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의 조식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밥 먹을 때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꽤 싫어하는 사람이라
맛집도 잘 안 다니는 편인데
조식도 마찬가지다.
조식을 줄 서서 먹는 일은
용납할 수 없지.
암.
그래서 우리는 늘 오픈런을 한다.
특히 일찍 조식을 먹으러 가면
중국인들과 한국인들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드는데
여행지에 와서
이방인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조식 옵션을 늘 제외했었다.
현지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조식을 먹어야 하냐는 마음이 컸지만
아이와 함께 다니는 여행에는
조식을 꼭 추가한다.
한 끼라도 편하게 먹이면 좋으니까.
샹그릴라의 조식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망고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망고 하나에
10,000원 돈인 것을 생각하면
5개만 먹어도
50,000원을 버는 셈이다.
아무런 계산을 하지 않고
망고를 먹고 또 먹고 또 먹는 기쁨,
동남아에 여행 왔을 때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식을 먹고
샹그릴라에서 제공하는
배를 타고
아이콘시암에 가는 시간을
확인해 봤다.
너무 일찍 조식을 먹어서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방에 올라와서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아이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하는 우리애,
공부 학원 다니느라
셔틀도 안되고 공부도 아닌
미술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걸
늘 아쉬워한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나
어디 멀리 가야 할 때에는
꼭 공책과 색연필을 챙긴다.
물론 핸드폰을 쥐여주면
아이들은 조용하고 평화가 오고
부모도 편하지만
어쩐지 독약을
허락해 주는 것 같아서
아직은 내키지 않는다.
배를 타러 내려왔다가
물고기들이
점프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신기하고 신비로웠는데
계속 보다 보니
기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써니맘한테
"너도 이 물고기들 봤어?"
라고 물어봤더니
"어어 ㅎㅎㅎ"
라는 답이 왔다.
얘네는 왜 이렇게
점프를 하는 걸까?
배를 타고
아이콘시암에 도착했다.
말하자면
아주아주 큰 쇼핑몰이었다.
입구가 아주 화려했다.
아이콘시암에 들어가니
명품 매장들이 있었고
마트가 있었고
식당이 있었다.
푸드코트를
구경하는 재미도 놓칠 수 없기에
한참을 구경하다가
추억의 나라야 매장도 발견했다.
아,
이대 가는 길에
나라야 매장이 있었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스타벅스 1호점도 기억이 나고
크리스피 크림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크리스피 크림 도넛
12개가 들어있는 박스를
나눠줬던 기억도 난다.
내가 처음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먹어봤던 건 2003년도였다.
그때 교환학생으로 UCLA에 갔다가
이민 간 친구를 만났는데
한국에는 없는
기가 막힌 도넛이 있다면서
사줬었다.
얘네 집에 가서
최적의 시간인
6초였던가 8초였던가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말랑하고 따끈한
크리스피 도넛을 한입
베어먹었을 때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20대는
우울하고
암울하고
힘들고
슬펐기도 했지만
화려하고
신나고
모험이
가득했었지.
아이콘시암은
아주 화려하고
아주 큰 쇼핑몰이지만
막상 내가 뭘 봐야 할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명품 쇼핑을 할 일도 아니었고
애를 데리고 쇼핑을 하는 것도
버거울 것 같았다.
바로 써니맘이 알려준
뷰가 기가 막히다는
스타벅스로 올라갔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로 했고
아이는 아이스초코를 마시기로 했다.
방콕 물가로 치면
스타벅스는 꽤 비싼 편이어서
주로 관광객들이 많았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테라스로 나가봤다.
오전이었지만
숨이 턱 막히는 더위를 마주해야 했고
아이는 땀이 줄줄 내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나 무서워"
우리애는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 같다는
심증이 있었는데
아마 맞는 것 같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늘 무서워한다.
그리고 하나 더 알고 있는 사실은
커터 칼의 칼날을 빼고
도로 내리지 않으면
무서워한다는 사실이다.
"엄마, 칼날 어서 집어넣어"
"왜?"
"무서워"
아마도 예전에 웃으면서
우리 조카가 커터 칼의 칼날을
손으로 잡고 피가 줄줄 났던 기억 이후로
커터 칼을 쓰고
도로 집어넣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가 생긴 것 같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배시간 맞춰서
배 타는 곳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오후가 되니
한국 사람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키도 크고 잘 생긴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한국 남자 둘이 앉아있는 모습이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은근히 보이니까
적극적으로 손을 잡지 못하고
손끝을 티가 안 나게 겹쳐서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우리 서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라고 외치는 것 같았고
아직 어리니까
혹시나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서로를 느끼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안타까우면서도
그래도 큰 용기를 내서 왔을 테니
대범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내가 이해해야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쉽지 않은 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배를 다시 타고 돌아와
써니투어맵에 있던 식당을 찾아갔다.
깔끔한 타이 식당이고
호텔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었다.
전날 먹은 오리 국숫집 라인에 있어서
찾아가기도 쉬웠다.
아이랑 둘이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또 시키고 싶은 만큼 잔뜩 시켰다.
애도 배가 고팠고
나도 배가 고팠다.
처음에는 우리 테이블 외에
프랑스인 10명쯤 있는 테이블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더니
만석이 되었다.
음식을 시키고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음식이 나오지 않자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식이 나왔는데
우리보다 한참 늦게 들어온
백인들 테이블에 먼저 서빙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ABC를 배우기 시작하고 나서
영어는 삶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언어가 되었지만
"너 영어 잘해?"
라고 물어보면
늘 당당하게
"아니"
라고 대답하게 된다.
자신이 없으니까,
객관적으로 잘하는 건 아니니까.
늘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늘 새해 다짐에는
"영어 공부"가
디폴트로 있었다.
그런 나도
'어? 이 정도면
영어 잘하는 거 아니야?'
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상황들이 살면서
손에 꼽을 만큼 가끔 있는데
그건 바로 영어로
화를 내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클레임을 하는 경우.
가만히 있을 수도 있었지만
모든 손님 중에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 테이블 음식만
늦게 나왔다는 사실이
꽤 불편했고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지 모르겠는 직원에게
영어로
"저 손님이 우리보다 늦게 왔다,
우리 음식 기다린 지 20분이 지났다,
왜 저 테이블에 먼저 서빙을 하냐"
라며 차분하게 하지만
'나 조옷나 화났다'
라는 느낌을 팍팍 주면서 말했다.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내 우리 음식이 나왔고
어른 하나 애 하나 와놓고
너무 많이 시켰나 싶을 정도로
푸짐하게 음식이 나왔다.
남겨도 되지만
남기고 싶지 않아서
쓸데없이 저 많은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나도 우리 애도 과식을 했다.
'태국에 온 김에
태국 음식 많이 먹자,
한국에서 먹으면
똠냥꿍 한 그릇에
2만 원이잖아?'
하면서
양 조절 못하고
먹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나도 속이 안 좋았다.
밥을 먹고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가지는 방콕 하늘을 보면서
수영장으로 갔다.
한참을 놀았다.
많이 먹고 갔지만
놀다 보니 또 저녁시간이 되었고
왔다 갔다 하기 싫어서
수영장에서
저녁을 시켜 먹기로 했다.
아이도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좋아했다.
그리고 수영장 단골템인
햄버거를 시켰다.
아주 두꺼웠고
아주 푸짐했다.
그리고 참 맛있어 보였다.
28,000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나는 점심을 많이 먹었으니
아이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먹기 좋게 잘라서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하고
아이입에 넣어줬다.
내가 햄버거를 먹여주고
아이는 감자튀김을 스스로 먹었다.
햄버거 3입쯤 먹여줬을 때
'얘가 아직 씹고 있는데
내가 먹여줬네?
뭐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엄마, 나 속이 안 좋아" 하더니
정말 2초의 정적 후에
아기 때도 안한
분수 토를 했다.
제대로 씹지도 않아서
형태가 거의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이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우리애 입에서 쏟아져 나왔는데
한번, 두 번, 거의 세 번을
그렇게 다 게워냈다.
우리는 수영장의 의자에 앉아있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수영장에 앉아있었던 이유로
새 수건을 몇 번 더 가지고 와서
쉬는 시간에 몸을 닦았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게워낸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샹그릴라 호텔 수영장의
빛바랜 하늘색 비치타월 위에
정확하게 자리를 잡았다.
자기 토를 보고
우웨웩 거리는 아이를
먼저 닦였다.
다행히 순발력 있게
얘도 비치타월에
정확하게 게워내서
몸에는 거의 묻지 않았다.
입을 닦아주었고
물로 헹궜다.
그리고 수영장에 있던
안전요원한테
아이가 비치 타월에
토를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이 재미있었는데
"아무 문제 없으니
그 수건 잘 말아서
저기 다 쓴 수건통 모으는데
넣어주세요"
라고 했다.
"정말 그래도 되나요?"
"어차피 세탁할 건데요, 괜찮아요"
그렇게 토한 걸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너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배부른데
자꾸 먹으라고 해서 토한 거야"
"그래? 미안"
"과식했어"
과하면 안 된다는 걸
늘 다짐해도
꼭 이럴 때가 있다.
마음이 조급하거나
여유가 없을 때
특히 이런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방콕에 여행을 왔다는 사실을
즐겨야 하는데
나 혼자 겨울방학을 맞이한
아이의 거처를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억울한 마음을
기저에 깔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왜 우리애 아빠는
알아주지를 않는 거지?
왜 우리애 아빠는
고마워하지도 않는 거야?
왜 우리애 조부모님들은
도움을 주지 않지?
생활비로 쓰라고
돈을 주셔도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건데
왜 그런 제안을
하지 않으시지?"
억울하고
화가 그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애랑 둘이 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방콕에 여행 갔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였는데
애랑 같이 가서
뭘 해야 하는지,
뭘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를
생각하느라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다.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못 먹었다면
내일 먹어도 되는 건데
먹고 싶은 걸 다 시키고
남기면 지옥에 가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먹여준다는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남기는 꼴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끼니마다 과식을 했고
그렇게 탈이 났다.
애는 분수토를 했고
나는 이날부터 배가 아팠다.
심지어 나는
해외에 가면 화장실을 잘 못 가는데
미리 말을 하자면
방콕에서는
한국 오기 하루 전날
겨우 화장실을 갔고
그다음 일본 여행에서는
3박 4일 동안 화장실을 아예 못 갔다.
input은 끊임없이 했지만
output이 없는 삶을 혐오하면서도
그런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리애 아빠는
알아주지를 않는 거지?
알아줘도
너한테 아는척하기 싫겠지,
네가 생색내는 꼴이
싫었을 테니까.
왜 우리애 아빠는
고마워하지도 않는 거야?
고마워도
고맙다고
표현할 줄을 모르겠지,
언제는 표현했니.
왜 우리애 조부모님들은
도움을 주지 않지?
네가 살만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네가 그다지
살갑게 굴지도 않았잖아.
생활비로 쓰라고 돈을 주셔도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건데
왜 그런 제안을 하지 않으시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가 살만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죽는소리
한적 한 번이라도 있니?
내 탓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모든 건
내 탓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일찍 잠들었다.
열이 조금 나는 것 같아서
이마를 몇 번씩 만져보고
이불을 덮었다 말았다 하면서
나도 잠들었다.
내일은 조금 덜어내기로 다짐하고.
내일은 체크아웃 하기 전까지
하루 종일 수영을 하자.
샹그릴라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깊어져갔다.
그리고 진심으로 다짐했다.
내일은 꼭 덜어내자고.