면서 마치 심장이 뛰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 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생애>를 들을 때면 아주 잘 만들어진 뮤지컬 넘버를 듣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우정아가 노래하는, 나도 모르겠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곡의 제목 그대로 '생애' 삶 그 자체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선우정아는 <생애>를 통해 삶을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항해로 표현하고 있다. 그 항해에는 매서운 바람과, 무섭게 치는 파도가 있으며, 나에게 주어진 나침반은 고장이 나버렸다. 하지만 이 여행을 결코 멈출 수는 없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런 역경을 이겨내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우정아는 이 과정에서 '시간의 폭우'라는 비유를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이렇게 폭우와도 같은 시간들을 보내기도 하니까. 하지만, 시간은 흐르기만 할 뿐 결코 붙잡아 둘 수 없다. 시간과 관련하여 어느 유명인이 남겼다는 말이 떠오른다.


'시간은 지나고 나야만 이해가 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다...'


시간의 폭우에 흠뻑 젖더라도 우리는 바람이 멈추고, 파도가 가라앉으며, 또다시 뜨거운 태양이 뜨길 기다리며 이 항해를 이어가는 것 말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역경을 훗날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선우정아는 2019년 12월 세 번째 정규앨범 [Serenade]를 발표하기 전에 정규 앨범에 수록될 곡들을 EP로 나누어 발표했다. <생애>가 수록된 EP는 그해 8월에 발매가 되었다.


2019년은 내게 알 수 없는 인생의 길이 펼쳐진 해이기도 했다. 2019년 7월 나는 소설 원고를 한 출판사와 계약하게 되었고, 소설은 11월 1일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 용케도 매년 한 종의 책을 내면서 살고 있다. 이제는 살면서 평생 한번 마주칠 일이 있을까 싶은 분들이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처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작가님'이라고 불러주기도 한다.


2019년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삶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첫 책을 내기 위해서 백 곳이 넘는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계약이 엎어지기도 했다. 이제 그만 포기할까 싶을 때면, 이상하게 한 줄기의 빛이 내려와서 희망고문을 일삼았다.

글이 좋으니 반드시 책을 내고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며, 포기하지 말라던 한 출판사 편집자의 말이 나에게는 이 길의 나침반이 되어준 셈이다. 글을 쓰고, 책을 준비하던 작가 지망생의 시절이 나에게는 언제 그칠지 모를 시간의 폭우를 견뎌내야만 했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맞물려 <생애>를 듣다 보니, 나에게는 이게 꼭 눈물버튼과도 같은 곡이 되어버렸다. 나도 몰라. 삶은 정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 방향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조차 지금 당장에는 알 수 없다. 어느 정도의 시간, 혹은 아주 멀리까지 시간이 지나서야만 우리는 오늘의 일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나도 몰라' 하고서 시작하는 선우정아의 <생애>는 '나도 몰라' 하고서 끝을 맺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르고, 모른다고 노래하는 이 수미상관의 구조가 나는 맘에 든다. 나도 몰라, 나도 몰라.


모르고 모르는 것 투성이에서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한 가지라면, 삶이란 어디로 흐를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선우정아-생애.jpg


나도 몰라

어디로 가는지

매서운 바람 아직도 부네

기다렸어 그치기를

부질없이 난 휘청이네

무섭게 치는 파도 난 지쳐가는데

가슴속에 활짝 핀 꽃 때문에

여행은 계속된다

시간의 폭우를 뚫고

고장 난 나침반이 가진 전부인

철없는 항해


나도 몰라 어디가 아픈지

손대지 마 다칠지 몰라

날카로운 가시들은

언제쯤에야 날개가 되는지

생각해

봄은 온다

움직여

기약하며

날개를 펴


여행은 계속된다

시간의 폭우를 뚫고

고장 난 나침반이 가진 전부인

철없는 항해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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