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항공권을 알아봤다.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르겠지만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 여행 갈 도시를 정한 후에
바로 항공권을 예매한다.
이제는 예전만큼 최저가 검색을
치열하게 하지는 않지만
아직 공홈에서 정가 척 주고 사지는 않는다 못한다.
물론 항공사 공홈에서 구매하는 게
비싸게 주고 사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나도 스사사 기웃거리고
비싼 연회비 내가면서
현대카드 퍼플 10년쯤 썼고
동반자 항공권을 써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열심히, 부지런히 해외여행을 다닌 시기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망하셨지, 인생을 즐기다}가
맞는다는 걸 인지하고 그만두었다.
그만두었다기보다 애 낳고 나서
저런 혜택을 챙겨 먹기가 힘들어졌고
코로나가 터졌고
퍼플카드의 혜택도 사라졌고
오픈마일리지형으로 바뀌면서
내 퍼플카드도 내 소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https://youtu.be/WQlo9i5UaFo?si=F0tS6rYcXju-DePF
코로나 직전에 미서부 여행을 계획하면서
뉴포트에 펠리칸힐을 예매했을 때
간지 나게 비즈니스를 타고 가자고 하면서
우영이 오빠 귀찮게 해 가면서
롯데카드의 플라이어마일을 모았는데
결국 코로나 때문에 다 취소해 버리는 바람에
나의 플라이어마일이 얼마나 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다시 카드사 혜택 공부해서 챙기기에
내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자리가 없더라.
그런 걸 공부해야 하냐고?
응, 난 이런 거 공부해야 하고
이해가 여전히 잘 안 되니까
뒤돌아서면 까먹어져.
여하튼 모닝캄이라서 (대단한 거 아님)
해외 나갈 때 짐가방 프라이어리티로 붙여주세요
하는 정도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써먹은 적이
거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이번에 마일리지로 승급을 한번 해볼까 했다.
마일리지로 승급을 하려면
230만 원을 주고 항공권을 산 다음에
85,000 마일리지를 써야 했다.
이럴 땐 우영이 오빠한테 확인을 받아야 한다.
[오후 6:07] 갈 때 35000 , 올 때 50000
[오후 6:09] 저거 해요?
[우영오빠] [오후 6:13] 승급 말고 보너스 항공권은 없지?
[오후 6:15] 있다
[오후 6:16] 175,000 마일 + 357,800 원
[우영오빠] [오후 6:30] 200만 원 쓰고 마일 쓰는 것보다는 저게 낫지 않을까?
솔직히 방콕을 가는데
이 마일리지를 쓰는 게 아까웠다.
올여름에 안식휴가가 돌아오면
그때는 유럽이나 미국을 갈 참이었는데
더 멀리 갈 때 사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근데 그런 식으로 아끼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을 못 써먹었다는 생각이 났다.
아끼다 똥 되겠지.
그리고 우영이 오빠가 더 낫다고 하면 더 나은 거다.
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마일리지로 보너스 항공권을 구매했다.
프레스티지석으로.
이제 나에게는 142,253마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나와 우리애가 대한항공 프레스티지석을 타고
방콕을 간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니겠는가.
미리 말하자면 내가 상상했던 프레스티지석은
프레스티지석이 아니라 퍼스트였다는 사실을
비행기를 타고서야 알았다.
막상 기대했던 것보다 시시해서
너무 실망했다는 건 비밀로 하기로 해.
식사 메뉴가 대단할 줄 알았으나
3개밖에 없었고 생각보다 좁았고
MAUNA LOA 땅콩을 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각 자리가 180도로 젖혀지게 하기 위하여
서로 자리가 완벽하게 분리가 된다는 사실이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애가 잔다고
내 허벅지를 내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애 편하게 자라고
나는 불편하게 앉아있고
애는 편하게 누우라고
내 허벅지를 내어주고 싶어도
내어줄 수가 없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물컵을 올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과,
레몬맛 탄산수가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면 레몬 슬라이스를 드릴까요?
라는 질문을 도로 들었다는 사실이다.
난 레몬맛 탄산수가 마시고 싶지 않았고
사실은 레몬 슬라이스가 들어간
생수를 마시고 싶었다.
그게 내 취향이니까.
그런데 레몬 슬라이스가 있냐고 물어보는 게
촌스러운 느낌이어서 말 못 했던 거였는데.
여하튼 내가 타고 싶었던 건
프레스티지석이 아니라
퍼스트 석이었다는 사실을 배웠다는 점,
비성수기에 효율적으로 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드디어 마일리지를 썼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꽤나 뿌듯했다.
항공권 결제부터 순항하는 기분이 들었다.
돈을 쓰고도 돈을 안 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