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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 Jun 17. 2024

첫 겨울방학 그리고 방콕. 항공권.

일단 항공권을 알아봤다.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르겠지만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 여행 갈 도시를 정한 후에

바로 항공권을 예매한다.

이제는 예전만큼 최저가 검색을

치열하게 하지는 않지만

아직 공홈에서 정가 척 주고 사지는 않는다 못한다.

물론 항공사 공홈에서 구매하는 게

비싸게 주고 사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나도 스사사 기웃거리고

비싼 연회비 내가면서

현대카드 퍼플 10년쯤 썼고

동반자 항공권을 써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열심히, 부지런히 해외여행을 다닌 시기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망하셨지, 인생을 즐기다}가

맞는다는 걸 인지하고 그만두었다.

그만두었다기보다 애 낳고 나서

저런 혜택을 챙겨 먹기가 힘들어졌고

코로나가 터졌고

퍼플카드의 혜택도 사라졌고

오픈마일리지형으로 바뀌면서

내 퍼플카드도 내 소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https://youtu.be/WQlo9i5UaFo?si=F0tS6rYcXju-DePF


코로나 직전에 미서부 여행을 계획하면서

뉴포트에 펠리칸힐을 예매했을 때

간지 나게 비즈니스를 타고 가자고 하면서

우영이 오빠 귀찮게 해 가면서

롯데카드의 플라이어마일을 모았는데

결국 코로나 때문에 다 취소해 버리는 바람에

나의 플라이어마일이 얼마나 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다시 카드사 혜택 공부해서 챙기기에

내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자리가 없더라.

그런 걸 공부해야 하냐고?

응, 난 이런 거 공부해야 하고

이해가 여전히 잘 안 되니까

뒤돌아서면 까먹어져.


여하튼 모닝캄이라서 (대단한 거 아님)

해외 나갈 때 짐가방 프라이어리티로 붙여주세요

하는 정도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써먹은 적이

거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이번에 마일리지로 승급을 한번 해볼까 했다.

마일리지로 승급을 하려면

230만 원을 주고 항공권을 산 다음에

85,000 마일리지를 써야 했다.


이럴 땐 우영이 오빠한테 확인을 받아야 한다.


[오후 6:07] 갈 때 35000 , 올 때 50000

[오후 6:09] 저거 해요?

[우영오빠] [오후 6:13] 승급 말고 보너스 항공권은 없지?

[오후 6:15] 있다

[오후 6:16] 175,000 마일 + 357,800 원

[우영오빠] [오후 6:30] 200만 원 쓰고 마일 쓰는 것보다는 저게 낫지 않을까?


솔직히 방콕을 가는데

이 마일리지를 쓰는 게 아까웠다.

올여름에 안식휴가가 돌아오면

그때는 유럽이나 미국을 갈 참이었는데

더 멀리 갈 때 사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근데 그런 식으로 아끼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을 못 써먹었다는 생각이 났다.


아끼다 똥 되겠지.


그리고 우영이 오빠가 더 낫다고 하면 더 나은 거다.

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마일리지로 보너스 항공권을 구매했다.

프레스티지석으로.

이제 나에게는 142,253마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나와 우리애가 대한항공 프레스티지석을 타고

방콕을 간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니겠는가.




미리 말하자면 내가 상상했던 프레스티지석은

프레스티지석이 아니라 퍼스트였다는 사실을

비행기를 타고서야 알았다.

막상 기대했던 것보다 시시해서

너무 실망했다는 건 비밀로 하기로 해.


식사 메뉴가 대단할 줄 알았으나

3개밖에 없었고 생각보다 좁았고

MAUNA LOA 땅콩을 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각 자리가 180도로 젖혀지게 하기 위하여

서로 자리가 완벽하게 분리가 된다는 사실이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애가 잔다고

내 허벅지를 내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애 편하게 자라고

나는 불편하게 앉아있고

애는 편하게 누우라고

내 허벅지를 내어주고 싶어도

내어줄 수가 없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물컵을 올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과,

레몬맛 탄산수가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면 레몬 슬라이스를 드릴까요?

라는 질문을 도로 들었다는 사실이다.




난 레몬맛 탄산수가 마시고 싶지 않았고

사실은 레몬 슬라이스가 들어간

생수를 마시고 싶었다.

그게 내 취향이니까.

그런데 레몬 슬라이스가 있냐고 물어보는 게

촌스러운 느낌이어서 말 못 했던 거였는데.


여하튼 내가 타고 싶었던 건

프레스티지석이 아니라

퍼스트 석이었다는 사실을 배웠다는 점,

비성수기에 효율적으로 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드디어 마일리지를 썼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꽤나 뿌듯했다.


항공권 결제부터 순항하는 기분이 들었다.

돈을 쓰고도 돈을 안 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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