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비와 음악 09화

그건 어쩌면 가난한 사랑의 합리화가 아니었을까

다섯손가락 -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by 이경



비 내리는 수요일에 쓰는 글이다.


특정 계절에 비를 노래하는 곡은 종종 있다. 당장 제목에 계절과 비가 들어간 곡을 꼽아보라고 해도 박인수의 <봄비>, 장범준의 <추적이는 여름 비가 되어>,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 김종서의 <겨울비> 등이 떠오른다. 임현정은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통해 아예 두 계절의 비를 노래하기도 했다. 각 계절에 내리는 비마다 느껴지는 감성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그래서인지 일 년 네 번으로 큼지막하게 나뉘는 계절과 달리, 일 년에 몇 번이나 반복되는 특정 요일에 비를 노래한 곡은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다. 딱 하나, 밴드 다섯손가락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제외하고서.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밴드 다섯손가락의 데뷔 앨범에 실린 곡으로 이두헌이 작사와 작곡, 노래까지 도맡아 불렀다.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연주와 서정적인 가사, 다소 우울한 톤의 보컬까지. 그야말로 무엇 하나 빠지지 않은 훌륭한 곡이다. 곡은 1985년에 발표되어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어 40년을 향해간다. 명곡은 세월의 흐름에도 시들지 않는 법이니, 여전히 비 내리는 수요일이 오면 귓가에선 이두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곡의 화자는 비 내리는 수요일, 사랑하는 여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려 한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한 송이를 선물해야 할지, 한 다발을 선물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 것이다. 한 송이는 어쩐지 외로워 보일 것만 같고, 한 다발은 무거워 보일 것 같다. 곡 속의 화자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사랑하는 그녀에게 안겨준 꽃은 한 송이였을까, 한 다발이었을까.


오래전 이곡을 들을 때면 곡 속의 화자가 가난한 자신의 사랑을 두고서 합리화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선물 받는 입장에서는 아무렴 한 송이보다는 한 다발이 낫지 않았을까. 꽃 한 다발이 무거워봐야 뭐 얼마나 무겁겠어. 장미꽃 100송이 정도가 되면, 그때야 비로소 무겁다고 할 수 있으려나. 한 다발 정도야 뭐.


다섯손가락이 결성됐던 당시 밴드의 멤버들은 모두 대학생의 신분이었다고 한다. 이두헌 역시 이십 대 초중반 주머니가 가벼운 시절에 쓴 곡이었을 테니, 곡 속의 화자는 어쩌면 한 다발의 꽃을 선물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던 거다.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면 사실은 꽃 한 송이 정도만을 겨우 선물해 줄 수 있을 뿐이었지만, 자신의 가난한 사랑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한 다발의 꽃에 억지로라도 무거움을 연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 사실 너에게 장미 한 다발을 선물하고 싶지만, 나 돈 없어, 무리야, 미안해, 어차피 한 다발은 무거울 거잖아, 하는.


젊은 시절 이곡을 들을 때면 정말 이런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젊을 때는 정말 그러했으니까. 한 때는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될 수 있으면 비싼 것들을 선물하고 싶었고, 비싼 것일수록 내 마음이 크게 깃드는 게 아닐까 싶었으므로. 마음으로는 무언가 잔뜩 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을 때 사람은 괴로워하며, 이런 괴로움은 대개 젊은 시절에 발현하니까. 뭐, 그렇다고 지금 내 주머니가 엄청나게 두둑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언젠가 한 여성이 꽃 선물이 좋은 이유를 말했던 게 떠오른다. 그 여성에게 꽃의 양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한 송이이든, 한 다발이든. 그녀가 말한 꽃선물이 좋은 이유는, 상대방이 꽃을 사기 위해 쭈뼛거리는 마음을 이겨내고 꽃집에 들러, 꽃을 고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게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이라나. 생각해 보니 그렇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많은 남성들은 꽃집에 들르는 것을 어려워한다. 꽃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꽃집에 들러 꽃을 고르고 있으면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다.


그녀의 말을 접하고서야 뒤늦게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속의 화자는 어쩌면 가난한 사랑의 합리화 따위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장미 한 송이와 한 다발 사이에서 고민했던 게 아닐까 싶어 진다. 그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 선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충만한 사람이었을 테니까.


곡이 발표되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원곡자인 이두헌은 한 인터뷰 자리에서 곡 제목에 '수요일'이 들어간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차이고서, 곡을 만들었던 날이 '수요일'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곡이 만들어진 과정은 조금 심심할진 몰라도, 어느 해 나는 비 오는 수요일에 용기를 내어 장미꽃 한 송이를 샀던 적이 있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 없었다면 행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을 테다. 실제로 80년대 중반 곡이 히트하면서 전국 꽃집에서 장미꽃이 많이 팔리게 되었고, 화훼협회에서는 원곡자인 이두헌에게 감사패를 전하기도 했단다.


가요를 재즈로 편곡하여 발표했던 누보두(Nouveau Deux) 앨범에서 조용진(알리)이 <I Think About You>라는 제목으로 영어 개사하여 부르기도 했다.



다섯손가락.jpg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그녀에게 안겨 주고파

흰옷을 입은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그녀에게 주고 싶네


슬퍼 보이는 오늘밤에는 아름다운 꿈을 주고파

깊은 잠 못 이루던 내 마음을 그녀에게 주고 싶네


한송이는 어떨까 왠지 외로워 보이겠지

한 다발은 어떨까 왠지 무거워 보일 거야


시린 그대 눈물 씻어주고픈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슬픈 영화에서처럼 비 내리는 거리에서

무거운 코트깃을 올려 세우며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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